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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날드의 추억

홍콩, 중국, 두바이

by 정물루

"시내에 맥도날드가 생겼는데 폭발했대."


중국 시안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시절, 홍콩에서 즐겨 먹던 맥모닝을 드디어 다시 먹을 수 있겠다고 신나 있던 때였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새로 생긴 맥도날드에서 폭발 사고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는 여러 소문이 돌았다. 누군가 맥도날드의 진출을 반대해 화장실에 사제 폭탄을 설치했다는 말도 있었고, 반미 감정과 패스트푸드에 대한 반감이 겹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정확한 이유는 끝내 알 수 없었지만, 그 사건으로 나는 처음으로 맥도날드가 있다고 해서 모두에게 반가운 공간은 아니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홍콩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90년대, 맥도날드는 그야말로 만남의 장소였다. 쇼핑몰마다 한 개씩은 있었고, 아침엔 얌차이(딤섬) 집들보다 조금 더 일찍 문을 열어 아침식사를 즐겨먹기도 했다. 학교 근처 맥도날드에서는 늘 친구들이나 선생님을 우연히 마주쳤다. 캐치업하려고 잠깐 보려고 하면 자연스럽게 맥도날드로 향하곤 했다.


2000년대 초 대학에 다니던 시절, 서울에서도 맥도날드는 랜드마크였다. 압구정 맥도날드는 약속 장소의 대명사였고, 홍콩 친구들이 서울에 놀러 와도 압구정 맥도날드 앞에서 보자고 하면 다들 잘 찾아올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인터넷 번개팅도, 친구들과의 저녁 약속도 시작은 그 '압구정 맥도날드'. 나에게 맥도날드는 늘 사람들을 이어주는, 가장 편하고 부담스럽지 않은 장소가 되어갔다.


tempImage2LAoME.heic 사진을 찾다보니, 압구정 맥도날드가 한국의 1호점이었다고 한다. 1988년에 오픈.


그런데 휴학을 하고 한 학기 동안 머문 중국 시안에는 맥도날드가 없었다. 어릴 때부터 세계가 모두 비슷하리라 생각했던 나의 좁은 세계관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시안에서는 KFC만 있었다. 홍콩에서도 KFC가 있긴 했지만 늘 맥도날드에 밀렸던 터라, 맥도날드 없이 KFC만 있다는 것이 반갑지는 않았다. 메뉴도 치킨 위주였고, 조명도 어딘가 더 어둡고, 디저트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이 없었다. 맥도날드의 환한 조명, 밝은 컬러들, 플라스틱 트레이 위의 광고 종이들은 추억이 되었다.


그러다 ‘맥도날드 폭파 사건’ 이후에야 조금씩 알게 되었다. 시안은 중동과 유럽까지 이어지는 실크로드의 시작점이다. 오래전부터 중동 지역 상인들이 이주하며 정착했고, 그래서 무슬림 커뮤니티가 꽤 크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문화권이고, 당시에는 국제 패스트푸드 브랜드가 할랄 기준을 충족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흔치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맥도날드의 진입이 늦어졌다는 설명도 있었다. 물론 이것이 폭발 사건의 직접적인 이유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세계 어디나 똑같은 맥도날드가 있을 것이라는 나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그런데 두바이는 정반대다. 주유소마다 맥드라이브(McDrive)가 있고, 쇼핑몰마다 맥도날드가 있다. 아랍에미리트는 국교가 이슬람인데도 말이다. 여기서 보이는 게 맥도날드의 로컬라이징 전략이다. UAE의 모든 맥도날드는 100% 할랄 인증 재료를 사용하고, 돼지고기 메뉴는 아예 없다. 그래서 이곳의 맥도날드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가는 가장 대중적인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홍콩에서 내가 경험한 그 활기와 거의 비슷하게 항상 붐비고 인기가 많다.


맥도날드는 로컬라이징뿐 아니라 브랜드 협업도 아주 잘한다. 인기 애니메이션, 영화, 글로벌 아티스트와의 콜라보레이션 - BTS 세트는 두바이에서도 어른 아이 모두 난리가 났었다. BTS 컬러인 퍼플 컬러와 스페셜 소스의 한정 판매. 예전에 레바논 동료가 한국 출장 다녀와서 '가장 맛있었던 음식이 한국 맥도날드였다'고 말했을 때는 어이없었는데, 작년에 한국 맥도날드를 다시 가보니 그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었다. 고구마 프라이즈. 감자가 아닌 한국 고구마로 만든 따끈한 프렌치 프라이즈라니. 한국에서만 가능한, 아주 한국적이면서도 대중적인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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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에는 좋지 않을지 몰라도, 맥도날드는 내 삶 곳곳에 오래 남아 있는 추억이 되었다. 만남의 장소였고, 익숙함의 좌표였고, 도시마다 다른 로컬 버전의 맛집이기도 했다. 맥도날드는 결국 음식을 파는 브랜드가 아니라, 내가 살았던 도시들과 그 도시에서 만난 사람들을 연결하는 추억의 공간이 되어버린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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