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를 들어라
그림 그리기 온라인 튜터링 배우기, 전시회 가기, 워크숍 참여하기, 아티스트 토크 참여하기, 모닝페이지 쓰기, 스케치하기, 여행하기, 음악 듣기, 책 읽기... 창의적인 영감을 찾으러 이곳저곳 기웃거려 봤다. 대학교 시절엔 그저 호기심으로, 광고 회사에 다닐 때는 뭔가 색다른 아이디어가 필요해서.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재료 쇼핑도 하고, 아는 언니 화방에 등록도 해봤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창의적이고 싶어 할까? 꼭 그래야만 하는 걸까?
AI가 등장하고 점점 똑똑해지면서, 우리는 AI보다 인간이 잘할 수 있는 게 뭔지를 찾기 시작했다. 일단, AI는 빠르다, 엄청나게. 속도 면에서는 이길 수가 없다. 그렇다면 천천히 해야만 가능한 것들 중에서, 우리가 잘하는 건... 명상, 데이드리밍? 생각하고, 상상하고, 꿈꾸는 것처럼, 느슨한 흐름 속에서 하는 일들은 우리가 훨씬 더 잘할 수 있다.
창의적이라는 건, 바로 의미없는 상상을 멈추지 않는 힘이 아닐까?
쓸모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게 AI보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거니까. 그래서 나는 이 ‘창의적 탤런트’를 더더욱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AI가 경쟁자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해봤는데, 현실이 되어버렸다.) AI는 이제 그림도 잘 그린다. 사진처럼, 만화처럼. 잘 그릴 뿐 아니라, 빨리 그린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건, 더 빠르게, 더 정확히가 아니라, '다르게' 그리는 일이다.
아무 규칙 없이, 제한 없이, 그냥 마음 가는 대로. 마구 만들어 보는 것. 어쩌면 그게, 우리의 본성에 더 가까운 일 아닐까?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배우며 자랐다.
그래서 피카소는 ‘얼마나 어린아이의 마음을 유지하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던 거다. 어린아이의 마음을 간직하라는 말은, 교육받기 전의, 마음대로 자유롭게 표현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잃지 말라는 뜻이다. 그 창의성을 죽이거나 억누르면서, 우리는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일하고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마치 AI처럼 되도록.
“Only what I created after the illness constitutes my real self: free, liberated.”
“병을 앓고 난 후에 만든 작업들만이 나의 진짜 자아를 보여준다. 자유롭고 해방된 나를.”
– 앙리 마티스 (Henri Matisse)
앙리 마티스는 평생 다양한 매체로 작업을 해왔다. 그리고 몸이 약해져서 회화 작업이 힘들어지자, 표현 욕구를 멈추지 않고 컷아웃 작업을 하며 죽기 직전까지 예술을 계속했다. 수많은 완성도 높은 회화 작품들을 많이 남겼지만, 스스로 가장 애정을 가졌던 건 오히려 가위로 자르고 배치해 붙인 작업들이었다.
그가 가위질을 하는 모습을 보면, 재즈를 연주하거나, 비보이 댄서들이 프리스타일 춤을 추는 것 같다. 계획 없이, 밑그림 없이, 색을 고르거나 구성을 짜지도 않은 채, 마음이 흐르는 대로 종이를 자르고 붙인다. 그는 말년에, 천국 같은 삶을 그리고자 했다. 그의 컷아웃은 자연, 여성, 신화, 바다, 식물처럼 삶에서 마지막까지 간직하고 싶었던 것들을 향하고 있었다. 붓이 아닌 가위로 그린 그림. 그건 단순한 대안이 아니라, 자유를 위한 춤이었고 해방의 움직임이었다.
최근 나는 어릴 적 애정했던 다꾸(다이어리 꾸미기)를 떠올리며, 남은 종이나 영수증을 자르고 찢어 랜덤하게 붙이기 시작했다. 버리려 쌓아두었던 잡지나 책을 넘기며, 나에게 힘이 되는 이미지, 위로가 되는 문장들을 발견할 때마다 툭툭 잘라냈다. 정돈되지 않은 그 조각들을 아무렇게나 배치하고 붙이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더 나를 힐링했다. 매일 쓰는 저널처럼, 매일 이렇게 콜라주를 해보니 어느 순간 내가 좋아하는 것들, 사랑하는 것들의 조각들이 퍼즐처럼 맞춰지면서, 슬슬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일단, 가위를 들어보자. 포장지를 자르고, 티켓을 붙이고, 좋아하는 색을 잘라보자. 마지막으로 종이를 만져보고, 자르고 붙여본 게 언제였나? 그러다 보면 어느 날, 잊고 있던 내 마음의 모양이 그 속에서 슬며시 나타날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