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명문대를 어린 나이에 졸업한 수재였다. 고등학교 시절 전국 10등 안에 들었던 적이 몇 차례나 된다고 하니, 머리가 비상한 친구인 것은 분명했다. 그가 우리 팀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한다고 했을 때 반응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몇몇은 일을 시키기에 부담스럽다는 입장이었고, 다른 쪽은 그가 우리 팀에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이라는 대체로 긍정적인 의견이었다. 나는 후자의 편에 섰었는데, 회사에는 그 외에도 명문대 졸업생이 많았고 직장생활에 있어서 대부분 평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의 예상은 정확히 빗나갔다.
그를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그의 시니컬함과 스마트한 이미지는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는 외향적인 모습 말고도 사소한 행동에서도 영리한 부분들이 엿보였다. 그는 자신의 동선을 계산하며 불필요한 시간들이 소비되지 않도록 비상한 머리를 잘 이용했었다. 다들 그를 보고 '올해의 인재'라고 일컫었다.
그를 향한 갈채가 책망으로 변하게 된 기간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서였다. 그는 자신이 남들보다 똑똑하다는 것을 아는 친구였고, 또 그것을 남들에게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이었다. 그저 예쁘게 봐주고 북돋아주면 되는 줄로만 알았던 팀원들은 끝까지 그를 부둥부둥하기에는 버거웠던 모양이었다.
되돌아보면 그는 보통의 신입사원과는 다른 결의 친구였다. 입사 날, 그는 그의 손에 쥐어진 신입사원 매뉴얼을 그 자리에서 뜯어고치고는 다음 날 매뉴얼의 불합리한 사항들을 읊으며 수정안을 들이밀었다. 그때까지는 열정이 넘치는 신입사원이라고만 생각했었기에, 그저 그의 패기에 박수를 쳤었다.
그가 눈 밖에 나기 시작한 것은 실무에 투입되고 나서부터였다. 몇 달간 팀에서 진행된 평가에 대해 리뷰하는 자리에, 그는 내내 석연치 않은 표정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리뷰가 끝난 후 질의사항 시간에 가장 먼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는 이 평가의 결과가 불가한 성립이라고 외쳤다. 뒤이어 고등학교나 대학교 교과수업에 배운 어려운 이론을 들먹이며 이러한 이유로, 실험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했다. 그의 단호한 발언에 평가 책임자는 이론은 그러하나, 실제 현장에서는 이론과는 달리 이외의 수가 다양하게 발생한다고 답했다. 그는 입술을 삐죽이며 끝내 수긍하는 척을 했지만, 누가 보기에도 그는 절대 수긍하지 않은 눈치였다.
마음 아프게도 그는 밉보일 행동들을 연이어서 했다. 단순한 일들을 가르쳐주면 성의 없는 대답을 하기 일수였고, 그럴법한 일을 시킬 때엔 선배의 말을 트집 잡곤 했다. 그런 일들이 계속되자 윗선들 모두 그에게 업무를 시키거나 교육하는 것을 꺼려했다. 그는 상대방이 말을 했을 때 말에 오류는 없는지부터 검열하는 버릇이 있었다. 같이 일하는 동료로서는 피로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태도였다. 결국 그에게 배당되는 업무가 눈에 띄게 줄어들자 그는 다른 동료들의 일에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이따금 선배들의 업무에도 관심을 보이며 조언 아닌 지적을 했는데, 이를 참다못한 대리가 그를 크게 꾸짖었다.
"ㅇㅇ씨 똑똑한 거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아니까 그쯤 해요. "
그는 된통 먹은 표정으로 입술을 꾹 다물었다. 두 뺨부터 귀 끝까지 벌게져서는 자존심에 꽤 스크래치를 입은 듯 보였다. 그는 결국 얼마 안 가 업무적성 등의 문제로 퇴사를 했고, 나가는 순간에도 친히 회사의 시스템 문제를 짚어주었다.
그때 그에게 차마 해줄 수 없던 조언들이 아직까지 마음 한편에 남아 불편할 때가 있다. 그는 가르치려 든다 생각했었겠지만, 돌이켜보면 그에게 말해주지 못했던 것에 오히려 미안한 마음만 남았다.
묵묵히 일하다 보면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은 반드시 생길 테니 성급하게 자신을 인정받으려 하지 말아요. 회사는 학교와 다르게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본인만 잘한다고 되는 곳이 아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