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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youngjoo Nov 15. 2019

사르트르는 진상고객이었다

워커벨은 어려운 말이 아니다

어느날 출근준비를 하는 내게 남편이 말했다.


"우리 회사 옆 커피숍에 커피 마시러 가면, 바리스타가 엄청 아는 척을 하더라. 그런것도 하라고 시켜?"


"아마 버디고객을 만들려고 그러는거겠지. 나도 본사에서 교육받을 때 알바기간 동안 목표칸에, 버디고객 다섯명 이상만들기 이런거를 미션이라고 첨에 적고 그랬거든. 서비스직이라면 꼭 해보고 싶은 거니까."


사실 나는 카페 알바의 과도한 아는 척이 싫은 고객에 속한다. 사실 진상고객에 대한 생각을 계속해서 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기도 했다. 알바들 또한 다른 곳에서는 고객이 되니까 말이다. 아마 나도 몇번쯤 진상이었을 것이다. 유난히 기억에 남는 불편한 장면이 있었다. 그건 내가 서비스직으로 입사하기 전, 매일같이 커피를 마시러 갔던 그 매장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매일 방문하면서 그곳의 바리스타의 얼굴을 전부 외웠지만, 굳이 아는체를 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했었다. 그리고 그건 알바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았다. 나는 그게 편했다.


그런데 어느날 한 알바가 나에게 매일 오시네요?라고 말을 건넸고, 나는 “아...네..뭐...”하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알바는 상처받은 듯 보였다. 말을 건넬 때부터 시켜서 하는 것 같은 티가 역력했다. 사실 나는 당시 자격증시험을 준비하고 있었고 매일 아침 생얼로 애를 등원시키고 카페에 들르고 있었기에 누군가와 친하게 대화를 하는 것이 불편했다. 게다가 알바 역시 원해서 인사를 한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났었기 때문에, 그의 잘해보려는 노력(?)을 짓밟은 것 같아 나의 미안함은 배가 되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얼마 후부터 더 이상 그 알바가 보이지 않았기에, 더 가슴이 아팠다.


아무튼 나는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서비스를 선호한다. 반면 내 친구는 알바가 말걸고 아는 척 해주는게 너무 좋다고 했다. 어떤 서비스가 좋은가에 대한 생각은 이처럼 모두가 다르다. 내가 근무를 할 때도, 아는척을 하면 좋아하는 고객이 있고 싫어서 고개만 떨구는 고객이 있었다.


어떤 이에게는 내 서비스가 맘에 안들고, 어떤 이에게는 더 없이 좋았을 것이다. 어떤 서비스가 좋은것이냐가 모호한것 만큼이나, 어떤 고객이 진상이냐 하는 것도 사실 지극히 모호한 개념이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되었을 때, 아는 동생이 전화가 왔다. 일은 할만하냐고, 자기도 투잡으로 커피알바를 하고 싶다고 농담을 하던 그녀가 갑자기 말했다.


"언니, 일 어때요? 진상 별로 없죠?"


"아뇨. 대부분 진상이에요."


"진짜요? 체인점인데도요? 진상이 근데 뭐예요?"


일한디 며칠 안된 당시의 나는 계산대에 서는 거 자체가 무서운 상황이었고, 그때 내겐 “아메리카노 보통 사이즈 하나 가져갈게요 결제는 카드로 할게요”를 빼고는 모두 다 진상으로 여겨질만큼 공포스러운 상태였다. 그게 사실은 내가 일을 못해서구나 반성을 하고, 레시피를 열심히 외우고 포스에 적응하려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레시피시험에 통과하고, 어느정도 적응을 마친 후에도 너무 많은 ‘커스텀’을 추가하는 고객의 경우는 여전히 힘들었다. 이게 실제로 ‘어려운’ 업무에 속한다는 건 알바몬 광고인 ‘알바를 리스펙’에 나오는 카페 바리스타의 경우를 보면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화장품 매장알바가 다 똑같아보이는 수십개의 립스틱 가운데 ‘딸기우윳빛핑크’를 단숨에 골라내는 것만큼이나 고난이도의 업무가 카페 알바에게는, 여러 가지 커스텀이 적용된 음료의 주문을 단숨에 외워받고 제조까지 뚝딱 해내는 일이다.    

 

일이 어렵다보니 고객탓을 하는 경우가 생기는 건 여전했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의 부재료를 반은 갈고 반은 통째로, 아예 다른 종류의 크림이나 시럽을 추가하고 꼭 있어야 하는 재료는 덜어내고. 같은 식의 음료를 만들다보면 바쁠 땐 머리에 쥐가 나는 듯했다. -물론 숙달된 바리스타들의 경우는 로봇처럼 뚝딱뚝딱 만들어내고 불만도 업었다. 나도 티를 내는건 아니었다. 너무 어려워서 이해가 안갔을 뿐-회사에서 얼마나 고심해서 만든 레시피인데, 어련히 제일 맛있지 않겠냐고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실제로 시럽같은걸 잔뜩 추가해놓고 맛이 없다고 다시 만들어줄 수 있냐고 하는 고객들도 다수 있었다.    

  

그런 생각이 바뀌었던 건 한 중년여성고객 덕분이었다. 그 고객은 매주 주말마다 아침 일찍-7시전후-방문해서 커피를 테이크아웃해 갔는데, 대부분 젖은 머리에 약간은 지쳐보이는 모습이었다. 궁금했다. 주말에 이렇게 일찍 머리도 못말리고 커피를 사러오는 이유가 무엇일지. 그 고객은 항상 할말만 하고 젠틀한 모습이었기에 대화를 나눌 여지가 없었고 난 그저 궁금해하며 주말오픈근무를 할때마다 그 고객을 은근히 기다리곤 했다.      


더 특이했던 건 그 고객이 주문하는 커피의 ‘커스텀’이었다. 그녀는 항상 아메리카노에 샷을 8번, 물없이 얼음만 받는 커피를 요쳥했다. 알고보니 그런 종류의 커피는 아주 진한 커피를 원하는 고객들이 자주 주문하곤 하는 방식의 레시피였다. 그렇다해도 샷 8번이라니, 사연이 너무 궁금했던 나는 어느날 고객에게 그것을 직접 물었다.   

   

“주말인데 이렇게 진한 커피를 계속 드셔도 괜찮으세요?”    

 

늘 굳은 표정이었던 그 고객은 의외로 내 말에 활짝 웃었다. 그리고 설명해주었다.    

  

“제가 회사에서 프로젝트가 있어서 요새 주말에도 출근을 해요. 주말에는 일어나기가 더 힘들어서 늘 이렇게 마시네요.”     


주말아침마다 그 ‘요상한 커피’를 받아갈 수밖에 없었던 그의 사정을 알자 짠한 기분이 들었다. 커스텀은 누군가에겐 정말로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문득, 주말에 새벽부터 일어나 애를 떼놓고 오는 내 사정도 생각이 났다.      


사실 커피 뿐 아니라 인생에서도 커스텀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인생의 커스텀’을 누구보다 활용하면서 살아가는 건 워킹맘들이 아닐까.


나 또한 풀타임워킹맘도 아닌, 5시간짜리 파트타임워킹맘으로 몇 달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커스텀’들이 추가되어 내 딸의 육아를 도와줬는지 모른다. 아이 픽업을 도와주고 내가 퇴근할때까지 집에서 아이를 데리고 있어준 친한 이웃엄마, 주말이면 아이를 도맡고 평일에도 숱한 살림과 픽업에 동원된 남편, 그렇게 해도 사정이 안될때마다 한시간 거리의 우리집에 와서 살림을 해주고 아이를 돌봐준 엄마. 이 모든 사람들의 도움은 ‘나’라는 시럽이 빠진 자리를 채워주는 휘핑크림, 샷, 초코파우더였다.      


‘커스텀’은 사실 내가 일했던 커피프렌차이즈에서 내세우는 장점 가운데 하나였다. 처음에는 일이 힘들다고 욕하기도 했던 이 커스텀이 얼마나 고마운것인지를 깨달은 날 이후로, 내 생각은 많이 변했었다.  

    

진상이냐 아니냐를 나누는 기준은 사실 너무도 주관적이다. 고객의 입장일때와 서비스직에 직접 임할때에 다르고, 같은 ‘카페노동자’의 경우에도 업주와 알바의 생각이 다르다. 예를 들어 하루종일 카페에 죽치고 있었다는 사르트르, 헤밍웨이, 스콧피츠제럴드의 경우는 진상고객이었을까? 이들은 사실 지금도 논의가 뜨거운 ‘자리를 오래 차지하는 카공족’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알바입장에서는 그런 카공족들이 하나도 얄미울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사장의 입장에서는 사르트르 또한 진상이었을 것이다.   

   

매해 발간되는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코리아 2019>에서는 ‘워커벨’을 올해의 트렌드로 꼽았었다. 워커벨이란 ‘착한 고객이 좋은 서비스를 받는다’는 개념으로, 소비자와 직원 사이의 균형을 맞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더 이상 사회에서 ‘손님이 왕이다’는 개념은 통하지 않고, 평등한 직원과 고객관계를 지향하며, 앞으로는 좋은 고객만이 좋은 서비스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사실 새롭거나 어려운 것이 아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거나,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같은, 굳이 말로 꺼내어 설명하는 게 더 구태의연한 상식들을 개념화한 것에 불과하다.      


어디까지가 제대로된 서비스이고, 어디까지가 진상인지를 생각하기가 머리아프고 어렵다면,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너희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황금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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