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요리
가장 최근 한국에 다녀온 건 지난 1월 25일, 설날의 일입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지기 전이었기에, 평소처럼 가뿐히 국경을 넘어 대구에 있는 친정에서 명절을 보냈지요. 모처럼 가족이 함께 모인 자리에 어머니께서는 전에 없던 푸짐한 한 상을 차려주셨습니다. 갈비찜, 과메기, 불고기, 도라지 구이 등 하나같이 그립고 귀한 요리로요.
그로부터 한 달도 안돼 제 고향에서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발발하리라고는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고작 30명에 불과했던 감염자 수는 순식간에 1,000명을 돌파했고, 언제든지 오갈 수 있었던 일본과 한국 사이의 출입국 제한도 강화됐습니다.
그래서 이번 2월과 3월은, 개인적으로 무척 힘든 시기였습니다. 어느새 60대에 접어드신 부모님은 물론, 연로하신 조부모님께서도 모두 대구에 계시니까요. 언제 무슨 일이 생겨도 요코하마에서 발만 동동 굴러야 할 테니, 뉴스를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많은 분들의 노력 덕분에 안정세에 접어들었지만, 저는 그때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안' 하는 마음과 '못' 하는 마음 사이에는 천국과 지옥만큼의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요.
2019년에는 비자 문제와 가족 행사, 그리고 출장 등 다양한 이유로 서너 번 이상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물론 아무리 자주 가도 소중한 사람들을 다 보고 올 순 없지만, 그로 인한 지출이 만만치 않았기에 2020년에는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꼼짝달싹 못 하는 상황이 오니,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실감과 향수가 밀려오더군요.
그나마 한국에서 가져온 식재료가 위안이 됐습니다. 보통은 통깨나 고춧가루와 같은 마른 양념을 공수해오는 편인데, 지난 설에는 처음으로 할머니표 집된장을 가져와봤습니다. 꼭 챙겨가라는 말씀에 포장이 번거로워 마다했지만, 막상 먹어보니 그 결정이 신의 한 수였죠. 풍미가 깊고, 구수하고, 콩이 알알이 씹히는 그 맛은 시판 된장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순수하게 콩만 자연 발효시켜 만드는 재래식 된장과는 달리, 공장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시판 된장에는 쌀이나 보리, 밀가루 등 전분이 들어가 단맛이 난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콩에 쌀이나 보리누룩을 섞어 만드는 일본식 '미소(味噌)' 된장과 비슷한 셈이지요.
시판 된장으로 조리할 때는 차돌박이나 꽃게와 같은 주재료에 국간장과 마늘, 새우젓 등 갖은양념을 첨가해야 먹을만했는데, 할머니께서 담그신 된장은 재료를 덜수록 맛있었습니다. 냉장고에 남은 채소만 잔뜩 넣고 끓여도 충분할 정도로요.
어린 시절 바쁜 부모님 대신 저를 돌봐주셨던 할머니의 품처럼 수수하고 정겨운 야채된장찌개. 제 입맛에는 명인의 솜씨가 부럽지 않은 맛이지만, 언젠가 할머니께서 하늘나라로 가시고 나면 다시 맛볼 수 없을 슬픈 맛이기도 합니다. 다시 한국을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게 된다면, 돈 몇 푼에 연연하지 말고 가능한 자주 찾아뵈야겠습니다.
재료(2인분)
육수: 쌀뜨물 1리터, 국물용 멸치 5마리, 다시마 1조각, 표고버섯 밑동 2~3개, 무 1토막(약 100g), 집된장 2큰술
건더기: (밑동을 잘라내고 남은) 표고버섯 2~3개, (마라샹궈에 넣고 남은) 배추 3~4장, (카레에 넣고 남은) 감자 2개, 두부 반모, 양파 반개, 파 조금
1. 쌀뜨물에 멸치, 다시마, 표고버섯 밑동, 무를 넣고 강불에 끓인다.
2. 물이 끓은 후 10분이 지나면 다시마를 건져내고, 남은 재료는 중불에 10분 더 끓인다.
3. 표고버섯과 양파, 파는 얇게 썰고, 감자와 배추, 두부도 한 입 크기로 썬다.
5. 완성된 육수에 집된장과 건더기를 넣고 한 번 더 팔팔 끓인다.
5. 올라오는 거품을 국자로 건져낸 뒤, 건더기가 다 익을 때까지 중약불에 5분 이상 조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