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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짱 Aug 02. 2024

대학병원

[소소해도 행복한 걸 어떡해?]

다섯 번의 고관절 수술과 두 번의 암 수술, 그리고 평소 지병으로 고지혈과 당뇨병을 앓고 계신 아버지는 오늘도 검사와 진료를 위해 병원을 찾으셨다. 정형외과와 내분비내과 의사를 만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삼개월 만이다. 이른 아침부터 예약이 되어 있는 검사를 받기 위해 아버지와 나는 서둘러 집을 나섰다. 아직 아침 8시가 되지 않은 시간인데도 채혈실 앞에는 많은 환자들로 붐볐다. 대부분 아버지와 같이 연세가 많으신 노인들이었다. 번호표를 뽑으니, 앞에 대기하고 있는 환자가 쉰 명이 넘었다. 도대체 이분들은 몇 시에 오신 걸까?


오랜 시간을 기다린 후 채혈을 끝낸 아버지와 나는 수술 부위인 고관절 엑스레이를 찍기 위해 영상의학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역시나, 이곳 대기실도 엑스레이 촬영을 기다리고 계신 많은 노인들 때문에 앉을 자리가 없었다. 또다시 긴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아버지와 몇 마디의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촬영실 문 옆에 대기자 명단이 보이는 화면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드디어 아버지의 순서가 왔고, 이내 아버지께서는 촬영실 문 안으로 들어가셨다.


찰칵, 찰칵, 찰칵.     


몇 번의 촬영 소리가 나더니 아버지께서는 문을 열고 나오셨다. 우리는 또다시 다음 검사를 받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에는 골밀도 검사였다. 검사실 앞은 놀랄 정도로 한가했다. 단지 두세 명의 대기자만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아버지, 이 검사는 사람도 별로 없으니 빨리 끝나겠는데요?”     


“그러게 말이다. 기다리는 것이 너무 지겹구나.”


곧 아흔의 연세에 이르는 아버지께 오랜 기다림은 지치고 힘든 일이었다. 대기하던 사람들이 모두 검사를 마치고 나왔는데도 간호사는 아버지를 호명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뭐지? 왜 아버지를 부르지 않지? 접수가 안 됐나?’


기다림이 길어지자, 마음이 불안해졌다. 그리고 검사실 밖으로 나오는 간호사가 눈에 들어와 곧장 다가가 물었다.


“간호사님, 저희 아버님 성함을 아직 부르지 않으셨는데, 접수가 잘 되었는지 확인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앞에 대기하시던 분들은 검사를 마치고 돌아가신 지 꽤 됐거든요.”


“환자분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간호사는 아버지의 성함을 들은 뒤, 접수자 명단을 확인했고, 충격적인 대답을 했다.


“아직 앞에 계신 대기자가 스무 분이 넘으세요. 저쪽에 있는 대기실에서 계시다가 모니터에 성함이 올라오는 거 보시고 검사실 앞으로 오셔서 의자에 앉아 기다리세요.”


바보 같은 내 모습에 짜증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순간 왜 대기자 수를 확인할 생각을 못 했는지 모르겠다. 늘 하던 일이었는데 말이다. 검사실 앞에는 검사 순서가 다가온 사람들이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머지 대기자들은 별도로 마련되어 있는 대기실에 모여 앉아 벽면에 설치된 모니터에 자신의 이름이 올라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를 모르는 것도 아닌데, 오늘은 왜 검사실 앞에서 바보 같은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다. 긴 기다림의 시간이 다시 시작되었다. 한 시간이 훌쩍 넘게 기다린 후 아버지께서는 골밀도 검사를 받으셨다. 세 가지 검사를 받는 데만 오전 시간이 모두 지나가 버렸다.


모든 검사를 마친 후 아버지와 함께 병원 구내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병원 밥은 병동이든 구내식당이든 맛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오후에는 오전에 실시한 검사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의사들을 만나야 했다.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갔고, 기다림은 계속되었다. 드디어 진료 예약 시간이 다 되었고, 의사를 만나 검사 결과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내분비내과와 정형외과 의사 모두 아버지의 몸 상태가 호전되었으니, 지금처럼 평소 관리를 잘하시면 아무 일 없을 거라고 말했다.


오랜 기다림으로 지친 아버지의 입가에 미소가 맴돌기 시작했다. 곧 아흔의 연세를 목전에 두고 계신 아버지께서는 건강 관리를 위해서 잘 드시고, 잘 주무시고,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을 열심히 하신다. 그런 아버지를 볼 때마다 건강 관리에 뒷전인 내 모습을 반성하게 된다.


‘얼마나 좋으실까? 좋아지셨다고 하니 나도 안심이네.’


의사의 진료를 모두 마친 후 집으로 향하는 아버지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 보였다.


대학병원을 찾을 때마다 제일 힘든 부분이 검사나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의사의 진료만 받는 일이라면 예약된 시간에 맞춰 병원에 찾아와 의사의 진료를 고 집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경우처럼 한 번 병원에 올 때 두 갯과 이상의 진료를 받아야 하고, 게다가 여러 가지의 사전 검사까지 받아야 한다면 하루를 모두 기다림에 써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그런데도, 매번 대학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의료진의 전문성과 현대적인 시설, 체계적인 시스템에 믿음이 가는 종합 병원이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병원에서의 기다림은 인내심을 시험하지만, 아버지의 건강을 위해서는 그 기다림도 마다하지 않는다. 기다림에 대한 보상이 아버지의 호전된 건강 상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봐, 대학병원! 석 달 뒤에 또 올께. 그때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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