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쓰리 아웃 Three Out
zaka야. 약 6년 전 기억나니?
직장에서 번 아웃(Burn-out)이 와서
올 스톱 했던 거.
과도한 업무와 압박감으로
몸과 마음이 완전 소진됐었잖아.
뒤돌아보니 전조 증상도 있었는데…
불안과 짜증 현상이 늘어났다는 건,
여기서 잠깐 멈추고 숨 좀 쉬라는 신호였는데,
철저히 무시했더라.
의도적으로 외면한 게 아니라,
업무에 코를 처박고 있으니
마음이 악을 쓰는데도
못 알아듣고 있더라.
그리고 너,
착각에 빠져 있었잖아.
업무가 해결되면
모든 게 해결되는 것처럼 살았으니까.
실제로 업무 성과를 내면,
잠시 희열과 보람에 기뻐했잖아.
불안과 짜증도 해결되는 것 같았고.
이를 몸의 언어로 표현하면
네 몸에선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도파민이 폭발했어.
그런데, 그것도 잠시.
다시 불안과 짜증이 밀려왔지.
그래, 넌 중독에 빠져 있던 거야.
지독한 일 중독.
이게 도파민 중독이랑 똑같더라.
약물 중독자들이 일시적 쾌락 후에
도파민이 고갈되면 우울감이나
무기력 상태에 빠지니까
다시 약물에 빠지게 되는 것처럼
너도 성취로 인한 잠깐의 기쁨이 고갈되면
불안과 짜증이 밀려오니까
쾌감이나 보상을 얻기 위해
일에 빠지는 악순환을 계속한 거지.
왜 번 아웃이 왔던 걸까?
호르몬의 노예가 되어서?
일을 너무 사랑해서?
성과를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서?
자신이 무엇을 잘할 수 있고
무엇을 해낼 수 있는 건지
알 수 없으니까 불안해서?
아마도 그 원인은
이 모든 것의 총합인 것 같아.
그래도 하나 좋은 걸 얻었지?
번 아웃이 오도록 열심히 일한 덕분에
네가 뭘 잘하는지 혹은 뭐에 취약한지
주제 파악이 좀 됐으니까.
예전엔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정은 받아야 되겠는데,
대체 자신이 뭘 할 수 있는지 건지
알 수 없으니까
무조건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었잖아.
요령도 피울 줄 몰랐고.
요령도 뭘 좀 아는 놈이 피우지,
아무것도 모르니 어떻게 잔머리를 굴리나.
참 무식하게 일하고
미련하게 열심 낸 게 헛수고는 아니었지?
그런데 이렇게
원 아웃을 당하고 나니까
투 아웃당하기가 더 쉬워지더라.
이젠 업무 과부하로 인한 번 아웃과는 반대로
업무에 대한 의욕 저하로
보어 아웃(Bore-out)이 왔더라?
번 아웃이 올 정도였으면,
이제 웬만한 업무는 좀 숙련이 됐겠지만,
여기서 더 이상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현실에 무기력감이 몰려온 거지.
업무 효율성과 발전 방향에 대해
아무리 의견을 제시해도
상부 조직은 관성에 빠져 꿈쩍도 하지 않았잖아.
그러니 넌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비효율적인 시스템 속에서 늘 했던 방식대로
뻔한 일을 하는 게 점점 지루해진 거야.
올라오는 열정을 억지로 잠재워야 되는
너의 상황이 블랙 코미디 같기도 해.
변화를 불편해하는 조직 속에서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게
얼마나 허탈한 일인지 수차례 겪더니
이제 체념하더라.
이젠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더라.
철옹성 같은 조직의 수비에
투 아웃을 안 당하려야 안 당할 수가 없었겠지.
이쯤 되면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더 이상 의미를 찾을 수 있겠니?
이젠 그런 생각까지 하더라?
여기선 더 이상 쓸모없는
존재가 된 것 같다고.
이게 마지막 쓰리 아웃이야.
브라운 아웃.
Brown-out
일의 의미가 사라지고 그 일이 쓸모없다고
느끼는 상태.
연차가 쌓이면서 더 이상 열정이 없는 상태.
꽃과 나무, 자연에는 관심도 없던 네가
왜 요즘 화분 가꾸기에 빠졌는지 알 거 같아.
그리고 계획에도 없던 브런치 스토리를
어느 날 갑자기 시작했는지도 알 거 같고.
무기력함에 대응하기 위해
자기 방어 기제가 작동한 거지.
zaka야. 너무 낙담 말자.
네 직장 인생이 쓰리 아웃당한 거지,
네 인생 전체가 아웃당한 건 아니니까.
이번 게임은 아웃으로 끝났지만,
다음 게임이 또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