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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youngjoo Nov 07. 2017

꿈을 이루는 가장 쉬운 방법

50분의 1만큼은 성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대학생때 한 시사월간지 인턴기자로 일한 적이 있다. 나는 대학에서 언론정보학을 전공했지만, 실전에서 부딪힌 기사쓰기는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어서 몹시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월간지의 기획기사는 일반 신문이나 방송기사보다 굉장히 길어서, 그 긴분량을 풀어갈 수 있는 아이템을 선정하는 것부터가 그야말로 '일'이었다. 말로만 듣다가 처음 들어갔던 편집회의에서는, 준비한 모든 아이템이 '킬'을 당하는 경험을 했다. 인턴이 끝날때쯤에야 겨우 완성했던 나의 단독기획기사의 제목은 '신애견풍속도'. 취재하다보니 분량이 너무 늘어나서 유기견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가지 못했지만, 어쨌거나 상당히 긴 기사를 썼고, 표지에도 실렸다.


결국 가장 관심있는 일이 기사가 되었던 셈이다. 어쩌면 동물의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지금보다도 훨씬 못했던 20여년전 나의 유년시절에도, 나는 유기견 문제에 유독 아파하고 관심을 가졌었다. 부모님의 반대로 개를 키우지는 못했지만 내가 크면 꼭 개를 키우고, 그리고 유기견문제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싶다고 생각했었다. 워낙 팔랑귀를 가진 탓에 초등학교때부터 나의 꿈은 작가, 영화감독, 영화배우, 국회의원, 환경부장관, PD, 기자, 가수, 작곡가 -하나같이 엄청나게 거나했군ㅋㅋㅋㅋㅋ-등등, 기억도 다 나지 않고 셀수도 없이 바뀌어 왔지만 그 중 변하지 않는 하나의 꿈은 '뭐가 됐든 성공한 후 유기견센터 건립하기'였다. 구체적인 센터의 모습을 그려본적도 있다. 적게는 50마리에서 많게는 100여마리를 거두고, 분양이 되면 좋고 안되면 내 가족으로 기르는, 그 정도 유지비는 껌값 정도로 벌줄 알았던 치기어린 초딩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 초딩은 자라서 이래저래 우여곡절을 겪다가, 현재에는 전업주부가 되었다. 스스로의 선택이었지만, 주부로 지내는 건 분명 우울한 측면이 있다. 행복한 측면이 물론 많았지만 한편으론 내가 개인적으로 꿈꿨던 일들을 하나도 이루지 못하고 지내는 것 같아 속상할 때도 많았다. 한때는 야망으로 가득했던 나를 아는 친구들은 꾸준히 근황을 물어주며 내 인생의 행보에 관심을 보여줬는데, 나는 그럴때마다 "몰라, 이제 다 포기했어.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을거야."라는 말로 답을 했고, 아마도 상대방들은 김이 샜을 것이다.


진심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나는 '성공'에서 너무 멀어졌다는 생각을 하면, 어떤 꿈을 새로 갖는다는 건 사치, 아니 더 나아가 스스로를 더욱 절망에 빠트리는 일이 될 뿐일거라 여겼다. 그만큼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시도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내 인생에 더 이상의 '열정'은 없지만, 그 자리를 '딸아이'가 대신했기 때문에 그건 당연한 일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늘 마음 한구석엔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찜찜함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가 내게 동전지갑을 하나 선물했다. 해외여행을 앞두고 면세점에 갔던 엄마가 가방을 사다가 사은품금액을 맞추기 위해 샀다는 그 동전지갑은, 개 얼굴모양이었다.


문제의(?) 동전지갑


"너 개 좋아하잖아."


그래, 나는 개를 좋아했지. 잊고있었던 어린 시절의 나의 꿈이 떠올랐다. 유기견센터를 짓는 꿈. 엄마는 그 지갑을 기르는 개 대신으로 생각하라고 말했지만, 순간 내 머릿 속을 채운건 '지금에 와서 한마리라도 개를 못 키울 건 뭐냐'는 거였다. 말리는 가족도 없고, 집에 돌볼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 생각은 결국 연말에 가서 현실이 되었고, 나는 '한 마리'의 유기견을 입양하는 데 '성공'해, 꿈에 한걸음 다가갔다.


유년시절의 나는 적어도 50마리정도 되는 유기견들을 돌보려고 했지만 지금 나는 한마리를 데리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50분의 1 만큼의 꿈의 조각을 이룬 것도 0인채로 우울해하는 것보다는 큰 성공이다. 하고싶은 일을 현실로 바꾸는 건 의외로 아주 작은 용기 하나면 되었다. 당연히 누군가는 나를 보고 '값싼 위안, 찌질해보인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겐 꿈의 작은 한 조각이라도 실현하며, 크리스와 함께 하고 있는 삶이 소중하다.


내 삶을 '성공'이라 부르게 해주는 소중한 존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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