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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youngjoo Nov 06. 2019

당신이 단골이라면, 말안해도 알바는 이미 알고 있다

내가 만난 진상들

카페 알바는 눈치가 빨라야 한다. 눈치가 없어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큰 프렌차이즈에서 일한다면 이미 정해진 매뉴얼이 있어서 그것을 빠릿빠릿하게 시행하는 빠른 몸만 있어도 되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필요한 이유는 카페는많은 이들에게 휴식공간이기 때문이다. 짧게는 대여섯시간, 길게는 하루종일 카페에서 살면서 단순히 주문을 받고 커피를 만드는 것 뿐만이 아니라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위한 환경을 관리하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일한 커피프렌차이즈는 매장의  채광에도 신경을 많이 썼는데, 계절별로 블라인드를 올리고 내리는 시간 같은 것도 규칙적으로 정해서 매장내 햇빛 정도를 조정했다. 해가 길게 들어오는 한낮에는 블라인드를 내려 빛을 차단하고, 이후에는 다시 빛을 들어오게 하는 방법이었다. 처음에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빛이 들어올 때마다 그때그때 결정하면 될 일을  뭘 그렇게 매뉴얼까지 짜서 규칙적으로 관리하나 싶었다. 하지만 일하다보니 생각보다 햇빛에 민감한 고객의 수가 많았고, 그제야 그렇게까지 관리하는 이유에 대해 이해가 갔다.


창가쪽 자리에서는 자주 햇빛에 대한 컴플레인이 들어오곤 했다. 빛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쉴수가 없다는 둥, 빛 때문에 덥고 춥다 등등. 블라인드를 올려달라고 부르는 고객들도 있었고, 심지어 소파나 테이블 위치를 옮겨달라는 이들도 있었다. 하루는 한 중년 남성고객이 다가오면서 말했다.


"빛이 너무 들어오니까, 소파좀 옆으로 돌려놔요."


매장 내 의자와 탁자 위치를 굳이 옮긴다는 것도 내 상식에선 특이한 것 같고, 그 정도는 직접해도 될 것 같은데솔직히 좀 짜증이 났다. 하지만그게 '알바'의 도리인 걸 어쩌겠는가. 점장에게 허락을 구한 후 공손하게 그를 따라가 소파와 테이블을 옆방향으로 돌렸다. 그걸 낑낑대며 혼자 돌리고 나자 그 고객이 웃으며 말했다.


"수고했어요. 내가 단골이야. 이렇게 놓는게 나을거 같아서 말해주는거야."


단언컨대 내가 매장에서 반년이 넘게 알바로 지내는 동안, 단골이 '내가 단골이오'라고 말하는 경우는 단 한번도 못봤다. 그 고객 역시 그날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사실 그 날 그의 행동이 '진상이다'까지는 아니었지만, '내가단골이오'라는 말을 들으면 자동적으로 재생되는 수많은 진상이미지들을 떠올리게 하는 데는 충분했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내가 단골이라는 이들의 행태는 주로 비슷하다.


"음료 맛이 왜 이래? 내가 단골인데 이렇게 음료가 나온 적이 없었어."


->매일 똑같은 음료 맛이다.


"내 자리로 좀 가져다 달라니까? 내가 단골이야."


->널 본적이 없다. 이 매장은 서빙은 안하는게 원칙이다.


"늘 내가 시켰던걸로. 단골인데 그것도 기억 못해?"


->역시나 널 본적이 없다. 늘 먹던걸로라는 멘트는 키핑이 되는 바에가서나 해라.


엄마에게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도대체 자기가 단골이라는 말은 왜 하는거야? 단골이라고 말안해도 어차피 몇번만 와도 얼굴 다 기억나는데. 그럴거란걸 모르나봐. 꼭 처음 와서 진상피는 사람들이 지가 단골이래."


그러자 엄마가 말했다.


"대접받고 싶다는 말을 그렇게 하는거겠지. 니가 이해해."


맞는 말이었다. 내가 단골이라는 말은 그러니 내게 더 좋은 대접을 해달라는 말과 같은 의미다. 하지만 대접받고 싶다면, 진상짓하지말고 존중받을 수 있는 행동을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알바들은 보통 늘 진상의 '개무시'에 치여있기 때문에, 조금만 자신을 존중해주는 고객을 만나도 극도로 감동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내 경우에도 그랬다.


한번은 내가 주문을 받다가 손을 휘둘러 계산대 옆의 카드케이스를 엎은 적이 있다. 그때 그것들을 말없이 주워줬던 고객은 매일같이 방문하는 단골이었다. 그는 한번도 생색을 낸 적이 없지만 모든 파트너가 그의 존재를 알았고, 그가 매일 시키는 음료를 알았다. 그래서 그의 음료는 늘 빨리 나왔다.


만약 그것보다 더 특별한 대접을 받고 싶다면, 특별한 대접을 받을 만한 경우면 된다. 어떤 고객이 특별한 대접을 받아야 할 것처럼 보이면, 알바들도 알아서 한다. 매일같이는 아니어도, 우리 매장에 자주 방문하는 고객 중에 시각장애인인 남성고객이 있었다. 그가 왔을 경우 바쁘지 않으면 나가서 우리는 문을 잡아주었고, 커피를 자리로 직접 가져다 주었다. 목을 다쳐서 목에 깁스를 감고 있는 고객도 있었는데, 그의 경우도 커피를 마시기 불편해서 커피를 가져다 주거나 하는 편의를 자발적으로 제공했다. 만약 이렇게 하지 못한다면, 그건 정말 그럴 수 없을만한 이유가 있는 경우이다. (바쁘거나, 못봤거나 등) 이런 경우도 아닌데 자기만 특별한 대접을 받고 싶다고 직접 어필하며 징징댔을 때 사탕을 받을 수 있는건 세살짜리 어린 애 밖에 없다.


내 경우에 일을 그만두기로 하고 퇴사날짜가 결정되면서 하늘을 날 것처럼 기뻤지만, 그럼에도 아쉬웠던 건 몇몇의 고객들 때문이었다. 늘 비슷한 시간에 와서 똑같은 녹차푸라푸치노를 시켰던, 그 얘기를 하다가 나와 친근한 몇마디를 더 자주 나누곤 했던 단발머리 여성고객이나, 늘 머그컵을 준비해와서 정중하게 주문을 했던 긴머리 고객, 늘 안이 춥지 않냐고 물어봤던 고마운 고객들은 지금도 간혹 생각이 난다.  그렇게 자주 오고 기억에 남는 고객들이 방문할 경우, 문 근처에만 와도 이미 음료를 포스팅하고 빠르게 음료를 준비했다. 그들도 그런 걸 알았지만, 그래도 그들은 늘 음료를 차분하게 주문했다. "내가 단골이야. 늘 먹던거야." 같은 요구는 하지 않았다.


당신이 만약 진짜 단골이라면, 당신이 말 안해도 알바는 이미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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