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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youngjoo Nov 01. 2019

패딩그녀와 나

이 글은 꼭 네게 가닿았으면 좋겠다

"Common sense is not so common."

("상식은 그렇게 흔한 것이 아니다.")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voltaire)의 말이다.

상식(Common sense)이란 다수가 공유하는 공통의 감각이란 뜻으로, 단어 자체가 상식의 뜻을 잘 묘사하고 있다.


볼테르는 상식은 그다지 흔하게, 손쉽게 논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상식은 상식적이지 않다’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사람에 따라

상식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생각의 범위가 매우 다를 수 있음을 통찰한 것이다.


이렇듯 볼테르도 정의내리기 어렵다고 논할만큼 어려운 상식 이란 용어가, 현실에서는 정말 많이 사용된다. 물론 그 용처를 보면 공감이 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볼테르의 말에 힘을 실어줄 뿐이다.


-사람이 여섯이면 상식적으로 몇 잔을 시켰겠어요?


조금이라도 바쁜 카페에서 일하면, 러쉬타임이라는 것의 존재를 알게 된다. 손님이 어마무시하게 몰리는 시간대를 말한다. 러쉬타임은 매장의 특성마다 조금씩 다르고 그 특성이란 건 주로 매장의 위치와 관련이 있다. 내가 일했던 매장은 앞에 법원과 변호사 사무실이 널려있는, 오피스상권이었다. 그곳의 러쉬타임은 아침 출근을 앞둔 시간인 여덟시 무렵에 가볍게 한번, 직장 점심시간인 열두시부터 한시반 정도에 절정으로 치달으며 한번이었다.


초짜바리스타의 경우는 바로 러쉬에 투입되지 않는다. 그 시간은 베테랑 바리스타들에게도 힘든 시간이기 때문이다. 정말 카페 알바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만큼, 끊임없는 고객이 밀려들어온다. 때문에 러쉬를 앞두고는 다들 분주하다. 컵과 컵홀더, 티슈나 빨대가 부족하지 않도록 수북하게 채워놓고, 시럽과 원두, 각종 부재료들의 남아있는 양도 꼼꼼하게 체크한다. 매장내 다회용컵 사용이 의무화된 이후 컵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어 고객들이 컵을 내놓기가 무섭게 그것들을 눈치껏 세척하러 드나드는 파트너도 있어야 한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해도 러쉬타임을 완벽하게 넘기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러쉬타임에 아무런 실수 없이 넘어가면 파트너들끼리 하이파이브를 하며 수고했다고 서로 말하기도 한다. 너무 많은 고객이 몰려오기에 어쩔 수 없이 저지르게 되는 실수 들이 있다. 내가 처음 러쉬에 투입됐을 때 맡은 건 계산대 포지션이었다. 그게 그나마 제일 쉬운 업무라고 해서 신입인 내게 온 거였지만, 사실 그건 가장 어려운 업무이기도 하다. <땡큐, 스타벅스>의 저자 도 처음 스타벅스 브로드웨이점에서의 첫근무를 앞두고 가장 두려웠던 것이 다른 무엇도 아닌 계산대에서 고객들을 상대하는 업무라고 했었다. 나도 바쁘고 고객도 바쁜 상황이란 때론 살얼음판 위처럼 냉랭한 시공간을 만들어낸다.


여섯 명의 젊은 여성고객이 떼지어 들어왔다. 점심 러쉬에 직장인들이 무리지어 들어오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이들 고객은 대부분 각자 다른 음료를 주문하기에 매일 마주쳐도 매일 긴장이 필요했다. 마음을 다잡고 한잔 한잔 주문을 받았다. 그들은 각양각색의 음료를 시켰는데, 음료가 총 다섯잔이었다.


"고객님. 여섯 분이신데 다섯 잔만 주문하시는거 맞으세요?"


처음 주문을 하러 들어올 때부터 산만했던 그들은 자기들끼리는 세상 제일 좋은 사람이라는 듯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여전히 내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있었다. 주문을 하며 눈 한번 마주치지를 않았지만 그건 잘못이 아니다. 직장인들끼리 친목을 다지러 온 점심시간 후 커피타임에, 굳이 바리스타와 안면을 틀 이유가 없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주문을 제대로 마치는 행위는 자신들 스스로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내 질문을 듣고도 귀찮다는 듯 고개만 끄덕이는 그들에게 더 이상 재차 확인을 할 여유는 없었다. 뒤에는 기다림에 지쳐 잔뜩 화가 나보이는 고객들이 문 밖까지 늘어서 있었다. 나는 다음 고객을 받았고, 곧 그들의 존재에 대해서는 잊었다. 몇분이나 지났을까, 줄어가는 줄을 보며 주문을 계속해서 받고 있을 때 아까의 그 여성들이 다가왔다. 화난 얼굴이었다.


"저기요. 바닐라 라떼 안나왔거든요? 제가 여섯잔 시켰잖아요?"


기가 막혔다. 솔직히 안그래도 지치는데 욕이라도 하고싶었다. 욕은 못하고 벙찐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까 고객님께 음료 한잔씩 확인해 드렸잖아요. 다섯잔 맞으시냐고도 여쭤봤는데."


"휴. 제가 언제 그랬어요?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봐요 상식적으로. 여섯명이 왔는데 다섯잔을 시켰겠어요?"


'아 ㅅ비ㅏㅓㅎ이ㅏ머애'(모법원근처에서 점심시간에 패딩입고 주문한 너 맞아요 호호)


'여섯명이 왔으면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여섯잔을 유추해서 주는게 맞다'가 상식인지, '주문한 갯수대로 음료가 나가는게 맞다'가 상식인지 나는 모르겠다. 아마도 패딩그녀와 나는 공통의(common) 감각을 공유하지 않았나보다.


사실, '몇명이 왔는데 상식적으로 몇잔을 시키는게 맞겠냐' 는 고객보다는 카페에서 일하는 입장에서 더 자주 생각하게 되는 말이다. 무리지어 방문해서 커피를 두잔 정도 시켜서 나눠먹자고 하는 이들이 정말 많다는건 뉴스나 인터넷을 통해 많이 알려진 흔한 진상의 행태라, 이제 그 얘기는 해봤자 재미도 없다. 우리 매장의 경우 인원수대로 주문하라는 원칙을 적용하고 있지는 않았다. 다만 몇 잔을 시키든 자유지만 (나눠먹을 용도의)여분 컵을 제공하지는 않았다. "이때 다른 매장은 그렇게 해주는데 니네는 왜 그러냐"고 우기다가"점장 나오라 그래"를 시전, 결국 우리 점장과 싸우기까지 한 할아버지고객이 있었다. 우리 매장 점장은, 맞다고 생각하는 말은 하는 똑부러진 타입이었다. 그 할아버지와 싸울 때 점장이 한 답이, 나는 더 없이 명답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맞다고 생각하시면 그 매장으로 가세요."


이 말을 듣고 인정머리가 없다거나 그렇게 장사하면 망한다거나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면, 당신은 내 상식선에서의 진상고객일 확률이 높다.


어쩌면, '카페 알바하다 몰상식한 사람을 누구보다 많이 만났다'는 내 한탄도, 내 기준에서의 상식을 들이대는 행위일지 모른다. 서로가 '상식'이라고 믿는 거은 정말 다르고, 그게 볼테르가 사실 '상식'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의 범위가 매우 좁음을 말한 이유일 거다. 그렇기에 "상식적으로" 라는 말을 들먹이며 언성을 높이는 자는 정말 용기있고 상식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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