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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짱 Jan 26. 2024

미니멀 라이프가 필요해

[ 지극히도 평범한 엉차장의 퇴직 살이 ]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집안 이곳저곳을 자주 둘러보게 된다. 베란다 창고에는 무엇이 있는지, 딸들의 방은 정리가 잘 되어 있는지, 다용도실의 보일러와 세탁기는 잘 돌아가는지... 


아내는 이런 날 보고는 꼭 기숙사 사감 같다며 매서운 눈빛을 보내기도 한다. 매일같이 회사 집 회사 집을 반복하며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만 하다 시간의 여유가 생기다 보니 평소에 신경도 쓰지 않았던 일들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곳곳에 무슨 짐들이 그리도 많은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입지도 않는 옷들이 옷장에 가득하고, 책장에는 먼지가 수북이 쌓인 책들로 가득했다. 다용도실에는 사용하지 않는 집기들이 너저분하게 가득했고 베란다에는 반려견 용품, 오래된 생활용품 등으로 빈 틈을 찾기가 어려웠다. 


이것들을 하나하나씩 끄집어내고 정리를 하려니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엄두가 나질 않았다. 오래되고 쓰지 않는 것은 매번 정리와 폐기를 반복해 왔는데 이 많은 짐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어느 날 큰딸이 방정리를 한다길래 아내와 함께 도와주게 되었다. 그 작은 방에 무슨 짐들이 그렇게도 많은지 정리하는 데만 반나절이 걸렸고 버려야 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쏟아져 나왔다. 비울 것들을 비우고 나니 한결 넓고 깔끔한 방이 되었다. 


며칠 후 이번에는 아내와 함께 베란다 창고에 쌓여있는 오래된 짐들을 정리하게 되었다.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짐들을 보니 이번에도 정리 작업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역시나 버려야 할 많은 짐들이 쏟아져 나왔고 개중에는 책들이 많았다. 이삿짐센터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일 중의 하나가 책으로 가득한 박스를 옮기는 일이라고 한다. 그만큼 책이 무겁다는 것이다. 아내의 직업이 독서지도사라 우리 집은 책이 이곳저곳에 많이 쌓여있다는 특징이 있다. 아무튼 이날도 무수히 많은 짐들을 버려야 했고 밀려오는 통증에 허리를 필 수가 없었다. 


아파트 경비아저씨는 버려지는 짐들을 보며 내게 물었다.


“어디 이사 가세요?” 


집안을 정리할 때마다 불필요하게 쌓여있던 짐들을 버리게 되는데 시간이 지난 후 비워졌던 자리를 보면 어느새 그만큼의 짐들이 다시 채워져 있다. 매번 비웠다 채웠다를 반복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만으로 살아가는 삶을 미니멀 라이프라고 부른다. 지금 우리 가족에게 필요한 삶이 바로 이 미니멀 라이프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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