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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짱 Jan 27. 2024

날 위한 공간, 공유 오피스

[ 지극히도 평범한 엉차장의 퇴직 살이 ]

대학 동기인 한 친구가 말했다.


“올해 초에 은행을 다니던 우리 매형도 명예퇴직을 하고 지금은 집에서 지내고 있어. 정년퇴직도 얼마 안 남았는데 말이지. 요즘은 등산이나 낚시를 다니며 시간을 보내고 있더라고. 매형도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 실직자 티가 나더라. 그 깔끔했던 사람이 수염도 기르고 말이야.”


친구의 말을 듣고 있자니 순간 웃음이 나왔다.


“남자들이 나이 들어 회사를 나오면 등산이나 낚시를 많이 다닌다더니 매형이 그러시네?”


나 또한 언젠가 회사를 나오게 되면 많은 실직자들이 그렇듯이 홀로 등산이나 낚시를 다니며 일상을 채워가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내겐 현실성이 없었다. 난 등산과 낚시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차피 다시 내려올 산을 왜 그렇게까지 구슬땀을 흘려가면서 힘겹게 올라가야만 하는지, 하루 종일 강이나 바닷속의 물고기가 미끼를 물어주기를 왜 마냥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퇴직 후 나는 관심도 없는 등산이나 낚시보다는 직장인들처럼 출퇴근을 하며 시간을 보낼만한 방법이 없는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은 한결같이 동네 도서관을 추천했다. 많은 책을 볼 수 있고 공부도 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용하는 곳이라 덜 허전하다는 것이다. 예전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 도서관에 다니면서 많은 책을 읽고 난 후 자기만의 독서법으로 책을 출간해 강의를 하고 다니는 사람들의 사례를 접해본 적이 있다. 책을 좋아하거나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괜찮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매일같이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실직자인 것을 티 내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도서관은 그냥 주말에 가끔 찾아보는 걸로 마음먹었다.


이런저런 장소를 찾다가 유튜브에서 공유 오피스 이용법과 장단점이라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사무실 공간이 필요하지만 비용을 아끼고 싶은 스타트업이나 1인 기업, 공부할 공간 등이 필요한 사람들이 매월 일정 비용을 지불하고 이용하는, 딱 내가 찾는 공간이었다. 이런 곳이라면 하루 종일 혼자 있어도 어색하거나 남들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 것만 같았다. 


며칠 동안 공유 오피스에 대해 알아보고 고민하다가 집 근처에 위치한 가성비 좋은 곳을 발견했다. 전화로 시설 이용에 대한 상담을 마친 후 이를 확인해 보기 위해 방문 일정을 잡았다. 약속한 날 방문한 내게 담당자는 이곳저곳을 안내하며 이용 방법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마치 북카페에 온 것만 같았다. 나는 만족스러운 마음에 바로 그 자리에서 이용 계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나만의 공간을 처음으로 갖게 된 것이다. 이곳은 내가 이용할 책상과 의자, 커피와 음료, 냉난반기와 무선 인터넷, 복합기, 회의실 등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이 모두 잘 갖추어진 탁월한 공간이었다.

 

나만의 공간을 마련하긴 했는데 앞으로 이곳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다만, 적어도 집에서 아내로부터 삼식이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고, 가족들에게 잔소리만 해대는 공공의 적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친구에게도 말해줘야겠다. 매형한테 공유 오피스 이용을 권해보라고. 적어도 지금과는 다른 생활을 하게 될 것 같다고 말이다.


이제 나도 남들처럼 매일같이 출근할 곳을 마련했으니, 다음 스텝으로는 무엇을 하며 먹고살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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