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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은 Apr 16. 2020

벚꽃에 눈 내린 날, 명란크림우동

첫 번째 요리

제가 기억하는 한 올해 요코하마에는 두 번의 눈이 내렸습니다. 날짜는 3월 14일과 3월 29일. 하늘의 장난처럼 ‘화이트데이’에 온 세상을 하얗게 덮은 3월의 첫눈도 신기했지만, 정작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은 건 29일의 함박눈입니다. 그 날은 마침, 며칠 전부터 봉오리를 틔우기 시작한 벚꽃이 절정을 맞은 일요일 아침이었으니까요.


만개한 벚꽃 위에 포슬포슬 쌓인 눈. 상상만 해도 신비로운 광경이지만, 안타깝게도 그 무렵 남편과 저는 세상모르고 늦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오전 11시쯤 눈을 떴을 때, 창 밖에서 들리던 소리는 눈보다는 비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창문을 열어보니, 다행히 아직 다 녹지 않은 눈이 햇살을 머금고 있었습니다.


벚나무가 늘어선 집 앞 공원 풍경이 궁금해, 귀찮은 기색이 역력한 남편을 끌고 헐레벌떡 나갔습니다. 화장은커녕, 세수도 안 한 얼굴을 마스크와 안경, 모자로 꽁꽁 가린 채로요. 얼마 걷지 않았는데도 신발과 모자는 다 젖어버렸고, 때 아닌 추위 탓에 안경에 자꾸만 김이 서려 앞이 안 보일 지경이었습니다.


그렇게 초췌한 모습으로 도착한 우리를 반기는 건, 눈이 소복이 덮인 벚꽃의 고운 자태였습니다. 두터운 눈의 무게를 지탱하기엔 꽃잎이 너무 얇아 가련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몇 시간이면 다 녹아 없어질 것 같았지만요.

@fromlyen

우리는 새하얗게 변한 공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눈싸움을 벌이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축축한 양말과 신발을 벗어던지고, 따뜻한 물로 한기를 씻어낸 뒤, 아침 겸 점심을 만들었습니다. 메뉴는 명란크림우동. 조금 억지스럽지만, 눈 사이사이로 비치던 분홍색 꽃술과 꽃잎 탓에 생각난 음식이었습니다.


명란젓은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밥반찬인데, 당시에는 비싸서 자주 먹지 못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젓갈은 조선 시대 왕실 식탁에 오르거나 외국 사신에게 대접할 정도로 귀한 음식이었으니, 딱히 억울하지는 않습니다. 분명 우리나라에서 유래한 음식이지만, 지금은 일본에서 더 많이 소비될 정도로 인기가 높아, 현지 슈퍼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Pixabay


일본의 명란젓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부산에서 태어난 식료품 사업가 카와하라 토시오가 1949년, 후쿠오카에서 처음 상품화를 시작했다고 전해집니다. 당시 부산은 국내 최대의 명태 공급처였는데, 패전 후 일본으로 돌아간 후에도 그곳에서 먹던 명란젓의 맛을 잊지 못한 것이지요.


참고로 명태의 일본어 명칭은 ‘타라(タラ, 대구)’ 의 일종으로 분류되는 ‘스케토우다라(スケトウダラ)’지만, 고춧가루를 넣은 명란젓은 한국식으로 ‘명태알’이라는 의미의 ‘멘타이코(明太子)’ 혹은 ‘카라시멘타이코(辛子明太子)’라고 불립니다. 반면, 염장만 한 명란젓은 보통 ‘타라의 알’이라는 뜻에서 ‘타라코(たらこ)’라고도 하는데, 이 역시 대구알이 아닌 명태알을 사용한 젓갈입니다.


명란젓은 참기름에 비벼 흰쌀밥에 얹어먹는 게 최고지만, 짭조름한 맛 덕분에 크림소스와도 제법 잘 어울립니다. 면에 딸려오는 명란이 알알이 씹히는 질감도 좋고요. 제가 만든 명란크림우동은 조금 심심했는데, 나중에 후쿠오카에 사는 친구가 선물한 명란 후리카케(振り掛け, 다양한 조미료를 혼합해 밥에 뿌려 먹는 가루 식품)를 곁들였더니 화룡정점이었습니다. 레시피는 너무 믿지 마시고, 취향에 따라 소스에 치즈나 마요네즈, 청양고추 등을 곁들여 드시기 바랍니다.

재료(2인분 기준): 생크림 200ml, 우유 100ml, 우동 생면 400g, 달걀 2개, 명란젓갈 2~3줄, 다진 마늘 한 숟갈, 양파 1/4개, 버터 한 숟갈, 고명용 파와 소금, 후추 약간

1. 온천달걀을 만들기 위해 냄비에 물을 붓고, 끓어오르기 직전 불을 끈 다음 달걀을 넣어 20분쯤 그대로 둔다.

2. 명란젓은 고명용을 따로 썰어 두고, 나머지는 속을 긁어낸다.

3. 다진 마늘과 잘게 썬 양파를 버터에 볶다가, 양파가 투명해질 때쯤 생크림, 우유, 명란을 넣어 끓인다.

4. 우동 면을 끓는 물에 데친 후 소스(3)에 넣고 적당히 졸인다.  

5. 부족한 간은 소금, 후추로 맞춘 뒤 그릇에 옮겨 담아, 얇게 썬 파와 온천달걀(1), 고명용 명란젓(2)을 올려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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