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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은 Apr 21. 2020

그날을 위한 성찬, 성게파스타

두 번째 요리

재택근무의 가장 큰 장점은 출근 과정이 생략된다는 점입니다. 근무 시간 두 시간 전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화장을 하고, 옷장에서 옷을 고르고, 만원 전철에 올라타 회사로 향하는, 그 모든 번거로운 행위로부터 해방되니까요.


저는 동 틀 무렵 잠들 때가 행복한 야행성 인간인지라,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늘 고역이었습니다. 물론 재택근무라고 해서 출퇴근 시간이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훨씬 여유롭기는 합니다. 요즘은 일을 시작하기 20분 전에 일어나도 충분한 데다가 점심시간에는 낮잠이나 반신욕을 즐기기도 합니다. 코로나19로 얻은 유일한 반사이익이랄까요.


여성이라면 편리한 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한 달에 한 번, 월경을 시작할 때 집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 특히 첫째 날과 둘째 날은 양이 많아 생리대를 교체하러 화장실에 자주 가야 하는데, 사무실에 있으면 아무래도 눈치가 보입니다. 공용화장실이다 보니 당연히 신경도 더 많이 써야 하고요. 그러니 '그 날'에는 재택근무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습니다.


당장 임신 계획이 없는 저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합니다.


“월경도 기계처럼 뇌의 명령에 따라 시작하고 멈춘다면 얼마나 좋을까?”


제 초경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는데, 현대사회에서 그 나이에 신체가 임신 준비에 들어가는 건 시대착오적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 후로 월경을 건너뛴 적은 단 몇 개월. 스트레스성 위장장애로 살이 급격히 빠진 고등학교 시절이었는데, 다른 건 몰라도 생리불순은 편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건강을 되찾자마자 다시 시작했지만요.


초경이 축복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처음 생리혈을 보고 엄마에게 전화했던 날의 기억은 따스하게 남아 있습니다. 익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터라 크게 놀라지는 않았습니다. '엄마, 나 생리 시작했어'라는 말에 엄마는 '뭐 먹고 싶은 건 없어?'라고 되물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당시 가장 좋아했던 고깃집을 떠올렸고요.


집 근처에 있던 숯불갈비집은 부모님 지인이 운영하던, 우리 가족 단골 외식 장소였습니다. 엄마는 약간 당황한 소리로 몇 시까지 식당 앞으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알고 보니 엄마는 이미 그곳에서 모임을 갖고 계셨고, 식사가 끝나자마자 저와 다시 들어가야 했던 것이었지요. ‘우리 딸이 여기서 먹고 싶다고 해서요'라며, 멋쩍게 재입장하시던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도 슬며시 미소가 지어집니다.


그 후로 20년이 지났고, 앞으로 20년은 더 지긋지긋한 ‘마법’에 시달려야겠지만, 재택근무 덕분에 여유가 생겼으니, 이번 달은 호사스러운 요리로 자축하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입맛이 변해 지금은 달짝지근한 양념보다는 담백한 간을, 그리고 고기보다는 해산물을 좋아합니다. 비싼 가격 탓에 마트에서 선뜻 집지 못하던 성게가 떠올랐습니다.


성게는 검은 밤송이처럼 생긴 해산물인데, 그 안에 소화기관과 생식기관이 다 들어 있습니다. 흔히 성게알 혹은 일본어로 ‘우니(うに)’라고 부르는 주홍색 물체는 사실 성게 생식소(줄여서 ‘성게소’)입니다. 암컷이라면 난소, 수컷이라면 정소인 셈이지요. 알고 먹으면 꺼림칙하긴 하지만, 동물의 심장과 위장도 먹는 마당에 해산물의 생식소쯤은 뭐 어떠랴 싶습니다. 위안이 될지 모르겠지만, 해달도 성게소를 무척 좋아한다고 하네요.


Photo by Portuguese Gravity on Unsplash


일본, 그것도 항구도시인 요코하마에 살고 있지만 홋카이도산은 너무 비싸서 1,500엔짜리 칠레산 성게소 한팩을 구입했습니다. 어떻게 먹을까 고민하다 간단한 파스타로 결정. 알리오올리오 파스타를 만들어 저는 성게소를, 그리고 고기 파인 남편 접시에는 다른 재료를 올리면 되니까요.


마트에서 사 온 신선한 성게소는 예상대로 달콤하고, 부드럽고, (아마도 칠레의) 바다향이 그윽했지만, 제가 만든 파스타는 올리브유 양과 소금 간 조절에 실패해 약간 짜고 느끼했습니다. 혹시, 레시피를 참고하신다면 중간중간에 맛을 점검하면서 만드시길 바랄게요. 파슬리나 파머산 치즈 등을 곁들이면 풍미가 더 좋을 듯합니다.


@fromlyen
재료(2인분 기준): 파스타면 200g, 우니 한팩(먹고 싶은 만큼), 양파 반개, 깐 마늘 3조각, 페페론치노 1스푼, 올리브유, 소금, 후추

1. 마늘과 양파는 얇게 슬라이스한 뒤 페페론치노와 함께 팬에 담는다.

2. 야채가 자작자작 잠길 만큼 올리브유를 두르고, 마늘이 노릇노릇해질 때까지 중불에 볶는다.

3. 끓는 물 1L에 소금 반 스푼을 넣고 면을 7분(파스타면 봉지에 적힌 적정 조리 시간) 삶는다.

4.  면을 팬(1,2번)에 옮겨 담아 면수로 간을 맞추고 후추를 뿌린다.  

5. 성게소를 올려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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