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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ka Sep 12. 2024

나의 직장人生 (5)

- 메타 인지 개발이 어려운 조직 문화 -




# 자기만 좋은 예스맨

Y는 참 성실해서 일을 끊임없이 물고 와 벌여 놓기는 잘한다. 우리 부서에 협조를 구해야 하는 타 부서 입장에선 일을 잘 받아주는 Y가 너그러운 예스맨이며, 대외적으로 큰 어른이다. 하지만 내부 살림은 상황이 다르다. Y가 제대로 가장 노릇을 하지 못해서 조직의 업무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다. 가끔 뉴스에서 보지 않는가. 유명 정치인이나 연예인이 집안 문제로 시끄러워졌다는 소식. 바깥 명성만큼 집안일도 잘할 거란 생각은 오산이다.


그렇다면 Y는 자신의 처지가 이렇다는 것을 잘 인지하고 있을까? 지난 시간에도 거론했듯, Y는 문제 인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 자기 세계 안에선 자기의 말과 행동이 일관되다고 믿는 인지 부조화 상태다. 누가 봐도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조직 운영이라는 걸 알 수 있는 상황인데도, 오히려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을 늘어놓는다.



# 자기 객관화와 조직 객관화

문제 인식이 잘 안되고 있다는 것은 결국 자기 객관화가 안되고 있다는 뜻이다.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객관적으로 인지하기 위해서는 한 차원 높은 시각에서 내 모습을 관찰하고 발견할 수 있어야 되는데, 객관적인 사실성과 다른 주관적 자아상만 갖고 있다면 문제를 똑바로 직시할 수 있겠는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객관적인 진단을 통해 나를 잘 통제할 수 있어야 된다. 이게 바로 메타 인지다.


[메타 인지]
자신의 인지 과정에 대하여 한 차원 높은 시각에서 관찰•발견•통제하는 정신 작용.


Y가 개인 스스로에 대한 메타 인지는 있을지 모르나 조직 관리자로서의 메타 인지는? 글쎄다. Y가 보질 못하니 그 주위 사람들이 객관적인 시각을 보태 주는데도 고개만 끄덕이고 결국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 답정너다. 회의할 때도 왜 의견을 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끄덕이며 다 듣고는 결국 자기 생각대로 일을 추진할 거면서. 이를 일찍 간파한 나는 절대 회의에 쎄빠지게 자료 준비를 해가지 않는다. 최선의 결정을 위한 토론 자리가 아니라, 이미 Y머릿속에 있는 결정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Y에게 이럴 거면 대체 회의는 왜 하는 거냐고 물었다. 자기의 생각보다 더 좋은 생각들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난 Y의 진짜 속내를 바로 읽을 수 있었다. 어느 직원이 자기 생각과 동일한 의견을 내면 ‘아, 내 생각이 맞았구나.’ 확인하는 거면서.


Y가 거의 메타 인지가 없고 주관적 자아상으로 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또 다른 근거가 있다. 프로젝트 결과에 대한 피드백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거다. 결과에 대한 냉정한 분석을 통해 문제점이 무엇인지 지적하고 개선점을 건의해도 쇠귀에 경 읽기다. 행사에 걸리는 작품 수가 많고 러닝 타임이 길어 힘들다는 관객들의 반응이 몇 년째 답지되는데도, 상부 조직에서 좋아하고 인가한 일이라며 현장의 소리를 반영하지 않는다. 이젠 건의하기도 지친다.


메타 인지가 없기는 M 과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기 입맛에 맞게 그린 설계도대로 일하라고 과원들에게 지시하는데, 함께 일하는 과원들의 수정 의견을 잘 수용하지 않는다. 자기의 생각과 기획력이 정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타당성의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결과물을 Y는 대부분 결재해 주는데, 나중에 타 부서인 내가 객관적인 입장에서 그 결과물을 보면 왜 그쪽 과원들이 그러한 수정 의견을 냈는지 이해가 됐다. 수정 의견을 반영했으면 더 좋은 결과물이 나왔을 거라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이는 나뿐 아니라 다른 부서 사람들의 공통적인 평가다.


그럼에도 M과장이 자기 생각을 밀어붙이고 그걸 Y가 잘 수용해 주는 이유는, 생각의 결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상부 조직이 좋아할 만한 내용을 담아야 상부 조직의 결재를 득할 수 있다는 업무 가치의 기준이 같다. 프로젝트의 타깃은 고객으로 잡아 놓고 정작 일 순위는 프로젝트가 고객에게 미칠 영향력과 고객이 원하는 니즈보다, 상부 조직의 입맛을 맞추는 거라니.  

이들에게서 아주 크게 배운다. 이게 바로 조직에서 승승장구하며 끝까지 살아남는 비결이다.


왜 조직 사회의 높은 자리에 소시오패스가 많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는지, 우리 조직만 봐도 알 수 있다. 저들이 원래 소시오패스였는지, 조직 문화가 저들을 소시오패스로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조직 속의 소시오패스 특징은 이와 같지 않을까? 자기만 헤드로 생각하고 나머지 과원들은 수족처럼 부리는 것이 업무의 효율과 완성도를 높이는 거라고 여기는 것. 그러지 않고서야 저렇게 독단적으로 일을 할 수가 없다.


아래 직원이 좋은 아이디어를 내면 그 프로젝트를 가로채, 자기 성과인 양 자기 이름을 맨 위에 걸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M과장. 직원들이 이를 두고 뒤에서 수군거린다. Y가 M과장을 괴물로 만든 거라고. Y는 M과장의 말재간을 당할 수 없어, 자리 배치부터 업무 배분까지 M과장이 요구하는 대로 다 들어주었다. 그렇게 형평성을 강조할 때는 언제고, 실력 좋은 M과장이 토라져 조직 성과에 기여하지 못할까 봐 벌벌대는 Y. 어쩔 땐 M과장이 Y보다 상석에 있는 것 같다.


난 언젠가부터 이해할 수 없는 M과장의 행동 양식도 분석하기 시작했다. 분석하기 좋은 자료들이 많았다. 그에게 당한 증인들이 많았고 실제로 내가 눈앞에서 목격한 것들도 있다. 그는 자기의 목적 달성을 위해 상대를 교묘하게 잘 조정하고, 누군가 자신의 잘못이나 오류를 지적하면 자신을 모함하거나 자신을 질투해서라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불리하다 싶으면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나 과장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내가 과장으로서 널 얼마나 도와줬느냐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여러 책과 자료들을 봤는데, 거의 모든 설명이 M과 일치해서 흠칫 놀랐다. 전문의는 이들이 사실을 왜곡하고 생각의 오류를 갖게 되는 이유가 실은 자신의 결함을 감추기 위해 가스라이팅 하는 거라고 했다. 이들은 자신의 결함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병원에 오기도 힘들며, 고치기 힘든 병이라고 했다.


“나르시시스트는 사실 내면적으로 강하지 못한 사람들이에요. 자기의 단점을 수용하기를 어려워하는 부류예요. 왜냐하면 자기한테 잘못이나 결함이 있다는 거를 인지하는 순간 엄청난 수치심을 느끼면서 굉장히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되거든요. 그래서 이 부류의 사람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본인한테는 잘못이 없다고 믿고 싶어 해요. 그 믿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가스라이팅을 사용하는 거예요. 어떤 문제 상황이 있었을 때, “이건 너의 문제야” “네가 부족해서” “네가 잘못 생각하고 네가 잘못 인지하고” 이렇게 상대방이 믿게끔 조종하는 이유는 자기의 결함을 커버하기 위해서거든요. 의식적으로도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자기의 결함이 드러나지 않게끔 가스라이팅을 한다고 볼 수 있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원은수]


# 자기 편향적 오류

오류가 난 자기 세계에 갇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이가 과장이 되면 그 아래 직원들은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 자기 객관화, 조직 객관화가 되지 않는 상사가 조직에 포진해 있으면 재덕 있는 유능한 직원들을 잃게 될 거다. 하지만 인지 부조화에 메타 인지가 없는 저들은 별로 불안해하지 않을 거다.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그 자신은 자신의 말과 행동이 일관되다고 굳게 믿고 있으니까. 자신의 손발이 되어줄 직원은 또 있을 테니까. 일단 성과를 많이 내면 그 밑에 많은 문제를 숨길 수 있으니까. 지금껏 그런 식으로 일해 왔어도 자리를 보전할 수 있었으니까. 자신이 옳기 때문에 지금 그 자리에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내가 틀렸다면 일이 이렇게 잘 될 수가 있겠나?
내가 틀렸다면 이렇게 과장까지 될 수 있겠나?



자기 객관화가 되지 않아 세상을 자기 맘대로 인지하는 역사의 극단적 예를 보자. 히틀러 그 자신은 독일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정의로운 투쟁을 한다고 생각했지, 자신을 독재 정치범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거다. 마찬가지로 북한 김정은도 인민들에게 진리를 가르친다고 생각하지 오류를 가르친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다. 그 입장에선 조국과 민족을 위해 매우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거다. Y와 M도 자신이 조직에 꼭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다. 자기가 없으면 이 조직이 잘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자부할 거다. 자기 객관화가 되지 않는 한, 그 자신의 말과 행동은 늘 정답에 가까운 궁극의 최선이라고 합리화될 거다.



# 조직에서 메타 인지가 필요한가

지금껏 왜 합리적으로 조직이 돌아가지 않느냐고 한탄만 해왔다. 따져 묻는 게 소용없는 일이란 걸 최근에서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한 개인이 아무리 고군분투한들 이러한 조직의 한계를 어찌 극복하랴. 바위에 계란 치기다. 내 영혼만 깨졌다.


저들에게 합리적이냐 비합리적이냐는 중요치 않다. 저들은 그저 조직을 다루기 가장 쉬운 방법으로 운영하고 있을 뿐이다. 저들에겐 이게 합리성의 기준이 될 테다. 안타깝다. 저 상태로 조직에 있는 한, 대체 무엇 때문에 일 잘하던 사람들이 조직을 떠나는지 본질을 보겠는가. 지금 당장의 업무 성과만으로 문제의 본질을 덮어버리면, 결국 사람을 잃을 뿐 아니라 조직이 질적으로 클 수 있는 성장 기회마저 잃는 게  아닐까. 지금 그 수순을 밟고 있는 것 같다. 직원들이 하나 둘 떠나가고 있으니까. 이들이 이직하는 배경엔 잘 보이지 않는 조직 시스템의 붕괴가 있다.


얼마 전 퇴사를 결정한 L에게, 상처만 받고 가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내가 했던 고민을 똑같이 하는 후배들에게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해 정말 무기력하다. Y는 마지막 인사를 건네러 온 L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다른 부서 가서 잘하세요.”


이 말을 건네 듣는 순간, Y를 향해 나온 나의 갑툭튀 한마디.

“너나 잘하세요.”


Y처럼 한 조직 안에 오래 있다는 것이, Y자신과 조직에게 좋은 일일지 아닐지 생각해 볼 문제다.


다른 데 가서 잘하라고?
자기는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저런 말이 나오겠지.



앞으로 Y와 M은 현 조직 안에서 인지 부조화가 아닌 메타 인지를 키울 수 있을까? 나 역시 이런 조직 안에서 메타 인지 능력을 키워, 보다 폭넓은 사고로 업무를 수행해 나갈 수 있을까? 일단 내 경우를 보자. 조직의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진단하려는 내 행동을 봐선 메타 인지가 발동된 것 같은데, 그럼 뭐 하나. 객관적으로 문제를 짚어줘도 조직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데 말이다. 이런 식이면 메타 인지 능력이 올라갈수록 괴롭지 않겠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게 더 속 편할 일이다.


모르면 약이라고?


모르면 약인데 왜 알게 돼서 이 난리인지, 나 자신을 자책할 일이다. 메타 인지가 높아져서 공정하고 합리적인 방식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관행이라는 이유로 비합리적인 방식을 취하기가 몹시 괴롭다. 어느 전문가가 강연에서 메타 인지를 높여야 된다고 강조한다면 되묻고 싶다.


과연 조직에서 메타 인지가 잘되는 게
좋은 일일까요?


뭐 케바케겠지만, 나는 매우 글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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