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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youngjoo Oct 31. 2017

주인을 위해 목숨을 바친 개?

불완전한 크리스를 나는 사랑해요

자기전 딸에게 책을 읽어준다.

요즘 읽어주는건 '탈무드이야기'로, 참 변치도않고 꾸준히 필독서인 이유가 있는게, 딸애가 다른 책에 비해 이 책에 엄청난 흥미를 보인다.


크리스가 집에 온 후로, 개와 관련된 이야기에는 유독 더 관심을 집중하는 딸이 어제 읽은 건 '주인을 지킨 개'에 대한 이야기였다. 한 가족이 집을 비운 사이 항아리에 있던 우유에 뱀이 독을 뱉어놨고, 그 우유를 마시려는 주인을 지키기 위해 개가 항아리를 깨고 그 우유를 먹고 대신 죽었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들은 딸은 눈물을 글썽글썽하더니 크리스를 불러 끌어안았다.


"엄마, 그럼 크리스도 우리를 위해서 죽을 수 있겠지?"


대답이 막연해진 나는 크리스의 눈을 보며 물었다.  


"너, 그럴수 있겠니?"



<뭐래? 전 오래 살거예요....>


요즘 반려견인구가 정말 많다. 반려견인구 1000만시대라고들 한다. 반려견을 키우는 가구가 급격히 늘어가면서 생기는 각종 사회문제들도 있지만, 그래도 개라는 종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가 높아져가는 건 적어도 반려견인인 내게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각종 개 관련 방송프로그램도 많이 생겼다. 거기서 알려주는 개의 행동의 이유나, 혹은 불쌍한 개의 사연같은 것들을 접하다보면 절절하기 그지없다. '주인을 위해 목숨까지 바친다, 평생 길가에서 기다린다' 하는 사연들은 보기만해도 내가 그 주인이라도 된양 눈물이 절로난다. 하지만 우리 크리스도 그럴까?


크리스는 현관 밖 소리에 민감하다. 애 키울 때도 안 붙인 '벨누르지말고 문앞에 놓아주세요"라는 포스트잇, 개 키우느라 붙여봤다. 택배가 올때마다 맹렬히 짖는 크리스때문에, 아이방에 없던 가림막까지 설치해 교육을 하다 짜증이 난 어느날, 개의 행동을 분석해놓은 인터넷신문사의 카드뉴스를 보며 나는 크리스를 향해 중얼거렸다.


"너 정말, 나 지키려고 택배오면 그렇게 짖는 거니?"


카드뉴스의 설명에 따르면 , 택배나 손님들의 기척에 민감한 개는 주인을 지키려는 본능이 유독 강한 아이라는 거였다. 하지만 크리스는 겁이 정말 많다. 산책하다가도 툭하면 내 뒤로 숨는 아이인데, 과연 나를 지키려고 그러는걸까? 그런 해석 자체가 -진짜일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인간의 과도한 기대가 만들어낸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과도한 기대는 언제나 그렇듯, 실망을 동반한다.


오랫동안 개를 키워오고 있는 한 친구는, 집에 낯선이들이 오면 개가 혼자 방에 들어가서 숨는다고 실망이라고 농담을 했다. 물론 크리스도 나를 실망시킨다(?). 일단 크리스는 개 치고는 게으른 구석이 있다. 사람들이 흔히 고양이의 특징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크리스에게 자주 발견되는건데, 예를들면 주인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쏜살같이 뛰쳐나와 매일같이 환영해주지 않을 때가 있다. 개를 찾아 헤매는 주인에 대한 얘기는 방송에선 본적이 없는데, 나는 간혹 그러고 있다.


또 다른 크리스가 깨트린 나의 '개에 대한 로망'은, 주인이 슬퍼하면 같이 와서 울어준다는 개의 이미지였다. 물론 내가 슬퍼하거나 화나면 크리스는 그 반응을 민감하게 캐치하기는한다. 하지만 결코 함께 울어주지않는다. ㅋㅋㅋㅋㅋ 와서 안기는 걸로 위로를 전해줄 때도 있지만, 때론 내 한숨소리를 듣고 심지어 도망가버리는 날도 있다. -설마 우리 개만 이런거 아니겠지 ㅋㅋㅋ-


그렇다고 크리스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다. 그건 눈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그거면 충분하다. 우리 딸은 영재발굴단에 나오는 영재가 아니고, 나는 인간극장에 나오는 불굴의 한국인이 아닌데, 우리 크리스한테만 명견래시를 바라는건 너무 가혹한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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