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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youngjoo Nov 07. 2019

처음부터 마시지 않을 커피였다

진상도 사정이 있다


알바를 하면서 ‘인류애가 사라지는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 표현은 내가 만든 게 아니라, 오랫동안 패스트푸드점 알바를 하다가 결국 매니저가 되고 직업이 되버린 친구가 예전에 했던 말이다. 그 말을 처음 듣고선 ‘호들갑’이라고 생각했지만 ‘멋진말’이라고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겪어보니 그냥 ‘담담한 사실’이었다. 이런 내가 인류애를 찐하게 느끼며 눈물을 흘리게 했던 사건도 있었다. 이건 훈훈한 미담이 아닌 ‘진상썰’인데도 그렇다.  

    

그날은 비가 많이 내렸다. 사실 생각해보면 비가 내리는 날에 진상이 유독 많았다는 건 우연이 아니었다. 비가 많이 내리면 우산과 신발, 옷등으로 번거롭다. 머리카락도 붕뜨고 어쩐지 모든게 피곤해지는데 사람 사는게 사실 다 똑같은지라, 고객들도 짜증나고 알바들도 예민하다. 때문에 비오는 날마다 진상이 늘어난다는 건 어쩐지 동지애를 느끼게 하는 흐뭇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중엔 비오는 날에는 진상고객이 기다려지기도 했다.    

  

아무튼 그 비가 많이 오던 날, 한 60대 할아버지 고객이 들어왔다. 주문을 하러 다가오면서부터 이미 짜증이 잔뜩 난 얼굴이었다. 그는 계산대 앞에 서서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말했다. 물론 반말이었던 건 기본이다.     


“아무거나”     


예전 ‘만득이 시리즈’, ‘최불암 시리즈’가 유행하던 머나먼 옛날에, 하도 아무거나를 외치는 고객이 많아 ‘아무거나’라는 메뉴를 메뉴판에 추가했다던 개그가 떠오르는 ‘고전’ 주문이었다.    

  

“고객님 커피메뉴로 드릴까요?”

    

그날 나는 야간근무조였고, 시간은 이미 저녁 7시가 넘어가는 시간이었기에 ‘아무거나’여도 우선 카페인이 든 커피를 마실건지 말지를 물어야 했다.      


내 나름으론 꾹 참고 배려를 발휘한 응대였는데, 고객은 또 다시 짜증을 냈다.      


“아무거나. 아무거나 주라고”    

 

나는 분노를 억누르며 “그럼 그냥 아메리카노로 드릴게요”라고 응대한 후 가장 기본적인 음료인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으로 주문을 받았다. 그 후 할아버지의 존재에 대해서는 잊고 있었다. 스타벅스는 예상보다도 훨씬 더, 마감시간까지도 손님유입이 꾸준하다. 어지간한 진상이 아니고서야 한 명의 고객에 대해 깊이 생각할 정신적 여유는 없다.      


그런데, 그가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추가주문을 하러 나타난 거였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잔뜩 찌푸린 채였다.    


“커피 말고 먹을거. 아무거나”     


이제 포기였다. 그냥 차분하게 답했다.

    

“푸드 종류 말씀이세요? 케익이나 샌드위치 중에 드릴까요?”     


“아무거나. 아무거나~~”   

  

아까보다 한층 더 격양된 말투.     

 

나는 무표정하게 “케이크로 드릴게요 아무거나요~”라고 묻고 주문을 끝내려 했으나, 푸드의 경우 포크를 몇 개 드릴지를 물어야했다. 그 고객은 바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 앉아있어서 그가 혼자 온건지 어쩐지를 알길이 없었기에.      


“포크 몇 개필요하세요?”    

 

“하...좀 아무거나 주라고”   

  

나는 그냥 포크 두 개로 주문을 넣고는 그를 보냈다.    

 

정말 기분이 언짢았다. 아니 대체 저렇게까지 귀찮으면서 할아버지가 이 밤에 굳이 케이크는 또 왜 시킨거람.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진짜 이상한거 맛없는거 주문넣을걸.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리곤 또 다시 그를 잊었다. 아직 익숙하지 않았던 마감업무를 익히느라 정신이 없던 때였다. 끝도없이 쌓이는 설거지를 하고, 사용하고 남은 재료들을 하나씩 비웠다. 플로어(고객이 앉아있는 공간)에 나가 부분적인 청소를 하려고 나갔을 때, 대부분의 손님이 이미 빠져있었다. 그 할아버지가 아직 앉아있는 걸 발견했다. 할아버지는 어떤 중년 남성과 함께 앉아있었고, 둘 사이에는 서류가 높이 쌓여있었다. 서류탑 옆에는 손도 대지 않은 초코케이크가 덩그라니 놓여 있었다. 손님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고요한 플로어에서 그들이 하는 대화는, 옆의 바닥을 쓸고 있는 내게 고스란히 들려왔다.    

  

“알겠습니다.......”    

 

힘없는 할아버지의 목소리. 그는 이혼소송중이었다. 말로만 듣던 황혼이혼소송인 모양이었다. 이혼소송의 절차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그가 소송의 어느 단계에 있는지까지는 짧은 대화로 알수 없었지만 어쨌든 불리한 상황에 처한 듯 했다. 맞은편의 중년남자가 먼저 일어서고, 할아버지는 혼자 남았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테이블에 엎드렸다. 케이크와 마찬가지로 거의 손대지 않아 온기 없이 식어버린 커피가 담긴 머그잔도 한쪽으로 밀어내면서였다. 그리고 그는, 한동안 흐느껴 울었다.     


 처음부터 마시지 않을 커피였고 먹지 않을 케이크였다. ‘아무거나’라며 내던 짜증,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않던 그의 신경질적인 무기력함. 물론 자기가 사정이 있는게 알바에게 화풀이를 정당화할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의 사정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는 순간만큼은, 그의 행동, 다른 진상고객들의 행동마저도 이해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정없는 사람은 없다. 마음 편하려고 오는 카페. 그곳에서까지 예의를 차릴 여유가 없는 이들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이후의 근무일들에서 마음을 다잡게 해주는 역할을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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