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예은 Feb 14. 2020

우리가 잊고 사는 친절의 가치

상냥함


When given the choice between being right or being kind choose kind
(옳음과 친절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친절함을 택하라)

심리학 박사 웨인 다이어


언젠가 여행지에서 동영상을 찍다가 무심코 저장한 스스로의 목소리를 듣고 놀란 적이 있다. 가게나 식당 점원에게 말을 거는 내 말투가 생각보다 무뚝뚝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내심 '이곳 사람들은 외국인에게 불친절하구나'라고 느껴왔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어쩌면 그 원인이 나였을지도 모른다는 뜻이니. 말하는 사람에게도 듣는 사람에게도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대화했기에 문장이 간결해진 탓도 있겠지만, 그 후로는 의도적으로라도 미소를 띠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다고 해서 모든 현지인이 갑자기 상냥해지는 일은 없었지만, 여행 내내 밝은 태도를 유지하는데 도움은 되었으리라.


흔히 '착하면 호구되는 세상'이라고들 한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말도 어느새 격언으로 자리 잡았다. 처음에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면 그다음부터는 당연한 듯 요구하고, 어쩌다 거절이라도 하면 오히려 원망을 사는 상황. 어처구니없어 보이지만 직장 생활이나 사적인 인간관계에서 흔히 겪는 일이다. 그리고 한 번 그런 경험을 하면, 누군가에게 선뜻 손을 내밀기가 점점 두려워지기 마련이다. 이처럼 선의를 악용하는 사람 탓에 선의 자체가 사라지는 것만큼 슬픈 일이 또 있을까.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풍토도 불친절한 사회를 만드는 데 한몫한다. 특히 서비스 업계에서는 고객 과실이 분명한 경우에도 끈질기게 요구하면 어떻게든 해결되거나 다른 방법으로 보상받는 경우가 많다. 결국 원칙을 준수하는 고객이 손해를 보는 셈. 여기에 직원이 실수라고도 하면, 고성이나 인격 모독, 협박이 동반되는 일은 다반사다. 잘못된 안내로 피해를 입었을 때 울컥하는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하지만, 그 사람의 인격을 짓밟을 권리가 생기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타고난 그릇에도 개인차가 있는 법. 나 역시 내게 무례한 사람에게까지 상냥하게 대할 아량이나 어느 베스트셀러 에세이 타이틀처럼 ‘웃으며 대처할’ 요령은 없다. 하지만 타인의 호의를 남용하거나 무시함으로써 사회를 각박하게 만드는 어른만큼은 결코 되고 싶지 않다. 누군가의 실수에도 ‘그럴 수 있다’라며 웃고 넘길 수 있는 여유야 말로 40대의 내게 바라는 가장 큰 가치가 아닐까.


명품 가방이나 옷이 물질적인 풍요의 증거라면, 상냥하고 너그러운 성격은 정신적 풍요의 산물이다. 그 어떤 화려한 치장보다 동등한 인격체를 대하는 품격 있는 태도가 그 사람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아직 내 그릇을 넘는 희생과 손해를 감수할 자신은 없지만, 돌아오지 않아도 아쉽지 않을 만큼의 친절을 연습하다 보면 10년 후에는 이상향에 가까워져 있으리라 믿는다.


이전 11화 SNS가 내 삶에 가져온 의외의 선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