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껍데기는 가라
7회 차를 쓰면서 지난 회차들을 훑어봤다.
글 들어가기 전에 감정적으로 쓰지 말자 했는데,
보니까 감정적이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쓰려고 해도
감정적이지 않으면
내뱉을 수 없는 말들이었다.
그래도 속은 좀 후련해졌다. 그거면 됐다.
내가 정리하고 싶었던 건,
어쩌면 이런 묵은 감정들이었을지도.
갑자기 공지영 님의 ‘도가니’ 속 내용이 왜 떠오를까.
세상 같은 거 바꾸고 싶은 마음,
아버지 돌아가시면서 다 접었어요.
난 그들이 나를 바꾸지 못하게
하려고 싸우는 거예요.
내가 이렇게 비판적이 된 것도,
결국 나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닐까.
나 다움을 잃을까 봐.
성과 만능주의에 빠져 인간성을 상실한
조직 관행에 길들여질까 봐.
정말 중요한 것이 아닌데
중요한 거라는 착각에 빠져
정작 중요하고도 귀중한 것을
내 인생에서 놓칠까 봐.
실제와 본질이 아니면서
마치 진짜인 양 고개를 쳐들고 있는 이 허상들과
맞서 싸우고 있는 거다.
'믿음의 허상이 깨지면 다들 무너질까 봐
그렇게들 악착같이 붙잡고 있는 걸까?'
내 몇 년 치의 일기장 속을 뒤적여보면
제일 많이 고민하고 거론되는 말들이 있다.
알맹이와 껍데기에 관한 거다.
책 한 권을 읽고 나면
작가의 주제 의식이 파악되듯
지난 일기장들 속에서 파악된
내 주제 의식이다.
그간 나를 둘러싼 환경도 달라지고,
직업도 달라지고, 많은 게 변했지만
내 고민의 주제는 한결같다는 게
좀 신기했다.
20대에 겪었던 일들과 고민 내용,
30대에 겪었던 문제들과 고민 내용은
그 종류와 양상이 달랐지만,
그 속에서 제기하는 나의 물음표는
늘 본질을 향해 있었다.
지금에 와서야 내 기록들을 통해
나를 평가해 보니
이게 바로 나의 가치관이었다.
껍데기 갖고 문제의 본질을 흐리지 말자는 것.
알맹이는 없으면서 정의로운 척, 착한 척, 대단한 척,
뭐가 있는 척, 위선 떨지 말자는 것.
인생을 살면서 가장 괴로웠던 순간들을
기록한 내용을 보니
실체는 없고 껍데기만 남았을 때였다.
나의 직장 인생이 힘들었던 것도
바로 실체를 가린 거품 때문이었다.
겉으론 공정과 합리주의를 내세우고
팀워크와 협동의 미덕을 내세우지만
현실은 많이 다르다는 것.
더 화가 나는 건,
성과를 잘 내려고 인간관계가 깨지는 게
현실이며, 직장을 떠나는 사람들의 이유도
조직의 비합리적이고 비공정한 태도 때문에라는 게
문제의 본질인데도 이를 직시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
조직 수장으로서의 자기 체면이나
자기가 쌓아 올린 공적이 깃든 회사 이미지가
훼손되는 이야기라면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가 속한 조직이 대단하다는 자부심만
잔뜩 부풀려 진실은 쳐내는 모양새가
허영 또는 허세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정말 악취 나는 거품이다.
덕지덕지 분칠한 껍데기다.
아무 문제가 없다고 믿고 싶겠지.
문제로 판명되는 순간,
자기 체면이 깎이는 일이 될 테니.
회사를 위해 평생 충성한
자신의 공적이 더럽혀질 일이 될 테니.
그러니 퇴사 문제도
조직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로 정리하고 마는 거다.
지금껏 지켜왔던
믿음의 허상이 깨지면
자기 위신이 무너지게 될까 봐.
모든 걸 잃게 될까 봐.
살아갈 동력을,
존재의 이유를
상실하게 될까 봐.
참 딱하다.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껍데기에 빌붙어 사는 모든 인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