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민쥔(Yue Minjun, b.1962)
저런, 나는 네가 빵점을 받아 와도, 대학 시험에 떨어지고, 남들이 바보라고 손가락질을 해도 세상 천하에 대고 말할거다. "민아는 내 딸이다, 나의 자랑스러운 딸이다" 하고 말이다. 그런데 아빠에게 사랑받기 위해, 아빠 명예에 먹칠을 하지 않기 위해 그랬다니...... 더이상 말하지 마라. 참으려고 해도 또 눈물이 난다. 굿나잇. 이 바보 딸아, 못난 딸아. 아빠의 사랑을 그렇게 믿지 못했느냐. 이제 시험지를 찢고 어서 편한 잠을 자거라.
이어령,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한국에 계신 아빠께 필요한 전공 서적 몇 권과 함께, 아빠 서재에서 이어령 교수님 책 몇 권도 보내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렇게 보내주신 책 중,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라는 책을 어젯밤부터 읽고 있다. 아빠는 왜 이런 책을 보내서...... 어젯밤부터 목까지 차오르는 눈물을 꾹꾹 삼키고 있는 중이다.
이십 대 대학 시절부터, 신문에 당시 잘 나가던 소설가들의 비평을 신랄하게 쓰고, 평생 약 140권의 책을 펴내며 철학, 인문학, 소설, 시, 장르를 넘나들었던 한국 문학 최고의 지성, 이어령 교수님.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이 잘 몰랐던 것이 많았다고 고백한다. 거대한 세계와 우주가 아닌, 바로 코앞에 있는 내 딸에 대해서는 몰랐다고. 그 딸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알게 되었다고, 그 마음을 편지와 시의 형식으로 쓴 책이다.
너무 자주 들어서 더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말들이, 사실은 가장 중요한 말들일지도 모른다. 늘 곁에 있는 건 소중함을 모르고, 사라진 뒤에야 난 자리를 알아차린다. 당연하게 항상 곁에 있는 것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곤 한다. 세상의 모든 해법을 가지고 계신 것 같던 이어령 교수님조차, 몰랐다고 한다. 딸이 진정으로 원하고 바라던 것들을.
익숙한 내 식구들, 나는 우리가 같은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고 당연하게 여겼다. 이어령 교수님도 그랬던 것 같다. 멋진 집, 좋은 학교, 자랑스러운 부모님...... 그러면서, 딸이 진정으로 원했던 따뜻한 포옹, 굿나잇 키스는 차마 몰랐다. 당연한 건, 없었다.
웨민쥔(Yue Minjun, b.1962)은 '사람들을 생각하게 하려면 익숙한 것을 뒤틀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익숙한 장면들을 낯설게 그려낸다. 그의 끊임없이 웃는 자화상 시리즈는, 소셜미디어에서 항상 좋은 일만 보여주는 모습들이 떠오르게 한다. 누구든 항상 웃는 일만 있을 수는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소셜미디어에서는 다른 사람들은 늘 좋은 일만 있는 듯하고, 힘들고 우울한 일은 나만 겪는 것 같다.
웨민쥔은 1989년 톈안먼 사태(천안문 학살)를 목격한 세대다. 직접적으로 정치적 메시지를 담기엔 위험한 중국에서, ‘웃음’이라는 가면을 통해 체제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은근히 드러낸다. 그의 거의 모든 그림에는 자기 얼굴을 복제한 듯한 인물이 등장해 억지웃음을 짓고 있다. 정체성 상실, 개인의 획일화, 변화하는 사회 속 ‘나’의 위치를 탐구한다. 사회 시스템에 적응해야 하기에, 오히려 거리를 두게 되는. 그 모순 속에서 마주한 나의 자화상.
내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나는 누구인가?
그저 그런 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실제로 내가 바라는 나는 어떤 모습인가?
웨민쥔의 작품들 속 인물들은 다 웃고 있지만, 너무 어색해서 기괴해지고 슬픔마저 풍기는 듯하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행복한 가족’, ‘행복한 삶’이란 것도 실은 부조화스럽고 억지스러운 모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모두는, 웃고 있지만 사실은 울고 있는 걸수도. 이어령 교수님이 딸의 진심을 몰랐듯, 웨민쥔의 자화상들도 그렇게 나에게 묻는 것 같다.
웃고 있는 척, 알고 있는 척, 하고 있는 건 아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