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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youngjoo Nov 07. 2019

아메리카노는 어디에 있나요?

이럴 때 전 우리아빠를 생각해요

카페 알바를 시작한 후, 부모님은 일이 어떤지를 자주 물으셨다. 서른이 훌쩍 넘어서 갑자기 해본 적 없는 일을 하는 딸이 안쓰러웠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마음을 알면서도, 부모님 앞에 가면 아직도 어린 애가 되는지라 "완전 힘들다"며 투덜대곤 했다.


하루는 "진짜 인터넷에 올라오는 것처럼 진상이 많냐? 별로 없지?"라며 '답을 정해놓고 묻는' 아빠에게 "엄청 많아요 더 심해"라는 답을 했다. "어떤 진상짓을 하냐"고 아빠는 재차 물었고, "일단 반말은 예사고~"라고 입을 떼자 아빠는 "그건 이해해줘랴. 아빠도 새파랗게 어려보이는 직원들에게 존댓말하기 어색해서 반말할 때가 많다"고 했다.


카페에서 일하는 내내 '우리 아빠도 저럴 수도 있다'라는 생각은 내가 고객을 대하며 인내와 이해를 다지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후 다짜고짜 반말을 내뱉는 중년이상 고객들을 대할때마다 '그럴 수 있지', '존댓말은 어색하겠지', '나도 동네 초딩에게 안녕이라고 인사하니까'라고 생각했다.


하루는 아빠와 엄마가 깔깔 웃으며 연락이 왔다. 카페(내가 일하는 체인)와 관련된 재밌는 일이 있었다면서. 무슨 일인지 묻자 엄마아빠의 대답은 이랬다.


아빠가 카페에서 거래처사람과 약속이 있었더랬다. 아빠가 평소에 커피숍을 이용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평소 길에 채이듯 보이는 그 체인점이 그날따라 찾기가 너무 어려웠단다. 그래서 지나가는 젊은이들에게 그곳이 어디인지를 물어봤더니, 어쩐 일인지 젊은이들이 하나같이 그런 곳은 모른다는 눈빛을 지으며 고개만 갸웃댔다는 것이다.


다른 이들에게 물어봐도 결과는 비슷했다고 했다. 그러던 중 한 상냥한 젊은이가 "그곳은 제가 잘 모르겠지만 저기에 들어가셔도 그걸 마실 수 있다"고 하면서 손끝으로 가르킨 곳은 다른 커피체인점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제서야, 아빠는 깨달았다고 한다. 아빠가 이제껏 묻고 다닌 것은 "스o벅o 어디있나요?"가 아니라 "아메리카노 어디있나요?"였다는 걸.


아빠는 젊은 사람들이 당신을 치매라도 걸린 노인이라고 봤을 지 모르겠다며 연신 웃었다. 마음이 찡하기도 했고, 친절하게 다른 카페를 안내해준 길가던 이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카페를 비롯해 전화상담원, 매표소 창구 등의 앞에는 요즘 <지금 고객님이 응대하고 있는 저희 직원은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입니다>는 식의 문구가 붙어있다. 이런 계몽은 정말로 필요한 것이고 내가 하고싶은 말이다. 하지만 반대로 내(알바)가 응대하고 있는, 어수룩하고 그래서 가끔은 '이 사람이 지금 제정신인가' 싶은 생각을 들게하는 진상같은 고객도 분명 누군가의 가족이라는 생각도, 어쩌면 꼭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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