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야 하는 이유

예민한 감각을 갖고 싶다면

by 정물루

2025년 5월 24일, 두바이의 한낮 기온은 섭씨 51.6도까지 치솟으며 5월 기온의 최고치를 경신했다. 기후위기가 먼 미래의 경고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중동 한복판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위기를 정말로 ‘느끼고’ 있을까?


코로나19 이후, 기후위기의 심각성은 뉴스와 SNS, 정부의 경고문구를 통해 매일같이 접한다. 하지만 에어콘 바람이 흐르는 집과 쇼핑몰, 자동차 안의 온도는 늘 23도 안팎, 그저 쾌적한 공간의 연속이다. 밖의 뜨거운 열기와 모래바람은 마치 TV 속 다큐멘터리나 넷플릭스 시리즈처럼 느껴질 뿐.


인간은 오감으로 직접 체험하지 못하는 일에는 쉽게 무감각해진다. 뉴스로 접하는 기후재난, 난민, 생태계 붕괴는 무섭고, 섬뜩하지만, 나와 직접적 관련은 없는 일이다. 몸으로 직접 느끼지 못하는 위기가, 어떻게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디아스포라, 인간과 동물의 이주


중동 지역은 특히나 다양한 사회 이슈가 중첩된 곳이다. 그 중 하나는 ‘이주(displacement)’다. 정치적 탄압, 전쟁, 종교 박해, 기후 재난 등 여러 이유로 삶의 터전을 떠나야만 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생겨난다. 그들의 여정은 목적보다 먼저, 떠나야만 하는 이유로부터 시작된다. 의식주도, 안전도, 교육도, 어느 것 하나 보장받지 못한다.


하지만 이 디아스포라의 현실은 인간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극심한 가뭄과 사막화, 식생 변화로 터전을 떠나야만 하는 야생 동물들의 이주도 또 하나의 디아스포라다.


팔레스타인 출신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아미르 니자르 주아비(Amir Nizar Zuabi)는 2021년 ‘The Walk(아말 프로젝트)’로 시리아 난민 아동의 여정을 퍼펫 퍼포먼스로 세계에 알린 바 있다. 그리고 2025년, 그는 새로운 프로젝트 ‘The Herds’를 시작했다. 기후변화로 터전을 읽고 이동하는 동물들의 여정을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의 킨샤사(Kinshasa)에서 유럽을 거쳐 북극(Arctic)까지, 약 20,000km를 걸어서 횡단하는 대규모 사회참여예술(Socially Engaged Art) 퍼포먼스다. 2025년 4월10일 시작된 이 여정은 약 20개의 도시를 거쳐 8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이동하는 주체는 연출가 자신이 아니라, 동물 모양의 대형 퍼펫이다. 수 킬로미터를 걷는 동안, 퍼펫티어(퍼펫 조종자)들과 스태프들은 지역 주민, 예술가, 공동체와 교류하며 도시마다 고유한 이야기와 공연을 만들어 낸다. 이를 통해 지금 기후 위기를, 과학적 수치가 아닌, 감각과 정서로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 지역의 토속 신앙, 문화적 맥락, 사회적 쟁점이 동물의 여정과 자연스레 겹쳐진다. 이 퍼펫이 걷는 길 자체가 예술 퍼포먼스이며, 또 하나의 디아스포라다.



여정 중에 만난 사람들


‘The Herds’는 단순한 퍼포먼스를 넘어, 우리가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는 움직임이다. 지금까지 이 거대한 동물 퍼펫들은 콩고민주공화국 킨샤사에서 출발해 나이지리아의 라고스, 세네갈의 다카르, 그리고 모로코의 마라케시와 카사블랑카까지 도달했다. 칸샤사에선 홍수로 침수된 식물원 근처에서 퍼포먼스가 진행되었다. 대형 퍼펫이 물가를 지나갈 때, 관람객들은 자신이 겪은 자연재해의 기억을 떠올리며 감정적으로 반응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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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마다 반응은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 사람들은 퍼펫을 따라 걷고, 노래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기후위기’라는 말을 처음으로 몸으로 느꼈다는 것이다. 단순한 관람을 넘어선 참여와 공명이었다.


‘The Herds’는 도시를 통과하는 동안, 사람들에게 기후변화를 수치가 아닌 감각으로 전달했다. 이 프로젝트는 앞으로 스페인, 프랑스, 영국, 북유럽으로 향할 예정이다. 예정된 도시마다 다른 주제의 공연이 준비되어 있으며, 각기 다른 기후위기의 얼굴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몸이 마음을 움직일 때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는, 인간은 생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감정이 움직이면, 몸이 따라가고, 그 경험이 사고를 형성하는 것이다.


기후위기를 ‘인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가 직접 걷고, 만나고, 보고, 듣는 순간에야 비로소 위기는 현실이 된다. 진짜 변화는 스크린이 아닌 거리 위에서, 무대가 아닌 도시에서, 내 몸이 직접 움직이고, 삶 속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기억할 때 시작된다.


‘The Herds’와 같은 사회참여예술은 기후위기, 난민, 이주, 생태계 붕괴 등 거대한 사회 문제를 공감과 연대, 그리고 ‘함께 걷는 경험’으로 우리 곁에 데려온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절실히 필요한 예술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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