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aka Sep 04. 2024

그의 글투에서 그가 보인다 (2)

- 네 글에 너 있다 -



# 같은 주제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가끔 다른 작가의 출판 글이나 영상 글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한다.


나라면 이 주제를 어떤 식으로 풀어냈을까?


또는 내가 다루고 싶었던 주제를

어느 작가가 풀어낸 걸 보며,

흠칫 놀라거나 인상을 찌푸린다.

전자는 나의 관점과는 다르게 바라본

그의 시선이 감탄스러워서다.


신선하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새로운 시선~
와, 울림 있다


후자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드는 경우다.


그 좋은 주제를 이렇게 풀었다고?
그 이슈는 이렇게 한정적으로
정의 내릴 문제가 아닌데


물론 작가마다

생각과 취향의 차이가 있다는 걸 존중한다.

하지만 공적인 영역에서 쓰일 글의 경우,

신중하게 주제를 다뤄야 한다.

어떤 문제를 바라보는 나의 견해가 이렇다 할지라도

반대편의 입장에서, 또는 그 현상의 이면에

무엇이 있는 건지 다각도로 조사하고 분석해서

균형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


회사 내에서 M의 글이 논란이 됐던 것도

한쪽으로 치우친 그의 편협한 시각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불평불만에 대한 논평을 쓴다고 치자.

M의 논조는 불평불만은 무조건

악의 축이라는 식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섣부른 결론을 내기 전에

그 이면을 더 들여다봐야 했다.


그 불평불만이 조직을 와해시키려는 음모였는지,

아니면 더 나은 방향을 위한 문제 제기였는지,

왜 그런 불평불만이 나오게 된 건지,

문제의 근원을 더 파악해야 했다.


만일 그 불평불만이 건설적인 비판이었다면

악의 축이라고 일축할 수 없지 않은가.


M과 같은 시각을 가진 이들은 감탄했을지 모르나

다양한 시각을 가진 이들은

충분히 문제를 제기할 일이다.


그렇다면 M은 왜 그런 시각으로 이슈를 풀어냈을까?

10년 이상을 같은 조직에서 근무한 터라

그의 관점이 이해되었다.

그의 태도가 옳아서 이해된 게 아니라,

그의 글투가, 그리고 문제를 다루는 그의 태도가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는 거다.


잠깐,

M과 Y에 대한 것은 메인 디쉬라서

그 원인에 대해 다음 편에서 다룰 예정이다.

사이드 디쉬가 먼저 나오는 게 순서다.

첫 번째로 K의 글이다.



# K의 글 속에서…

K는 가장 연차가 높은

공영방송 출신 작가이자 왕 언니.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에 입사한 작가들이

거의 그 밑에서 일을 배웠다.

그녀의 글투는 튀거나 드세지 않고, 안정적이다.

음악 장르로 치면 고전적인 클래스.

그 아래서 배우면 글쓰기의 기본기를 다지기 좋다.

관록만큼 일의 자부심도 크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자기 머릿속엔

수백 개의 ‘생각 서랍장’이 있다고 한다.  

어떤 프로젝트가 주어지더라도

필요한 글감을 빼내 올 수 있다고 한다.

나로선 정말 탐나는 서랍장이다.


그런데,

그녀의 글은 기계화된지 오래다.

판에 박힌 글투가 무한 반복되고 있다.

같이 일하는 작업자들이 연륜 많은 K에게 말 못하고

뒤에서 수군댄다.


또 저번 대본이랑 똑같은데?
제목만 살짝 바꿨잖아.


K는 어떤 글을 써도 기본 이상은 한다.

하지만 참신함이 없다. 상투적이다.

일관된 문장 구조와 표현 방식에서

단어 몇 개 고치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K의 글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나는 그녀의 재능을 의심하지 않는다.

글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기계로 찍어 내듯 글을 찍어 낼 수밖에 없게 만드는

조직 시스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K의 상관인 Y는

그녀에게 일을 많이 맡기고 있는 상황.

다른 과가 맡지 않으려는 일까지

떠맡기고 있다.

Y는 아래 직원이 잘 달리면

더 잘 달리라고 채찍질하는 사람이다.

그가 어떤 리더인지는 더 말하면

입 아프고 속 터지니 여기서 그만.

그의 이야기는 나의 다른 연재 브런치북에

잘 소개돼 있다.


K는 더 이상 무리라는 걸 알면서도

Y가 밀어붙이면 결국 밀어내지 못하고

허겁대며 일한다.

눈이 풀리고 미간이 찌푸릴지언정

제일 연장자라는 책임감에 떠밀려 글 쓰는 K.

어떻게든 제 시간 안에 여러 개를 끝내려면

가장 익숙한 걸 꺼내 쓸 수밖에 없다.


K가 자랑하던 ‘생각 서랍장’.

이제 더 이상 꺼내 쓸게 없는 걸까?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무료해진 K의 글.

그 속엔 새로운 걸 생각해 낼 새가 없어

자기 복제를 할 수밖에 없는 K의 처지가 담겨 있다.


K의 글 속에서,

매너리즘에 빠진 줄 모르는 워커홀릭이 보여 안타깝다.

이전 01화 그의 글투에서 그가 보인다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