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엉짱 Sep 06. 2024

청계천 산책

[소소해도 행복한 걸 어떡해?]

내가 사는 동네에는 청계천 지류 하천인 정릉천이 흐른다. 정릉천을 따라 5분 정도만 걸어가다 보면 청계천을 만나게 된다. 지금의 청계천은 맑고 깨끗한 물줄기가 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사람들에게 자연의 휴식을 제공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의 청계천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 시절 청계천은 시멘트 도로 밑에 감춰져 있었고, 정릉천은 각종 폐수로 오염된 물이 흐르고 있었다. 동네 아이들은 그곳에서 노을이 질 때까지 정신없이 놀기에 바빴지만, 그곳은 악취가 오물이 가득한 곳이었다. 또한 정릉천과 청계천이 만나는 자리에는 도로 밑 깜깜한 청계천으로 들어가는 곳이 있어 친구들과 함께 미지의 청계천을 탐험하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오물과 악취로 뒤섞인 정릉천과 청계천에서 뛰어놀다가 온몸에 퀴퀴한 냄새를 풍기며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 시절 오염된 정릉천과 청계천은 동네 아이들의 특별한 놀이터였다. 우리는 계단 하나 없는 제방을 타고 내려가 축구를 하거나 다방구(술래잡기 놀이의 일종), 짬뽕(물컹한 고무공과 맨주먹으로 하는 야구 놀이) 같은 놀이를 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더럽고 악취가 뒤엉킨 거친 환경 속에서도 우리는 어찌나 신나게 뛰어놀았는지 옷이 더러워지는 것도, 손에 흙이 묻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놀다 보면 옷은 더러워지고 악취가 몸에 배어, 집에 돌아가 어머니께 야단맞는 일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여름 장마철이면 거센 빗줄기가 정릉천을 채워 제방을 위협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오물과 쓰레기로 범벅이 된 검은 물이 넘실거렸다. 물살은 거셌고, 가뜩이나 시커멓던 물은 더욱 검게 변해버렸다. 또한 그 시절에는 동네 불량배들이 하천 근처에서 사고를 치는 일이 잦아, 어른들도 밤에는 하천 근처를 피해 다니기 일쑤였다. 아이들 역시 해가 지고 나면 하천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낮에는 우리만의 놀이터였지만, 밤이 되면 그곳은 두려움의 상징이었다. 1980년대 내 어린 시절의 청계천과 정릉천은 악취 나고 더러운 물이 흐르며 밤에는 무서운 물길로 기억될 뿐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서울은 변했다. 산업화 시절,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눈앞의 일에만 몰두하며 살던 시절의 오염된 하천들은 점차 변화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생활 수준이 높아지고 문화에 대한 관심도 커지면서, 서울시에서는 대대적인 하천 정비 사업을 진행했다. 오랫동안 오염되고 방치된 하천을 복원해 자연을 되살리고, 시민들에게 다시 돌려주기 위한 사업이었다. 그 과정에서 정릉천과 청계천이 복원되었고, 더럽고 냄새나는 과거의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진 곳이 되었다.


지금의 청계천은 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맑은 물이 흐르고, 그 속에는 다양한 크기의 물고기들이 유유히 헤엄을 친다. 오리들이 물 위를 떠다니고, 때때로 왜가리들이 날갯짓을 하며 하늘을 가로지른다. 주변에는 계절마다 다른 빛깔의 꽃들이 피어나고, 푸른 나무들이 청계천을 감싸 안으며 산책로를 장식하고 있다. 이곳에서 걷는 동안에는 빌딩으로 둘러싸인 도심 속이라는 사실을 잊게 된다. 자연이 주는 여유와 고요함 속에서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고,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나는 종종 저녁을 먹고 나서 아내와 함께 청계천에서 산책을 한다. 노을이 지는 저녁, 도심의 소음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청계천은 안식처가 되어 준다. 천천히 길을 걷다 보면, 하루의 피로가 풀리고,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들이 잔잔한 물소리와 함께 사라지는 듯하다. 자연 속에서 느끼는 평온함이 우리를 감싼다.


* 일러스트 출처 : chatGPT


특히 봄과 가을, 시원한 저녁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에는 많은 사람들이 청계천을 찾는다. 이곳에서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어우러져 길을 걷고, 때로는 물가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조용히 풍경을 감상하기도 한다.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 연인과 데이트를 즐기는 사람들, 운동을 하러 나온 사람들, 혼자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까지 모두가 청계천에서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청계천은 이렇게 서울 시민들에게 일상 속 작은 휴식처가 되어주고 있다.


산책을 하다 보면, 가끔은 내가 어린 시절에 봤던 도로 밑 그 시커먼 청계천이 떠오른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오염되고 방치된 청계천의 기억 때문에 감회가 새롭다. 이렇게 맑고 깨끗한 청계천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세상이 많이 변한 것처럼, 청계천도 우리 삶에 대한 변화의 상징이 된 셈이다. 세월의 흐름을 느끼고, 변화와 발전의 의미를 곱씹는다.


어린 시절의 청계천은 오염되고 악취가 심해 다가가기 거북한 하천이었지만, 지금은 생명이 어우러진 평화롭고 여유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나는 오늘도 청계천을 걸으며 잔잔한 삶의 행복을 맛본다.

작가의 이전글 늘 한결같은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