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중국, 지금의 두바이
2000년에 한 학기 동안 중국 시안으로 어학연수를 가면서, 중국 문화에 확 빠져보자고 결심했다. 중국 사람들이 즐겨하는 일상도 함께 해보고,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중국음식이 아닌 중국 로컬들이 진짜 좋아하는 중국음식도 다 먹어보고 싶었다. 중국 시안은 섬서성, 그러니까 행정상으로는 산시성에 속하지만 음식은 인근 사천성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습하고 으슬으슬한 겨울을 보내기 위해서 좋은 매운 음식을 즐겨 먹었다. 그중에서도 대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던 건 마라훠궈, 즉 마라 핫팟이었다.
대학가나 시안 길거리 곳곳에 보이던 핫팟음식점의 라운드 테이블에 모여 좋아하는 재료들을 빨간 기름이 가득한 국물에 넣고 익혀 먹는 모임을 종종 했다. 매운 음식을 좋아하지만 마라의 매운 맛에 당한 에피소드를 많이 들어본 나는 좀 망설였지만 그래도 중국 로컬들이 먹는 리얼 핫팟은 놓칠 수는 없었다. 핫팟은 혼자서는 먹을 수 없는 음식이기에, 호기롭게 방과 후 중문과 친구들을 따라 핫팟집으로 갔다.
재료들은 생각보다 신선했고 종류도 다양했다. 실크로드의 출발점이었던 시안에는 무슬림이 많이 정착해 살면서 자연스럽게 돼지고기 대신 양고기를 즐겼다. 길거리엔 늘 양꼬치 냄새가 났고 핫팟에도 양고기를 넣어 마라의 강한 향과 만나 깊은 풍미를 낸다며 소고기보다도 양고기를 선호했다. 누린내 때문에 양고기를 좋아하지 않던 나는 양고기를 넣었다 뺀 국물이 거슬렸지만 내가 좋아하는 재료들을 골라 넣어 먹기 시작했다. 음식 퀄리티나 맛보다도 함께 앉아서 각자가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먹으면서, 외국인이 나에게 중국의 음식 문화, 먹는 방법, 자기들 고향 음식들 이야기들을 알려주니 흥미롭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두 번째 핫팟 모임에서 탈이 났다. 처음 먹는 마라도 아니었는데 그날은 유난히 맵고 얼얼한 향이 강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기숙사에 돌아오자마자 설사가 시작되었다. 복통과 어지러움과 함께 시작한 설사는 물까지 그대로 나올 정도로 심해졌지만, 병원에 갈 수도 없었다.
2000년대 초 중국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이 아니었다. 동쪽 해안을 끼고 있는 개발되고 있는 도시도 아닌, 내륙 한가운데에 있는 시안의 헬스케어 시스템에 대해서도 루머가 많았다. 병원은 낡고, 주삿바늘이나 링겔 호스를 재사용해서 병원 갔다가 에이즈에 걸릴 수도 있다며, 다들 말렸다. 어차피 영어도 통하지 않는 병원에 가서도 별 해결책이 없을 거라며 한국 유학생들이 약과 죽으로 간호를 해줬다. 아빠도 시안이나 근처에 오는 출장자와 주재원을 통해서 약을 추가로 보내주셨다. 병원만 갔다면 일주일도 걸리지 않아 회복했을 장염이었던 것 같은데 3주 가까이 고생하고 그 후로 한동안 핫팟은 멀리했다.
그리고 25년이 지난 지금, 지난주 또 위장염에 걸렸다. 저녁 러닝 중 4km 지점에서 복통이 살살 시작되더니 어지러움과 두통이 급습, 달리기는커녕 서있을 수도 앉아있을 수도 없었다. 공원 바닥에 누워버리고 싶었지만 구토가 시작되었고 빨리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만 났다. 복통을 참으며 집에 가는 길에 설사를 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며 겨우 집에 도착했고 그 이후에는 화장실에서 두 시간 정도 나오지 못했다. 급기야 피설사를 네다섯 번 하고 병원 응급실에 겨우갔다.
두바이 병원 특징 상, IV 드립을 맞는 동안 온갖 검사를 다 했다. 결과는 Gastroenteritis - 위장염이었다. 아마도 러닝 한 시간 전에 딜리버리 해서 먹은 샌드위치 속 계란이 상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약을 한가득 받아서 2-3일 복용하면서 죽과 덜 자극적인 음식을 먹으며 지냈더니, 금세 회복했다.
병원 수속도 빠르고 회복도 빨랐던 이번 위장염을 겪으면서 25년 전의 '시안 핫팟 사건'이 떠올랐다. 모든 게 불편하고 느리고 없는 게 많았던 중국, 이제는 모든 게 빠르고 스마트하고 초고속으로 발전했다니. 내 기억 속 그때의 시안과는 분명 다를 것이다. 다시 한번 가봐야겠다, 중국 시안.
중국을 건드리지 마라. 그 거대한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세상은 결코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 나폴레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