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예술가, 슬리만 만수르 (Sliman Mansour)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이스라엘에 대한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은 이전 이스라엘 대 어느 중동 전쟁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사상자를 내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가자(Gaza) 지구 인구의 85%가 국내 실향민(Internally Displaced Persons, IDPs)이 되는 상황이 지금 현재, 2024년에 일어나고 있다.
세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그 안에 갇혀서 나오지도 못하고, 거의 100일째(1월 14일로, 전쟁 발발 100일이 된다) 안전한 곳 없이 떠돌아다니고 있다. 유엔은 가자 지구가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 곳이 됐다는 암울한 평가를 얼마 전에 내렸다.
이스라엘의 유대인이 해외로 흩어지면서 생긴 단어인 '디아스포라'가 아이러니하게 지금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대표하게 되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올해로 76년째,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여권도 없이 전 세계를 떠돌아다니고 있다.
행동하지 않으면, 더 위험해진다. - 아이웨이웨이 (If you don't act, the danger becomes stronger. - Ai Weiwei, Weiwei-isms, 2013)
팔레스타인의 예술가들은 자신들이 역사에서 잊히지 않기 위해 팔레스타인 내에서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그들의 현실과 문화, 전통을 알리는 작품 활동을 계속해나가고 있다. 평화롭고 여유로웠던 시절과 팔레스타인 땅에 대한 노스탤지어(nostalgia), 동시대의 사회적 문제점과 이스라엘에게 당하고 있는 억압과 제약,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투쟁을 작품의 주제로 담는 액티비즘(activist art) 성향의 작품이 많다.
팔레스타인 대표 예술가 중 한 명인 슬리만 만수르(Sliman Mansour)는 1947년에 태어나 베들레헴과 예루살렘에서 자랐다. 슬리만 만수르의 작품에는 팔레스타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몇몇 심볼이 등장한다. 그의 작품을 통해, 많은 젊은 작가들이 영향을 받아, 이 심볼을 작품에 적극 활용하며 전 세계인들과 팔레스타인에 대해 소통하고 있다.
예술은 팔레스타인의 정체성을 되살리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예술을 통해서, 우리는 팔레스타인 정체성을 굳히는 심볼을 만들어 가고 있다. - 슬리만 만수르 (Art helped and is still helping a kind of revival of Palestinian identity. And through art we helped in creating that…. creating symbols for Palestinian identity through art. - Sliman Mansour)
1967년 6일 전쟁 이후부터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 국기와 국기 색상의 모든 공개적인 전시를 금지했다. 출판물부터 광고, 심지어 오래된 사진까지 팔레스타인 국기를 외부에 공개하면 투옥시키거나 처벌을 받았다. 팔레스타인인들은 표현의 자유 역시 이스라엘에 의해 제한받고 있다. 1980년대에는 시오니스트 세력이 팔레스타인 메인 갤러리인 라말라 아트 갤러리(Ramallah Art Gallery)를 폐쇄하고 팔레스타인 국기의 색상인 빨강, 초록, 하얀색, 검은색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나빌 아나니(Nabil Anani), 슬리만 만수르(Sliman Mansour), 이삼 바더(Isam Bader) 세명의 예술가를 체포했다.
이 당시, 이스라엘 경찰서장은 이들에게 정치적 예술을 하지 말라고 하며 앞으로는 팔레스타인 국기 색깔이 있는 수박을 그려도 전부 압수할 거라 하였다. 여기에서 영감을 얻은 예술가들은 수박을 활용해 여러 작품활동을 하기 시작했고, 아크릴 오일 페인팅부터, 벽화, 사진, 일러스트레이션, 실크스크린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여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도 팔레스타인 뿐 아니라, 수많은 아랍 예술가들의 연대와 지지의 심볼로 수박을 많은 작업에 활용하여 소셜미디어에 포스팅과 전시를 하고 있다.
오렌지는 팔레스타인의 풍부하고 비옥한 땅을 나타낸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인해 75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조상 대대로 살던 마을과 도시에서 쫓겨난 ‘낙바(Nakba, 재앙)’ 이전까지 오렌지는 팔레스타인 농부와 사업가들에게 중요한 수출품이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계에 매우 중요한 오렌지 농장을 버리고, 팔레스타인 땅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의 한과 땅에 대한 강한 유대를 의미하게 되었다.
슬리만 만수르의 작품에서도 오렌지는 자주 등장한다. 그의 작품 중 하나인 ‘살마(Salma)’는 오렌지를 담은 바구니를 든 여인의 모습을 묘사했다. 이 작품은 팔레스타인의 전통적인 의상과 자수를 통해 그들의 문화와 역사도 함께 보여준다. 여인의 전통의상과 아련한 표정, 오렌지가 든 바구니, 또 팔레스타인 전통 패턴의 배경에서 과거 평화로웠던 팔레스타인에 대한 노스탤지어(nostalgia)와 슬픈 현실, 그리고 그들의 소중한 역사와 전통을 보여준다.
올리브 나무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에서, 수백 년 된 올리브 나무를 가꾸며 살아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역사다. 가물고 척박한 땅에서도 질긴 생명력으로 버텨내고, 올리브 나무는 짧게는 수백 년, 길게는 2000년까지도 산다. 1948년 이스라엘이 점령하기 훨씬 이전부터 대부분의 올리브 나무는 그렇게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함께 땅을 지켜왔다.
‘집안에 올리브 나무가 있으면 굶어 죽지 않는다’는 오랜 속담처럼, 수천 년부터 지금까지 올리브 나무는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함께 공생하며 전체 농업 소득의 큰 부분을 차지해 왔다. 이스라엘한테는 올리브 나무는 들보처럼 성가신 존재였고, 1967년 이래 점령군과 정착민들이 80만 그루의 올리브 나무를 닥치는 대로 뽑아냈고 수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생계를 잃었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에 따르면 2020년 한 해에만 서안 지구에서 최소 9,300그루의 올리브 나무가 파괴되었다고 한다.
슬리만 만수르는 한 인터뷰에서 올리브 나무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올리브 나무는 어려운 상황에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굳건함을 상징한다. 나무가 땅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생존할 수 있는 것처럼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It represents the steadfastness of the Palestinian people, who are able to live under difficult circumstances. In the same way that the trees can survive and have deep roots in their land so, too, do the Palestinian people.)
슬리만 만수르의 작품들을 보면서, 우리나라 일제 강점기가 떠올랐다. 35년 동안 한국인 민족을 말살하려 했던 일본도, 우리의 문화, 언어, 역사를 모두 억압하고 제약했다. 우리는 안다, 나라 잃은 설움.
*슬리만 만수르의 인스타그램에서 그의 다른 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다. (스토리에는, 최근 팔레스타인 관련 소식을 매일매일 업데이트 한다.) Sliman Mansour (@sliman.mansour) • Instagram photos and videos
지금 거주하고 있는 두바이에서 올리브오일, 오렌지, 수박을 볼 때마다 이젠 팔레스타인이 떠오른다. 팔레스타인 예술가들이 '나라 잃은 설움'이 아닌, 다른 다양한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최대한 빨리.
#ceasefire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