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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 Mar 13. 2021

강약약강 상사 퇴치법

이판사판


 강약약강

 강한 사람한테는 하고 약한 사람한테는 강한 사람




  내가 만난 Worst.5 상사 꼽히는 김과장은 전형적인 강약약강 케이스였다. 나 또한 그에게 욕받이 신세 대체로 회사에는 김과장에게 대적할만한 사람이 많지 않았다. 김과장은 기분파에 욱하는 성미마음에 안 들면 무조건 윽박부터 지르고 보는 타입이었다. 그 탓에 늘 소란스러웠고 으레 머리를 숙이는 쪽은 였다.


  그 시절 나는 출근을 하자마자 첫째로 하는 일이 김과장의 기분을 살피는 일이었다. 비극적이지만 그의 기분에 따라 하루가 순탄할지 아닐지가 판가름 났었기 때문이다. 좀처럼 표정을 읽기 어려울 때도 많아 난감한 상황에 이른 적 많았다.

 

  기분에 따라 행동이 뒤바뀌는 점은 같은 사람으로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절대 참을 수 없던 것은 바로 사람을 가려가며 성질을 부린다는 점이었다. 그의 강약약강 수법은 묘하게 사람을 기분 상하게 만들었다. 똑같은 일에 있어서 내겐 화를 내지만 다른 사람에겐 군말하지 않는 것을 볼 때면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가 군말하지 않는 쪽은 대부분 강자들이었다.  강자들이라는 게 회사에서의 높은 지위도 있겠지만 성격적인 측면도 있었다.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고, 김과장은 본인처럼 다혈질인 사람에게 약한 모습을 보였다. 반대로 나처럼 묵묵히 비난을 들으면 신이 나서 더 주절대는 사람이었다.


  기분이 영 안 좋은 날이었는지, 김과장은 미팅을 하다가 테이블 위에 놓인 프로젝터 리모컨을 벽에 집어던졌다. 정확히는 나와 박사원 사이로 빗나갔다. 우리가 자의 말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분통이 터진다고 했다. 벽에 부딪혀 박살이 난 리모컨을 바라보며 결심했다. 그가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못하도록 스스로 방어해야겠다는 생각이 굳게 들었다. 그 생각에 박차를 가한 건 같이 이해하지 못한 이대리에게는 리모컨을 던지기는 아무 핀잔 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대리는 평소 까탈스럽고 옳은 말을 잘하는 타입이라 김과장이 껄끄러워했었다. 또 강약약강을 시전하고 있는 그를  리에 핀이 뽑혔다.


  그 날 이후 나는 카운트를 셌다. 앞으로 딱 세 번만 참겠노라고, 그리고 D-day는 머지않아 찾아왔다. 멀리서 나를 부르는 김과장의 목소리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미 내 이름 석자에 언짢은 낌새가 느껴졌기에 횡포를 놓을 짐작했다. 김과장 자리에 도착하기도 전 그는 내게  소리를 질렀다.


 머리에 뭐가 들었냐? 머리는 폼으로 들고 다녀?


  가만히 이야기를 들었다. 보아하니 내가 만든 보고서의 양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최근에 부장이 보고서 양식을 통일하자고 하여 이 양식을 쓴 것인데 상세 내용을 모르는 듯했다. 


 과장님. 죄송한데 양식 통일됐어요. 그리고 이게 그렇게 화내실 일가요?


  김과장은 늘 고분 하기만 했던 내가 반항을 하니 적잖이 당황한 듯싶었다. 이미 나는 이판사판었고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계획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미쳤냐? 말대꾸하게.


 말대꾸라니요? 화낼 일이 맞냐고 질문드렸습니다.


 화가 나니까 화를 내지. 지금 싸우자는 거야?


 매일 일방적으로 분풀이하시면서 싸우자고요? 하시고 싶으신 대로 하세요.


  김과장의 눈에 독기가 가득했다. 눈을 피할 마음도 없었고 다시 고개를 조아릴 마음 따위도 없었다. 이미 사무실 이목이 집중됐고 파티션 너머에는 미어캣들이 득실거렸다. 김과장은 머리를 쓸어 넘기면서 주먹을 부들거렸다. 이러다 때리기라도 하려나? 그래 차라리 때려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해버리게.


  김과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비속어를 써가며 내게 삿대질을 했다. 나는 그에 굴하지 않고 또박또박 큰 소리로 맞대응을 했다. 내가 물러서지 않으니 김과장은 더 난리를 피웠고 나는 미동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보는 눈이 점점 많아지자 김과장은 외투를 들고 홀연히 사라졌다. 퇴근시간까지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음 날이 돼서야 나타났다. 그 난장을 피우고 나서 동료에게 당시 내 모습이 어땠는지 전해 들었다. 꼭 내 몸에서 뜨거운 김이 뿜어져 나오는 듯 보였다 했다. 동료의 눈이  정확한 것이 사실 최대한 침착한 척했지만 화를 참느라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나는 김과장의 다음 행보가 궁금했다. 나를 무시할까 아니면 응징할까. 내 예상과 달리 김과장은 나를 어려워하기 시작했다. 평소 같으면 불같이 화를 낼 일에도 조용히 넘어가기 일수였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고,  격분을 하니 동거지를 조심히 하는 듯했다.


  즉시 나는 그다음 단계에 돌입했다. 이렇게 일하면 서로 뿐 아니라 팀원들도 같이 불편해질 것을 알았기에 조금씩 먼저 다가다. 그렇게 앙금을 풀고 나니 김과장은 다시 옛날로 돌아오려 했다. 김과장이 그런 식으로 시동을 걸 때마다 나는 싸늘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이전 일을 상기시켜 주는 셈이자 다시는 막무가내 행동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메시지였다. 다행히도 김과장은 그 뜻을  알아차렸다.


  나를 필두로 김과장의 욕받이들은 점점 머릿수가 줄어들었다. 내가 뜻밖의 선례를 남기게 되었고, 그에게 고통받았던 이들이 하나 둘 용기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김과장에게 한참을 약자로 살다가 강자가 되고 보니 그제야 얼마나 그가 비겁한 사람인지 알게 됐다.



  그냥 한 번 선을 넘어버리면 될 일었는데, 무엇이 그리 어렵다고 계절이 바뀔 동안 그의 쓰레기통으로 오래 살았는지. 마음은 얼룩덜룩질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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