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년 전 나는 꽤나 깊은 슬럼프가 왔다. 그 친구는 1년 6개월 정도 나를 괴롭혔다. 20대에 내 이름으로 된 책 쓰기, 임상경력 5년 채우기의 목표가 끝나자 더 이상 이룰 목표가 없었던 나에게 찾아왔다. 거기서 벗어나고 싶었던 나는 매일 앉아서 글을 썼고 그 글은 책 한 권의 분량이 되었다. 출판사에 투고를 하고 계약을 했지만 ‘코로나’라는 질병의 유향으로 진행은 더디기만 했다. 여기서 나의 슬럼프는 더 진해졌다.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는데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도 의심부터 시작되었다. 또 내가 걸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배가 되었다. 혼자 멍하니 파란 하늘을 바라볼 때도 많았고 어두워지면 다리를 모으고 앉아 달을 멍하니 바라보며 달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하늘에 달과 해가 같이 떠 있는 상황을 마주하고서야 잠이 들었다. 어느 날은 눈을 뜨고 생각에 젖어 하염없이 그냥 울었고 지쳐서 잠들었고 눈뜨면 또 울었다. 제대로 떠지지 않는 눈을 들고 일을 하러 가서 또 아무렇지 않은 듯 웃기도 했다.
비혼 주의였던 내가 그 당시 결혼을 생각했고 결혼을 하게 되면 포기해야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꽤나 많았나 보다. 그래서 노력하고 싶지 않았다. 그다음의 목표를 세우지도 않았다.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목표를 세우고 좌절하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그 목표를 세우지 못한 것을 태어난 아기에게 저주하듯이 말할까 봐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비혼 주의였다. 결혼을 하더라도 도전해볼 것을 다 해보고 미련이 없을 때 아이를 낳고 싶었다. 그게 나와 나의 아이, 그리고 내 옆을 지키는 남편이 행복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완벽한 나의 생각과는 달리 현실은 내가 계획한 대로만 굴러가지 않았다. 그것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나의 꽉 막힌 동굴 안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것 같았다. 다 이룬 목표와 새로운 목표의 두려움 사이에서 나의 슬럼프는 시작되었다.
멈추고 싶었고 사라지고 싶었다. 죽고 싶은 마음과는 달랐다. 그저 아무도 나를 못 찾는 곳에서 숨은 쉬고 싶었다. 나의 현실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었다. 책임에 대한 두려움이었을까. 나는 무언가를 쥐어주면 아무도 나에게 최선을 다하라고 하지 않는데 최선을 다했다. 그저 나에게 실망하고 싶지 않아서.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이 피가 되고 살이 될 것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아서. 나는 스스로를 믿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무의식 중에 알았던 것일까.
나는 불확실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한 번 결정된 것은 자주 번복하지 않는다. 그 두 가지에서 흔들렸던 것일까? 나는 생각한다. 모든 것은 나에게 일어나는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결국 이 안 좋은 상황들은 뒤돌아보면 천운이었다고. 나는 모든 것에 종결 점을 찍고서야 슬럼프를 끝낼 수 있었다.
몇 년이 지나서야 슬럼프는 다시 올지 모르겠다. 달갑지 않은 이 경험들이 결국 그때의 바탕이 되리라 믿는다. 나이가 들기 전에, 책임질 것이 더 많아지기 전에 이런 경험들은 언제나 환영이다. 언제나 나는 이겨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