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과 루틴이 영감이 되는 순간
대학 시절과 사회 초년생 시절, 나의 루틴은 대부분 친구들과의 만남으로 채워졌다. 어디서 무엇을 먹고, 누구를 만날지가 가장 중요했다. 요가나 필라테스를 등록할 때도 누군가와 함께였다. 혼자 하는 일상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요즘엔 혼밥, 혼영, 혼행처럼 혼자 있는 시간이 유행이라 하지만, 그때만 해도 식당에 혼자 앉아 밥을 먹는 건 낯선 일이었다. 물론 학교 앞 스타벅스에서 혼자 숙제를 하거나 책을 읽기도 했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너 여기 있었구나'하며 찾아왔고, 나는 다시 친구들 속으로 돌아갔다.
외롭지 않았던 건 아니다. 오히려 외로움이 올까 봐, 더 바쁘게 사람들 속에 섞였던 것 같다. 소셜미디어는 소셜 해야만 하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누구와 어울리는지, 몇 명이 모였는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지 않으면 아웃사이더처럼 보이진 않을까 하고 무의식 중에 그런 포스팅을 했던 것 같다. 무리에 속해 있다는 증명은 매일 업데이트되어야 하는 것 같았고, 또 다들 그랬고, 그 안에서 혼자 있는 시간은 없었다.
회사를 다니면 사람들과 매일 만나고 일하게 된다. 그러면 외롭지 않아야 하는데, 그건 또 아니었다. 오히려 동료 관계에서 비롯된 긴장과 스트레스가 많았다. 퇴사를 준비하면서 나만의 시간을 만들고 싶어졌다. 그때 시작한 것이 모닝페이지다.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을 읽고, 매일 아침 A4 세 장 분량의 글을 손으로 쓰기 시작했다. 보고서도 아니고, 이메일도 아닌 글을 쓰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더군다나 핸드라이팅. 글씨는 엉망이고, 손가락은 아팠고, 뭘 써야 할지도 몰랐다. 그저 ‘좋다니까’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고, 어느새 1년, 2년, 3년이 흘렀다.
지금도 매일 쓴다. 꼭 세 장은 아니지만 두 장 정도는 거뜬하다. 예전처럼 손이 아프지도 않고,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할지 고민도 거의 없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노트의 질감, 종이의 색, 펜의 무게, 펜촉 사이즈 같은 사소한 내 취향들도 알게 되었다.
작년 이맘때부터는 달리기도 시작했다. 사실, 달리기를 해본 적이 없다는 걸 첫날부터 깨달았다. 운동화만 신고 뛰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나섰지만, 숨 쉬는 법도, 속도 조절도 몰랐고 100미터쯤 달렸을 뿐인데 벌써 숨이 차고 집에 가고 싶어졌다. 그래도 그냥, 조금씩 뛰었다.
무릎을 다치기도 하고 회복도하면서, 3킬로를 40분 걸려 뛰던 내가, 지금은 일주일에 다섯 번, 매번 5에서 10킬로를 꾸준히 달린다. 그리고 이제는 10킬로도 한 1시간 5분 정도면 완주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매번 쉽진 않다. 하지만 이제는 뛰지 않으면, 기분도 콘디션도 다 별로다.
혼자 하는 루틴이 생기면서, 혼자 사색하는 시간이 자연스러워졌다. 그때서야 조금씩 나 자신을 더 알게 되었다. 내 진짜 취향, 내가 바라는 삶의 방향, 내가 피하고 싶은 것들. 혼자 있는 시간 속에서만 알 수 있게 된 것들이다.
“Happiness is being on the beam with life - to feel the pull of life.”
행복은 삶이라는 줄 위에 올라서서, 그 줄이 나를 끌어당기는 힘을 느끼는 것이다.
— 아그네스 마틴(Agnes Martin, 1912-2004)
아그네스 마틴은 뉴욕 미니멀리즘의 거장이지만, 그보다 훨씬 깊은 정신적, 철학적 탐구를 예술로 실천한 작가다. 그녀는 조현병 진단을 받고, 환청과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며, 뉴욕시를 떠나 뉴멕시코 사막 한가운데에서 홀로 작업했다. 그녀의 그림은 일기처럼 조용하고, 반복적인 선의 리듬이 깃들어 있다. 마치 명상처럼. 아그네스는 매일 아침 흔들의자에 앉아 영감을 기다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머리가 아닌 마음이 움직여 맑아질 때까지. 세상에서 물러나 자기만의 고요한 루틴을 선택한 아그네스의 삶은, 예술을 사랑과 침묵, 집중의 상태로 만드는 법을 보여주는 듯하다.
“Beauty is in your mind.”
아그네스는 아름다움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 안에 있다고 했다. 그 마음을 보기 위해, 그녀는 선을 그리고 또 그리며 하루 종일 같은 동작을 조용히 반복했다. 고요한 루틴 속에서 비로소 마음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제는 나도 안다. 다른 사람보다 나를 더 자주 만나게 된 지금, 영감이 어디에서 오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반복과 루틴 속에서 나를 알아가는 이 시간이 더 많은 요즘, 예전보다 덜 불안하고, 훨씬 더 충만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