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결국 로또가 답인가
대한민국 직장인 일동
직장생활에 권태나 회의를 느낄 때, 동료들과 수없이 농담 삼아 주고받는 말이다. 복권에 당첨되어 생계 걱정 없이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사는 인생은 상상만 해도 얼마나 아름다운가.
‘부자로 태어났다면’하는 아쉬움 섞인 상상도 비슷한 맥락이다. 돈의 많고 적음은 생활 전반에 걸친 선택의 폭을 좌우하므로. 당장의 점심 메뉴에서부터 사는 집과 입는 옷, 부모님의 생신 선물, 그리고 자녀의 교육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주어진 경제력에 맞는 답안을 골라야 한다. 심지어는 밥벌이를 위해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감내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니, 통장에 있는 잔고 숫자가 내 욕망의 크기보다 적다면 불행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매일의 식비조차 감당하기 버거웠던 학생 시절을 지나 사회생활 10년 차에 접어든 지금, 내 삶은 분명 크게 여유로워졌다. 당시에는 어쩔 수 없이 천 원짜리 편의점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웠다면, 지금은 회사 근처 식당에서 만원 어치의 정식 세트쯤은 부담 없이 사 먹을 수 있다. 여전히 편리함과 익숙함 탓에 편의점을 애용하지만,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선택이므로 서러울 리 없다. 게다가 1년에 두세 번 해외여행을 다니고(코로나바이러스가 등장하기 전 이야기다), 기념일에는 제법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코스 요리를 즐기며, 내 집 마련과 노후 대비를 위해 매달 저축까지 하고 있으니 이만하면 출세했다 싶을 정도다.
그러나 세상의 이치가 늘 그렇듯, 지금 내가 누리는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사치스러워 보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나치게 검소해서 안타깝게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다. 나 역시 하루 세끼 걱정 없이 먹는 삶에 감사하면서도, 하루아침에 수입이 없어지거나 건강을 잃는다면 앞날이 캄캄하기에 마음 한편에는 불안을 품고 산다. 하지만 그 긴장감 덕분에 불필요한 지출을 경계하고, 하루하루 충실이 살아갈 수 있기에, 꼭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소위 재벌가나 권력층 집안, 혹은 단순히 지금보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면 내 삶은 지금보다 윤택했을 것이다. 비싼 학비 탓에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도, 작가를 꿈꾸면서도 생계를 위해 고객 센터에서 일하는 일도 없었을 테니. 그러나 돈 걱정이 사라진다면, 분명 그만큼 중요하고 골치 아픈 또 다른 문젯거리가 돈의 자리를 대체할 것임을 나는 안다. 게다가 막강한 경제력 덕분에 많은 이들에게 떠받들어지는 삶도 편리하겠지만, 사회 구성원 대다수를 차지하는 '서민'들의 희로애락에 뼛속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나의 위치도 작가 지망생으로서 얼마나 이상적인가.
대학 시절, 명품 쇼핑과 화려한 파티가 일상이던 홍콩 친구와 부자의 기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나는 순자산 50억이나 소득 상위 10% 따위의 숫자를 떠올리고 있었으나, 그의 대답은 내 소박한 상상을 초월했다.
“전용기가 있어야 부자지.”
인류 문명은 인간의 끝없는 욕심 덕분에 눈부시게 발전할 수 있었지만, 인생 역전에 대한 허황된 꿈이나 더 가진 자들에 대한 자격지심에 사로잡혀 오늘을 낭비해서는 안된다. 어차피 세상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될 수는 없으며, 아무리 높이 올라간다 한들 스스로 만족하지 못한다면 정서적으로는 계속 불행할 테니. ‘정신 승리’라고 비웃어도 어쩔 수 없다. 내 한 몸 건사하며 소중한 사람들에게 소소하게 베풀 수 있는 '지금 이 정도'에 감사하는 자세가, 적어도 전용기 한 대보다는 삶을 풍요롭게 함을 나는 진심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