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과 악
에덴동산의 무대는 인간의 본성을 보여준다.
단순히 선악과 하나로
인간의 원죄를 규정지을 일이 아니다.
에덴동산의 주요 서사를 좀 더 풀어 말하면
늘 선과 악의 기로에 서 있는 불안정하고도 불완전한 존재의 탄생을 알리는 이야기다.
금방 전까지만 해도 하나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했던 선한 그녀였다.
에덴에서 정의의 상징으로 통했던 그녀의 포지션은
이제 에덴 사회의 기준에 의해 악의 축으로 옮겨졌다.
성인 : 지혜와 덕이 매우 뛰어나 길이 우러러 본받을 만한 사람
죄인 : 죄를 지은 사람. 유죄의 확정 판결을 받은 사람
성인과 죄인에 대한 단어 뜻의 명백한 차이만큼
이들의 실제 거리감은 그 격차가 얼마나 클까.
인류의 수많은 범죄사는 성인이 죄인 될 수 있고,
죄인이 성인 될 수도 있는 경계의 넘나듦이 얼마나 많던가.
인류사는 善 장르와 惡 장르의 크로스 오버다.
성경 속 에덴동산엔 경계 지점에 대해 생략돼 있다.
하지만 그 경계에 서 있던 하와를 들여다보지 않고서
죄와 인간에 대한 고찰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 하와의 마음속
하와가 뱀의 미혹을 받은 곳은
에덴의 어디쯤이었을까?
선악과가 저 멀리 작게 보이는 거리 정도였는지,
아니면 선악과나무 바로 앞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뱀의 미혹을 받은 하와의 눈에
선악과가 먹음직하고 탐스러워 보였다는 기록 속에서,
자세히 볼 수 있는 거리 안에 있었다는 걸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담 그녀는 왜 선악과나무 가까이서
그 주위를 맴돌았던 걸까?
그녀는 아담을 통해 분명 들었을 거다.
에덴에서 선악과는 금기시되는 요물이란 것을.
동산의 규모가 결코 작지는 않았을 터
그쪽 말고도 누빌 곳은 많았을 텐데
동산 한가운데에 자리한 선악과나무에
자꾸 눈길이 가는 걸 막을 순 없었다.
일부러 외면했지만, 늘 의식할 수밖에 없는 곳.
하와의 맘속에 물음표가 자리한 이상,
마침표를 찍는 일은 이미 예정된 일이었다.
# 뱀의 관찰력과 독심술
오랫동안 뱀은 하와를 주의 깊게 관찰했다.
선악과나무 주위를 서성이는 그녀의 발길과
선악과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을.
그녀가 무엇을 망설이고,
무엇을 갈망하는지,
뱀은 그녀를 속속들이 간파했다.
하와가 그 어느 때보다 선악과나무 가까이 섰을 때,
뱀이 그녀 앞에 스르르 나타난다.
그녀의 물음표에 다가가기 위해
뱀은 일부러 순진한 척 잘못된 정보를 던진다.
선악과만 금지했다는 걸 알면서도,
모든 과실을 금지한 거냐고 물은 거다.
하나님이 너희에게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셨다며?
만일 뱀이 선악과를 콕 집어 첫 질문을 했더라면,
하와는 뱀이 다가온 의도를 의심하고
경계했을지 모른다.
선악과에 대한 의구심으로 가득 찬 맘을 들킨 것 같아
잔뜩 날을 세우며 방어하는 거다.
혹여 하나님이 자기 맘을 시험하기 위해
뱀을 보낸 건 아닌지 의심하거나,
뱀이 자기를 꼬드기려고 한다는 걸
바로 알아차릴 수도 있는 일이다.
겉으론 무심한 척했을지 몰라도,
하와가 가장 촉각을 곤두세웠을 대상은
선악과였을 테니까.
선악과는 하와가 범접해선 안 될 금기어지만,
하와 맘속의 가장 뜨거운 화두였다.
과연 선악과를 먼저 꺼내지 않은 건
뱀의 탁월한 판단이었다.
하와의 심연에 있는 비밀의 방문을
그저 두드리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 거다.
그녀의 갈망이 밖으로 나오도록 유도만 하면 된다.
이미 뱀의 먹이가 된 하와.
뱀의 교묘한 연기인 줄도 모르고
뱀의 무지에 안심하며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아준다.
아니야,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먹어도 돼.
다만, 동산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 열매만
안 먹으면 돼.
하나님께서 그 열매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어.
그랬다가는 죽게 될 거라고 하셨어.
하와가 뱀에게 건넨 말은 그저 사실일 뿐이다.
그녀의 문장에서 진짜 속마음은
하나도 드러나 있지 않다.
그녀가 정말 알고 싶어 했던 것은 무엇일까?
속마음을 이미 읽은 뱀이
그녀의 속질문에 대답하듯 말한다.
너희는 절대로 죽지 않아.
뱀의 말에 뜨끔한 하와.
자기가 은밀히 품고 있던 의문에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던 것을
뱀이 과연 말해줄 수 있을지 기대치가 올라간다.
너희가 그걸 먹으면 그날로
너희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될 거야.
그래서 선과 악을 알게 될 거야.
하나님은 그걸 아시고,
너희더러 그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신 거야.
뱀이 처음 말해준 거다.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고만 했지,
아무도 선악과를 먹으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
말해준 적 없었다.
물론 뱀이 갖다 댄 이유는 이간질이었다.
인간이 영험한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과 같은 능력을 갖게 될까 봐
못 먹게 했다는 거다.
하와가 하나님을 충분히 오해할만한 발언이다.
뱀의 말대로라면 하나님이 하와에게 거짓말을 한 셈.
뱀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견줄만한 다른 데이터도 없다.
아담에게 물어본 적 있지만,
아담도 정확한 이유를 모른다.
그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된다고만 했다.
그것의 진위여부를 떠나서
확신에 차 물음에 답해준 이는 뱀뿐이었다.
뱀의 말을 곱씹을수록 더욱 확신에 차는 하와.
그동안 선악과를 먹으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
왜 말해주지 않는 건지 답답했는데,
이제야 진짜 이유를 알게 된 것 같다.
뱀의 말에 타당성이 더해지니
선악과가 먹음직스럽고, 탐스러워 보일 수밖에.
과연 사람을 지혜롭게 해 줄 것만 같은 선악과에
손을 뻗었는데, 뱀의 말대로 죽지 않았다.
(당장 죽지 않았을 뿐이다)
그녀는 바로 아담에게 이 소식을 전했는데,
그도 선악과를 먹었다.
실은 그도 하와와 같은 의문을 품고 있던 걸까?
하와가 선악과나무 앞을 계속 기웃거렸던 이유는
마음속 물음표 때문이었다.
그녀의 mbti는 호기심이 왕성한 INTP였을까?
그냥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선악과 보기를 돌같이 했다면 어땠을까.
만일 ‘선악과는 먹지 말라’하신
하나님의 명이 떨어지던 그날,
아담이 왜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 거냐고
이 한마디만 물었다면,
그래서 그 이유를 정확히 알았더라면
에덴의 서사가 바뀌었을까?
어쩌면 선악과를 먹지 말라 하신 이유는
정말 간단한 거였을지 모른다.
선악과에 독이 있으니까 먹지 말거라.
무지가 초래한 막연한 공포와 뒤틀린 운명을 바라보며
꼭 물질이 아니어도,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본다.
지금 내게 빚어지고 있는 어떤 현상에 대해
뚜렷한 원인을 모른다면 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누구나 불안하지 않겠는가.
불안정한 존재는 안전히 살아남기 위해
지적 욕망을 발동한다.
원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결할지
사방으로 탐미하는 거다.
그것이 어느 방향성을 가지게 될지는 두고 볼 일.
어떤 기준에 의거할지, 무엇의 영향을 받을지에 따라
선의 편에 설 수도, 악의 편에 설 수도 있다.
인간이 늘 선과 악의 기로에 서 있는 이유다.
결국, 하와가 선악과 앞을 기웃거렸던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믿는다 하면서도 의심하는 인간의 불완전함을
하와를 통해 바라본다.
오늘날 많은 크리스천의 모습이 아닐까.
매일 주여, 주여 하면서도
도저히 하늘의 뜻을 헤아릴 길 없는 일이 발생했을 때
하나님을 의심하는 마음들이 얼마나 많은가.
왔다 갔다 하는 내 마음만 보더라도
하와에게 어리석다 할 거 없다.
나중에야 비로소 하늘의 뜻을 이해하게 됐을 때,
간사스러운 내 맘이 얼마나 낯부끄러운지.
믿음과 선함은 자고할 일이 아니다.
이러한 인간의 양가적이고
불완전한 속성을 받아들이고 겸허해져야 한다.
하지만 이 또한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크리스천 인생도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그저 주 안에선 평안할 줄 알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