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녔습니다

가려진 대인기피

by 이 영
숨바꼭질해보셨나요?

한 번씩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전봇대 앞에 서서 눈을 가리고 술래를 해보았던 경험. 아주 어렸을 땐 주로 숨는 쪽이었는데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거나 어디에 숨어도 눈만 감으면 상대방에게 안보일 거란 착각을 했다.



그 사람과 나는 상사와 부하직원 사이였다. 일찍부터 출근해 퇴근시간이 불분명한 날들. 강도 높은 업무와 실적에 대한 압박. 화려한 스펙이 있진 않았지만 나는 주로 성과를 내는 쪽에 속했다. 달리고 달려도 깨지기를 반복했고 어느덧 깨지는 것이 당연해져 있었다.

"1층 로비에서 기다릴게." 팀장님의 호출. 그날은 몸이 좋지 않아 오전 반차를 급히 내고 오후에 출근하기로 한 날. 진짜 몸이 안 좋았을 수도 있고 강압적인 환경에 출근을 미루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거다. "부장님이 이번에 00 씨가 낸 실적 못 맡긴다고 하셨어." 어렵게 따낸 실적을 가져간다니? 어안이 벙벙했다. 최근 들어 몇 번의 병가가 있었고 부장님은 안부 대신 진단서를, 잠들기 전까지 일거수일투족 감시하듯 연락해대는 팀장님. 1년을 버티고 나니 더는 버틸 힘이 없어져 사직서를 냈다. 팀장은 모르겠으니 부장님께 연락드리라 말했고 이제껏 말한 보람도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미 나 말고 두 명이 먼저 사직서를 냈다고 했다.




한 달 정도 집에서 나오질 못했다. 왜 울기만 했을까. 그때의 나에게 물어보고 싶다. 그러다 조금씩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면서 지인을 통해 새로운 일을 구했다. 단발이었던 머리가 쇄골을 넘어 가슴께까지 와서 일할 때를 제외하고는 머리를 풀고 다녔다. 얼굴을 가릴 용도로. 발끝만 바라보면서. 행여 아는 사람이 지나가다 나를 불러 세우고 아는 체할까, 누가 말을 걸기라도 할까 봐 마음 졸이며 길을 걸었다. 꼭 필요할 때 빼고는 말 자체를 하지 않았고 사람도 만나지 않았으니 철저히 혼자가 되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 조금씩 고개를 들 수 있었지만, 일 할 때도 사람 말고 허공을 봐야 했다. "저번에 우연히 봤는데 얼굴이 안 좋아 보여서 말을 걸 수가 없었어" 길에서 마주친 친구가 말했다. 어릴 때 했던 숨바꼭질처럼 얼굴을 가린다고 해서 어두운 마음이 감춰지지 않았다.



미운 마음을 품고 있으면 그 독이 자신에게 퍼진다. 독이 스스로를 아프게 하는 줄 몰랐을까. 몇 년을 앓았다. 난 도망치는 사람이었고 잠깐은 편할지 몰라도 오래 고통스러운 건 나였다. 여러 번의 계기로 나는 다름을 받아들이는 방법과 불편한 감정이 있으면 정리해서 소통하는 방법을 택하게 되었다. 다시는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아픔이 영원할 줄 알았는데 지나갔다.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때로는 비가 내리기도 다시 화창해지기도 했다. 장마가 지나가듯 아픔이나 행복도 지나간다고 생각하면 삶이 소중해지니까. 다 포기하더라도, 나만은 포기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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