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 앤파의 보름달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하루
지루해 난 하품이나 해
뭐 화끈한 일 뭐 신나는 일 없을까
할 일이 쌓였을 때 훌쩍 여행을
아파트 옥상에서 번지 점프를
신도림 역 안에서 스트립쇼를
야이야이야이야이야
하는 일 없이 피곤한 일상
나른해 난 기지개나 켜
뭐 화끈한 일 뭐 신나는 일 없을까
머리에 꽃을 달고 미친 척 춤을
선보기 하루 전에 홀딱 삭발을
비 오는 겨울밤에 벗고 조깅을
야이야이야이야이야
할 일이 쌓였을 때 훌쩍 여행을
아파트 옥상에서 번지 점프를
신도림 역 안에서 스트립쇼를
야이야이야이야이야
모두 원해 어딘가 도망칠 곳을 모두 원해
무언가 색다른 것을 모두 원해 모두 원해
나도 원해
대학생 시절,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신나게 부르고 또 부르고 매일매일 듣고, 자우림의 콘서트까지 다녀왔지만 지금까지도 이 가사에 나온 건 하나도 해본 적이 없다 여전히.
위로가 되었던 부분은, 이런 걸 원하는 게 나만이 아니라, '모두 원한다는 것'이다. 이런 일탈을 꿈꾸는 나만, 사이코인 줄 알았다. 다른 사람들은 다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나만 이런 상상을 하고 꿈을 꾸는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의외로, 이런 사람들이 많다니 반가웠다. 다들 하루하루의 현실 속에서, 언젠가는 노래 가사처럼은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탈출해보고 싶은 소망과 현실 사이에서 그럭저럭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걸 수도.
홍콩의 아티스트 아파 앤파 (Afa Annfa)는 광고회사에서 오랫동안 아트 디렉터로 상업적 작업을 하다가, 전업 예술가로 전향했다. 브랜드나 상품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포커스를 돌려 작업을 하면서 그녀는 비합리적인 자신의 잠재의식과 꿈의 세계를 탐구하는, 현실을 살짝 초월한 어슷비슷한 상상 속 비주얼을 창조한다.
한 달에 한번 지구에서 보이는 보름달을 보면서, 사람들은 여러 상상을 해왔다. 우리 조상님들은 특히, 정월 대보름에는 무사태평과 건강을 빌며 나물 반찬에 오곡밥도 해 먹고 모든 액운을 없애달라며 희망을 빌었다. 보름달 속 토끼 커플을 상상하며, 밤새 우리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약을 절구 공이로 찧는 상상을 하며, 동요 <반달>까지 만들어 부르고 했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생각해 보면, 이거야 말로 루나틱 (lunatic/ 미친, 정신 나간 것 같은)한 상상이 아닐까?
한 달에 한번 보름달이 지구에서 보이는 건, 한 달에 한 번은 정신이 나가도 괜찮다는 퍼미션 같은 게 아닐까?
한 달 내내, 현실을 열심히 살아냈으니, 하루 정도는 깜깜한 밤에 혼자 밝은 보름달을 보면서 이상한 상상을 맘껏 해도 된다고. 사이코 같은 하룻밤이 앞으로 계속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줄 수 있다고.
2024년 새해 목표 중 하나는, 한 달에 한번 '사이코의 날' 디자인하기다.
지금 생각나는 건, 8인치짜리 블랙포레스트 케이크를 사서 한 번에 먹기, 밤새 잠 안 자고 전쟁 영화 보기. 신도림 역에서 스트립쇼는 못해도, 내 방에서 홀딱 벗고 춤이라도 출 수 있는 소심하지만 신나는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