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회흐(Hannah Höch, 1889–1978)
부엌에서 가위를 다양하게 쓰는 한국인들에 대해, 예전에 글을 쓴 적이 있다. 외국인들이 집에서 박스를 자르거나 포장지를 자를 때만 가위를 쓰는 것과 달리, 우리는 고기나 김치를 자를 때도 가위를 쓴다. 칼과 도마를 씻어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고, 여러모로 효율적이다. 그래서 가끔 한국에 가면 꼭 사 오는 물건 중 하나가 괜찮은 부엌 가위다.
오랜만에 아이들 콜라주 미술 숙제를 도와주다가, 한참 동안 애정했던 취미인 다꾸가 생각났다. 스티커, 쪽지, 잡지 페이지, 영화 티켓, 포토부스 사진 등 마음대로 (나름 예쁘게) 붙이고, 여러 색으로 간단히 메모까지 하며 시간을 보냈던 기억. 아무한테도 보여주지 않을 다이어리를 꾸미느라 학용품 쇼핑과 사재기는 일상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아무한테도 보여주지 않을’이라는 점이 오히려 킬포였던 것 같다.
다이어리는 나에게 아주 사적이고, 마음대로 데이드리밍을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러면서 내 하루하루의 패턴을 찾기도 하고, 좋아하는 색, 단어, 모양을 발견하기도 했다. 역시 혼자서 보내는 쓸데없는 시간과 행위는, 나를 찾는 데 꼭 필요한가 보다.
<주방칼로 자른 다다 – 독일 바이마르 시대의 맥주배스러운 마지막 문화를 가로지르며 (Cut with the Kitchen Knife Dada through the Last Weimar Beer-Belly Cultural Epoch of Germany, 1919–20)>라는 제목에 끌려 찾아보게 된 독일 작가, 한나 회흐(Hannah Höch). 주방칼로 맥주배를 자른다고?
화가 난 듯한 제목만큼, 작품 속 인물들의 표정, 사물들, 컬러 모두가 우울하고 심각해 보였다. 일단 다다이즘 자체가 예술 그 자체를 의심하는 사조다. 제1차 세계대전 중, 멘탈이 붕괴된 유럽의 몇몇 예술가들은 이 미친 세상에서 예술도 미쳐야 한다며, 이름조차 아무 의미가 없는 ‘다다(Dada)’라는 예술 사조를 만들었다. 기존 모든 체계를 조롱하며 새로운 예술 개념 작업을 시작했고, 한나 회흐는 콜라주, 특히 사진을 활용한 포토몽타주 작업들로 유명하다.
한나 회흐는 다다 그룹의 홍일점이자 선구자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여성 예술가로서 정식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남성 동료들이 종종 그녀를 ‘여자 친구’나 ‘비서’처럼 대했다. 그녀의 작품들은 남성 중심의 권력, 미디어, 전쟁, 가족 제도 등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콜라주라는 형식은 작품을 우스꽝스럽고 어색하게 만들면서도 자꾸 다시 보게 만든다. 이른바 ‘웃픈’ 정서랄까, 웃다가 뜨끔해지는 작품들이다. 잡지, 신문 등 익숙한 매체의 이미지를 재배치해,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세상 뒤에 진짜 세상을 보여주려는 것 같다. 익숙해지면 안 된다고, 여성의 이미지를 강요하지 말라고, 우리도 리더가 될 수 있다고.
캐나다 출신 작가이자 영상 제작자인 커비 퍼거슨은 “Everything is a Remix(모든 것은 리믹스다)”라고 말했다. 예술과 창조는 복사, 변형, 결합의 반복이며, 우리는 모두 이전의 것을 샘플링해 새로운 것을 만든다. 중요한 건, 어떻게 조각들을 다시 엮느냐다. 리믹스를 통해 창조와 문화를 다시 보게 만든 110년 전의 한나 회흐의 콜라주 작품들이 전하려 했던 메시지가, 언젠가는 세상에 닿아 큰 움직임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