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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youngjoo Nov 11. 2019

현금없는매장은 누구 탓일까

알바의 권한은 어디까지일까요

 

카페 알바면접합격팁이라는 게 있을까?


모든 면접이란 게 그렇지만, 카페 알바 합격은 운이 크게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당시에 인력이 얼마나 급한지 같은, 지원자의 내부역량과 상관없는 것들이 작용할 여지가 크다. 그렇기에 어쩌면 공부를 할 필요는 없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프렌차이즈커피업계의 동향과 전략 등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하고 갔다. 워낙 오랜만에 보는 면접이라서 기업분석도 재미있었다.


요즘 내 지론이 '모든  큰돈버는 사람은 대단하다'인데, 카페업계 사람들의 돈버는 전략들도 역시 대단했다. 특히 카페가 장기적으로 은행화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 인상깊었다. 앞으로는 고객이 돈을 가져올 필요없이 미리 자동이체를 등록해둔 그곳 매장의 충전식카드로 자유롭고 편리하게 카페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유명한 프렌차이즈의 경우 고객들이 카페 카드에 미리 예금(충전)해둔 돈이 어지간한 은행예금만큼 많다고하니 놀라운 얘기다.

    

실제로 내가 일했던 매장은 ‘현금없는 매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현금없는 매장이란 현금으로 거래를 아예 하지 않고, 신용카드나 각종 모바일페이, 아니면 카페고객카드에 충전된 금액만을 사용할 수 있는 매장을 말한다. 내가 일한 회사의 경우 전국 천여개 매장 중 내가 일했던 2019년 초 기준 300여곳이 현금없는 매장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최근의 조사-6월-를 찾아보니 759개 매장까지 확대되어 실시되고 있다고 하니 (적어도 그 프렌차이즈이용고객에게만큼은)피할 수 없는 흐름같다.


현금없는 매장이라는게 나조차도 설명이 어려울만큼 처음엔 적응이 어려운 개념이었다. 더구나 카드 충전도 현금으로 되지 않아서, 고객들도 알바들도 모두 곤란을 겪었다. 매장의 방침은 철저했다. 처음 실시되는 '현금없는매장'에 대한 고객들의 반발을 줄이고 적응을 유도하고자 현금으로만 충전 가능한 특별한 카드를 따로 제작해 두고 있을만큼, 본사의 현금없는매장 만들기 정책은 강력한 의지가 읽혔다. 자연히 현금사용이 줄어드는 건 매장실적과도 관련이 있었다. 아예 현금계산자체가 어려운 지경이었고, 현금을 들고 오는 고객을 바라보면 스트레스가 올라올 정도였다. ‘장기적인 고객님의 편의를 위해서 본사방침으로 시범운영중이다’는 말을 하면 그래도 절반 이상의 고객들은 이해해주는 편이었지만 대놓고 불만을 드러내는 이들의 수도 꽤 되었다.   


 반년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바리스타로 일하면서 숱한 진상고객을 만났지만, 문자그대로의 '쌍욕'을 들어본 경우는 열손가락 안에 꼽힌다. 그리고 그중 십중팔구가 이 현금없는매장정책을 설명하다가 일어난 일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멀리서부터 현금을 지갑에서 꺼내며 걸어오는 고객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렇게 마음의 준비를 하고 맞아도 감당하기 어려울만큼의 짜증을 내는 이들도 있었다. 물론 그들이 겪는 당혹감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알바도 퇴근하면 고객이 된다. 나 역시 '그놈의현금없는매장' 때문에 당황하고 화나는 경우가 아직까지도 종종 이어지기에, 고객들의 분노가 백번 이해가 간다. 욱할수도 있다.


하지만 그 분노가 알바에 대한 분노로 지속되는 점은 이해를 못하겠다.  본사에서 시키는 일인데 알바가 그걸 바꿀 힘이 있을까? 그럴 힘이 당연히 없다는 건 만만한 알바에게 화를 벌컥 잘 내고마는 성격의 그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거다.


-분노받이의 이전


그럼에도 힘없는알바 에게 화를 내는 것은 당장 본사, 책임자에게 그 분노를 전달하기가 어렵기 때문일 확률이 높다. 고객센터 등 서비스직을 고용하는 건 실제로 그 일을 정하지 않은 이들에게 짜증을 내는, 짜증을 대신 받아줄 사람을 돈주고 사는 구조라고 분석한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현금없는 매장을 대하는 진상고객들의 행태를 접할 때면 이건 정말 ‘분노받이의 이전’의 살아있는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현금없는매장진상고객’이 등장했다. 주문을 받고 있던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지갑에서 주섬주섬 현금을 꺼내 던지듯 내놓은 그는, 내가 현금없는 매장 방침에 대해 설명하는 짧은 순간동안 얼굴이 시뻘개졌다. 뻘건 빛이 턱끝에서 이마끝까지 올라오는 모습을 보면서 직감했던 것보다 그의 분노는 더 컸나보다.


"그게 무슨 방침이예요? 누가 정한건데요?"


"본사에서 시킨거여서요. 저희 매장이 시범적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저희도 시키는대로 하는거라 죄송해요. 혹시 다른 결제수단 가지고 계시면 부탁드릴게요."


그러나 그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기가 막혀서. 내가 기분좋게 커피 마시러 와서 이게 무슨 꼴이야? 점장 안에 있어요?"


(지금와서 말하지만 님은 처음부터 기분좋게 온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점장 안에 있냐고 물어서 점장이랑 아는 사이인줄 알았네요.......)


거듭 죄송하다고 말하며, 현금밖에 없으시면 현금충전용 카드를 이용해 주문을 해드리겠다고 했지만 그 고객의 귀에는 이미 내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는듯했다. 그녀는 점장찾기를 멈추지 않았다. 내가 기분좋게 커피를 마시러 왔는데 다 망쳤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결국 매장 안의 백룸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점장이 소환됐다.


 “이거 진짜예요? 현금 안받아요?


"네 고객님 전국에 300여 개 매장이 그렇게 운영중이고요. 이유는......."


나에게서 이미 들었던 것과 꼭 같은 설명이 또 다시 반복되자 고객은 오히려 화가 더 난듯 보였다. 그는 우리 말이 거짓말이라고 믿기라도 했던걸까. 이번엔 본사가 소환됐다.


"전화해서 물어봐도 되요? 본사에? 현금없는 매장 운영 진짜 맞냐고?"


"물어보세요. 본사방침이예요."


"당신 이름이 뭐예요?"


계속되는 삿대질과 격앙된 말투에 화가 난 점장은 건조하게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래도 고객은 그치지 않고 한술 더 떴다.


"전화번호대요. 미국 본사 전화번호."


"고객님 저희는 한국기업에서 운영하고요. 전화번호는 포털검색하시면 나와요."


그 말을 남기며 점장은 다시 업무를 보러 들어갔다. 사실 미국 본사 번호를 물어오며 협박을 하시는 고객들도 워낙 많다. 그리고 이런 일화들이 앱으로 볼 수 있는 고객의소리에 하루가 멀다하고 올라오곤 하는데, 이런 불만들을 아무리 읽어도 나는 알바가, 점장이, 뭘 잘못한건지 알 수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점장이 또박또박 응대를 하고 들어가자 고객은 이미 커피를 마실 생각은 전혀 남아있지 않았고 점장에 대한 분노로만 가득 찬 것 같았다. 그는 점장이 써서 내민 이름이 적힌 포스트잇을 내 눈 앞에 대고 마구 흔들어댔다.


"이거 그쪽 점장 진짜 본명 맞아요?"


이마저도 '고객의 을'이자 '상사의 을'인 알바에게 행하는 횡포였다. 저걸 확인을 해줘야하나 말아야하나, 잠시 갈등을 하다 기어가는듯한 목소리로 간신히 답했다.


"네....맞아요. "


나까지 갑자기 또박또박해질 수 없어 예의 불쌍한 알바모드를 유지하며 답하자, 고객은 그나마 내게 멈췄던 시선은 거두어 안쪽을 째려보며 마지막 말을 남기고 유유히 사라졌다.


"어우, 저 미친년!!!"

  

정황상 나를 향한 욕이 아니었지만 그 말을 눈앞에서 들은 건 나였다. 정말 기분이 나빴다. 수많은 진상을 맞이하지만 이렇듯 정말 정석적인 ‘욕’을 듣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봐도 그의 분노로 향하는 감정의 흐름은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당신은 매장에서 당신을 응대하는 알바에게 매장 정책을 바꿀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닐 것이다. 그런 당신이 알바에게 욕을 한다면, 그건 스스로도 너무나 잘 알 듯이, 힘없는 자에게 하는 분풀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게 바로 '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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