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시작
나 자신의 한계를 인정할 줄 아는 솔직함과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용기, 그 두 가지 모두가 더없이 소중하고 감사한 시간, 마흔이다.
정여울 에세이 <마흔에 관하여> 중에서
서른을 동경했던 스물의 눈에 비해, 마흔을 바라보는 서른의 눈은 담담하기 그지없다. 30대에 들어서면 인격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완벽한 어른이 되리란 환상이 한 번 무너져서일까. 또다시 나이의 앞 자릿수가 바뀐다 해도 하루아침에 내 세상이 뒤바뀌지 않음을,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준비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10대와 20대의 긴 방황의 시절을 지나 비로소 지금, 나는 한 사람과 한 직장,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작가라는 꿈에 정착했다. 돈을 번 기간에 비해 통장잔고는 형편없지만, 앞으로 10년 간 꾸준히 직장 생활을 한다면 40대에는 대출을 받아 형편에 맞는 집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자녀계획은 불투명하다. 온 가족과 친척을 바다 너머에 둔 맞벌이 부부인 데다가, 집을 장만하고 나면 노후를 준비하기에도 빠듯할 테니. 다만 여유가 생기면 강아지 한 마리를 분양받아 살뜰히 보살피고픈 마음은 굴뚝같다.
직장은 생계를 지탱하는 수단에 가깝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료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다. 반복적인 업무이므로 경험이 쌓인다면 10년 후에는 훨씬 노련한 일꾼이 될 수 있으리라. 그러나 가장 열정을 쏟아야 할 분야는 역시 글쓰기다. 글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점점 더 나은 관찰자와 문장가, 그리고 전달자가 되는 일. 그리고 언젠가 다시 책을 출간하는 상상만이 나를 가슴 설레게 하므로.
좀 더 욕심을 부리자면, 성격 면에서 내 명백한 단점, 이를테면 욕망은 크나 몸은 게으른 점, 타인과 비교하려 드는 습성, 그리고 싫은 소리를 견디지 못하는 오만함 등을 개선하고 싶다. 인격적 성숙을 동반하지 않는 나이 듦에 아름다움이 깃들리 없으니.
이제 와서 돌아보니 후회되는 것은 늘 과거의 결정이 아닌, 그 결정을 믿고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한 나 자신이었다. 30년간 돌고 돌아 찾은 나만의 길. 지금부터라도 한치의 의심 없이 담담히 걸어가며, 삶이라는 선물을 최대한 만끽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