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 어디에요?
지난주, 홍콩 타이포에서 난 대형 화재 사고 관련 뉴스를 보다가, 주민 인터뷰에 잡힌 얼굴들을 오래 들여다보게 됐다. 30년 전 내가 홍콩에서 살던 시절, 그때 봤던 비슷한 표정들을 본 것 같았다. 1997년 영국의 홍콩 반환 직전과 직후 - 어딘가 불만스럽고, 혼란스럽고, 불편한 표정들 말이다.
홍콩 사람들은 참 이상한 운명 속에서 살아왔다. 영국령 아래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영국 사람도 아니고, 중국에 가면 분명히 중국령 홍콩이지만 '홍콩 사람들은 중국 사람들이 아니다'는 말을 들어왔다. 영국에서는 또 홍콩 사람은 홍콩 사람일 뿐이었다. 어느 쪽에도 딱히 속하지 못한 채 존재하는 느낌.
“Where is your hometown?”
두바이에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거의 의례처럼 묻는 질문이다. 약 85%가 외국인인 도시. 언뜻 비슷하게 생기고, 같은 언어처럼 들리는 아랍어를 쓰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나라 출신인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두바이에서 오래 살아도, 심지어 이곳에서 태어나도 UAE는 시민권을 외국인에게 거의 주지 않는다. 그리고 로컬과 외국인 사이의 차별도 상당히 크다.
그러다 보니 내가 아는 많은 아랍 친구들은, 자기 고향에서 보낸 시간보다 두바이에서 살아온 시간이 훨씬 길다. 그런데도 그들의 고향은 두바이가 아니다. 나 역시 해외에서 인생의 절반을 살았지만, 내 고향은 여전히 한국이다.
그렇다면 중국인도 아니고 영국인도 아닌 홍콩 사람들의 고향은 어디일까? 홍콩을 중국에 반환했다고 해서 그들이 곧바로 중국인이 되는 건 아니다. 1997년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은 기억도 없고 경험도 하지 않은 중국을 그들의 고향이자 조국이라 불러야 하는 걸까?
어쩌다 보니 내가 살아온 나라들에는 이런 아이덴티티의 모호함 속에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영어가 모국어보다 더 편한 친구들이 많았고, 홍콩에서도, 두바이에서도 그랬다. 두바이에 오래 살아온 아랍인들 중에는 아랍어를 듣고 말은 하지만, 읽고 쓰기는 거의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요즘 어린 세대일수록 더 그렇다. 존재하는데 존재하지 않는 고향의 언어가 어떤 느낌일까? 한국어를 알아듣지만 말이나 글은 서툰 우리 아이들처럼.
이번 홍콩 타이포 아파트 화재 조사를 따라가다 보니, 중국 정부의 관리 부실과 부조리를 지적하는 말들이 많았다. 하지만 아직 공식 발표된 명확한 결론은 없다. 반환 이후 정부의 보호와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주민들의 불만도 컸다.
홍콩은 한동안 ‘특별행정구’ 자격으로 중국 본토와는 다른 입출경 규정을 적용받았다. 지금도 제도는 남아 있지만, 예전보다 완화된 부분이 많다. 아무튼 화면 속 홍콩 주민들은 어딘가 외로워 보였다. 나라를 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처럼, 홀로 세상에 선 듯한 표정.
가끔 한국에 가면 나도 묘하게 어색하고 어디선가 불편하다. 오래 그리워했던 나라지만, 막상 발을 디디면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밀려온다. 그렇다고 두바이가 ‘내 나라’도 아니다. 공식 서류상으로는 외국인이 아닌 한국인이지만, 한국에서도 외국인처럼 느껴진다. 아마 나 같은 사람들이, 어디서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사람들이, 세상에 꽤 많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