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를 보지도 않고 사?

유명 브랜드 효과

by 이 영
직접 안 봐서 잘 모르겠다


부모님은 물건을 오래 쓰기로 유명하다. 3,40년은 기본. 지금 사는 집도 23년째 같은 곳에서 살고 있다. 얼마 전부터 냉장고 밑에서 물이 새어 나왔다. 며칠 걸러 한 번씩 바닥을 흥건하게 만들었다. 아무렇지 않게 바닥을 닦거나 아예 수건으로 막아두면서 썼다. 어느 날 냉동고가 기능을 하지 않았다. 점점 냄새가 심해졌고 냉장 기능을 겨우 이어나가는 수준. 쓸 수 없는 음식들을 버렸다.


가족이 다 모인 날, 냉장고 상태에 대해 얘기 나누다 바로 새 냉장고를 알아보았다. 다음날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첫 번째로 들린 곳은 가게가 망해서 텅 비어 있었다. 두 번째는 LG 브랜드만 모아둔 곳. 대체로 가격이 비쌌다. 여러 냉장고를 보고 나서는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인터넷으로 찾아보자 주의였다. 세 번째는 전자랜드. 모든 브랜드가 모여있었다. 친절히 설명해주는 직원. 냉장고마다 할인되는 가격을 듣고 마음에 드는 두 가지를 생각해두고 나왔다. 네 번째로 간 곳은 하이마트. 부모님은 요즘 나오는 디자인 말고 위아래로 되어있는 냉장고를 찾으셨고 예전 디자인은 매장에 갖다 두지 않아 태블릿 PC로 설명 들었다. 가장 단 시간에 매장을 나왔다. 마지막으로 간 곳은 삼성이었다.


이 매장에도 부모님이 찾는 예전 디자인의 냉장고는 진열 자체가 안 되어있는 것. 직원은 잡지를 보여주며 설명했다. "어르신들은 안 보고도 잘 사서 쓰십니다." 이 할인을 놓치면 나중에 다시 와도 오른 가격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부모님은 계약을 하고 싶어 하셨다. 오빠와 나는 좀 더 생각해보자며 부모님을 데리고 나왔다. 아까는 매장에 물건이 없어 안 보고는 살 수 없다며 나왔는데 이번엔 왜 물건을 보지도 않고 사려는 걸까? 정말 신기했다. 이유를 물으니 엄마는 삼성이 주는 브랜드 신뢰가 있고 고장 나면 서비스가 잘 될 거라는 말을 하셨다.


주차장에서 얘기 끝에 다시 들어가 냉장고를 계약하고 나오셨다. 브랜드가 주는 힘? 냉장고는 한 두 푼이 아닌데. 유명 브랜드가 주는 신뢰가 어마어마했다. 여러 개 중에 골라야 한다면 브랜드를 믿고 산다는 것. 어디서 들어봤거나 이미 친숙한 것을 선택하는 것. 난 어떻게 했을까? 난 브랜드보다 마음에 드는 냉장고를 고르고 있었다. 부모님이 쓰시는 것이고 내가 사는 게 아니라 강하게 주장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부모님은 냉장고를 바꿨다. 물건을 보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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