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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youngjoo Mar 11. 2020

월급주는 사람도 아니면서 업무지시를 내리면 진상이다

충고는 넣어두세요 

본사의 교육에서, 그리고 실제로 배치된 매장에서 알게 된 '교과서적인' 음료제공시간은 2분 30초 내외였다. 주문 후 2분 30초 내외의 시간은 누가 생각해도 결코 긴 시간은 아니다. 오히려 상당히 짧은 시간으로, 여러 잔의 음료가 밀려 있을 때는 눈앞이 하얘질 정도였다. 때문에 매장에서는 '루틴'이란 것을 강조했다. 많은 프렌차이즈카페에서 음료를 만드는 루틴을 정해 최대한 빠르고 효율적으로 음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바리스타들을 교육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 시간은 언제까지나 교과서적인 것일 뿐이다. 실제로는 이보다 늦어질 때도 많고, 반대로 매장여건이 허락할 때는그보다 빠르게 음료를 제공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의 변화범위란 것이 그다지 폭이 크지도 않은 것이어서, 길어봐야 3~4분 이내에서 벌어지는 차이다. 


손님이 별로 없는 시간에 따뜻한 티 종류나 아메리카노 같은 메뉴-쉽고 빠르게 제조가 가능해서 아마도 카페알바들이 가장 주문받고 싶어하는 메뉴-를 주문하면 1분 안에 음료가 나오거나, 심지어 주문을 채 마치기도 전에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파트너가 음료제조를 마쳐서 주문과 동시에 곧바로 음료가 나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은 어디까지나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지 '그랬으면 좋겠다'가 되면 곤란하다. 내가 알바를 하는 동안 느낀 것은 '정상에서 벗어난 기분좋은 친절'을 고객 입장에서 기대하기 시작하면 언제나 거기서부터 비극이 시작된다는 거였다. 


그날은 일요일 오전, 오피스상권에 있던 우리 매장이 상대적으로 한가한 시간이었다. 물론 고객이 없다고 해서 실제로 한가한 것은 아니었다. 고객이 없는 시간을 활용해 콜드브루를 내려놓아야 했고, 티백정리, 컵과 슬리브 채워두기, 각종 포장지나 냅킨 접어두기 등 많은 일들을 계속해서 하고 있어야 했다. 이 일들을 하다보면 '백룸'이라고 불리는 매장 안의 직원용룸을 오가야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곤 했다. 


특히 매장 내 머그컵 사용이 상용화된 후, 설거지를 위해 백룸을 오가는 일도 많아졌기에 한가한 시간대에 백룸에 들어가는 김에 이 일들을 몰아서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런 이유로 자리를 배운다해도 그 시간이 3,4 분 이상을 넘어가는 경우란 거의 없다.


계속해서 고객이 들어오지 않았고, 이럴 땐 계산대만 지키고 서 있기도 눈치가 보였다. 함께 있던 한 명의 파트너를 남겨두고, 나는 쌓여있던 머그와 접시들을 모아 설거지를 위해 백룸으로 들어갔다. 바쁜 설거지를 마치고 매장으로 돌아오는데, 매장 바에 고개를 내밀기가 무섭게 잔뜩 화난 소리가 들려왔다. 


"안에서 대체 뭘 한거예요???"


내가 들을 이유가 없는 소리였기에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다 그 날선 소리가 나를 향한 것임을 알고선 놀라서 되물었다. 


"네?"


그러자 앞에 서 있던 고객이 그동안 쌓여있던-바 모니터에 뜬 주문 시간을 보니 그 고객이 기다린 시간은 2분이었다-불만을 나에게 쏟아내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밖에 차 세워놓고 기다리는데, 내 음료를 한명이 주문 받고 한명이 만드니까 오래 걸려서 큰일이잖아. 이거 어떻게 할거예요?"


그 고객이 주문한 건 큰 사이즈의 아메리카노 세잔이었다. 두 잔에 들어가는 에스프레소 샷의 갯수와 우리 매장의 머신 갯수를 고려할 때, 아무리 서둘러도 2분보다 빨리 제조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런 사정을 굳이 고려치 않더라도 이 정도의 시간을 두고 '지체가 되었다'고 말하기도 어려워보여서 나는 그 고객의 화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진 말에 나는 억지로라도 사과하려는 마음을 접었다. 


"딱 보니까 후임 일 시켜놓고 안에서 노나본데, 그렇게 살지마요. 기다리는 손님은 뭐가 되요? 경우가 있어야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설거지가 음료제조보다 하기 싫은 일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정말이지 억울한 기분이었다. 내가 난생처음보는 사람에게 이렇게 면전에서 혼이 나야할 이유가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나를 혼내느라 이미 나온 음료를 한참 후에야 집어든 그 고객은, 음료를 제조해놓고 기다리고 있던 다른 파트너에게 하는 말로 '진상'의 종지부를 찍고 유유히 사라졌다. 


"어유. '혼자'서만 일하느라 정말 고생 많았어요. 고마워요."


나에 대한 분풀이로 반사적 감사인사를 받은 파트너 역시 그에게 하나도 고마워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그럴 이유가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안에서 놀았다고 느낄만한 정황 같은 것도 없었다. 나는 백룸에서 혼자서 설거지를 했고, 따라서 안에서 웃음이나 대화 같은 게 새어나온 것도 아니다. 내가 너무 오래 그 안에만 있던 것도 아니다. 바 모니터에 뜨는 주문시간은 항상 정확하고, 그 고객이 음료를 주문한 후 음료를 받아 나가는데까지 걸린 시간은 나에게 훈계하는 시간을 합쳐서 총 4분 30초였다. 


물론 나도 커피숍을 하루에 한번, 많으면 서너번도 이용하는 입장에서 음료가 빨리 나오기를 은연 중 늘 기대하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알바의 입장일 때도, 주문하자마자 음료가 나왔을 때 고객들이 "벌써 나왔어요?"라며 깜짝 놀라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 그 모습으로 인해 나까지도 기분이 좋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음료가 기대 이상으로 빨리 나왔을 때 -그게 정석이 아니라 기분이 상하는 게 아니라-기분이 좋다면, 음료가 기대보다 조금 느리게 나왔을 때 수용하는 마음을 갖는 것도 기본적인 사람의 태도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장을 이용하는 고객의 한 사람일 때, 자기가 그 매장을 운영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일의 프로세스를 지시하거나 충고하는 건 상당히 오만한 행동이다. 내가 백룸에서 놀고 있을 것 같아 훈계하고 징계하는 건 알바의 상사인 우리매장 점장이지 방문한 고객이 아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그날은 내가 바에서 음료를 제조해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포지션에 있었는데, 나이가 지긋한 남자고객이 음료를 건네는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거였다. 사실느끼한 아이컨택은 워낙 자주 당하는 일이라 그러려니 하면서 나도 같이 눈을 쳐다봤다. 그러자 그가 갑작스런 '지시'를 했다. 


"여기 다른 매장도 가봤는데, 거긴 음료가 1분 만에 나오더라고. 효율적으로 일하는 법을 고민해봐요.(찡긋)"


어안이 벙벙했다. 그때는 고객이 몰리는 시간대로, 음료제조에 총력을 다하고 있던 ㄸ라 그 고객과 눈을 마주치고 있던 때조차 내 손에는 다음 음료가 제조 중이었다. 그 고객 역시 굉장히 빠르게 음료를 제공받았고, 기분이 나빠보이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뜬금없는 업무에 대한 충고라니.


월급주는 사람도 아니면서 업무지시를 내리면 '진상'이다. 사실 서비스직만 힘든 게 아니라 모든 직장인은 힘들다. 그럼에도 '서비스직 알바'들이 다른 직종에 비해 더 겪는 고충이 있다면, 상사도 아니고 동료도 아닌 처음보는 이들조차 알바에게는 '충고'와 '지시'를 아낌없이 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2010년 개봉한 한국영화 <이층의 악당>의 여주인공 연주(김혜수 분) 대사 중 이런 게 있다. 


"한국남자들은 나이처먹어가지고 아저씨되면 아무한테나 조언하고 충고하고 그래도 되는 자격증 같은 게 국가에서 발급되나봐요?"


이 말을 알바버전으로 바꿔서 외치고 싶다. 


"사람들은 카페, 편의점 가서 고객이 되고나면 알바는 무조건 아랫사람으로 여겨서 조언하고 충고하고 그래도 되는 자격증 같은 게 발급되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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