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학생들의 Be Yourself
대학 2학년에 올라가기 전, 나는 휴학을 결심했다. 한국 사람 많지 않다는 곳을 골라, 중국 시안(西安)으로 어학 연수를 가기로 했으니 중국어를 제대로 마스터하겠다는, 그야말로 호기로운 결심을 했다. 시안에 가면 한국 사람들과 어울리지 말고 중국인들 일상 속에서 그들의 언어를 배우겠다고 다짐했다.
사전을 통째로 외워버리겠다는 각오로 중국어 단어 몇 개, 문장 몇 개씩을 매일 외우겠다는 계획을 했다. 쉴 때는 당시 유행하던 대만 드라마 <유성화원, 流星花园, 꽃보다 남자>의 DVD를 사서 보고, 음악은 장후이메이 (A-Mei, 張惠妹)의 CD를 몇번이고 들었다. 노래 가사도 외우고, 드라마 속 자주 쓰이는 표현들도 받아 적으며 따라 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중문과 참관 수업에 들어가거나, 본과 학생들의 과모임이나 저녁 모임에도 쫓아다녔다. 물론 내 중국어는 그들과 그렇게 깊은 대화를 나눌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들 사이에 있으면 뭐라도 배우게 되리라 믿었다. 그래서 몇 마디밖에 하지 못하는 날이 많아도 가능한 한 중국 대학생들 속에 섞여 있으려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홍콩에 살 때 중국어를 배우긴 했지만 그건 학교 수업 중 하나였을 뿐, 스스로의 의지로 배운 건 아니었다. 그래서 '배웠다'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대화할 수 있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어릴 때 익혀둔 발음과 성조였다.
시안으로 가기 전, 서울의 중국어 학원에서 잠시 수업을 들었다. 당시엔 중국과의 교류가 막 활발해지던 때라, 중국어는 뜨는 언어였다. 수업에는 회사원, 사업가 등 중국과의 비즈니스를 준비하는 어른들이 많았다. 한국어에는 없는 4성조와 권설음, 독특한 발음에 애를 먹는 모습들을 보며 존경심과 안쓰러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시안의 대학교에서는 외국인 전용 기숙사에 머물렀지만 본과 학생들의 동아리나 클럽에도 기웃거렸다. 그중 인상 깊었던 건 영문과 학생들 주최로 운영하는 '영어 말하기 클럽'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학교 캠퍼스 야외 어딘가에 모여서 영어로 대화하는 모임이다. 영문과 학생들은 영어를 얼마나 잘하나 궁금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중국어보다 편한 영어로 친구들도 더 자연스럽게 사귀기 좋은 기회 같았다.
꽤 어두컴컴했던 기억이 있다. 늦은 오후였는데 학교 안 가로등은 항상 밝지 않았다. 모두 서서 알아서 파트너를 램덤으로 찾아 영어로 아무 말이나 하는 모임이었다. 서툰 발음, 강한 억양. 처음엔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이내 귀가 적응되자 나도 모르게 대화에 빠져들었다. 모두 영어가 제2외국어였지만 그들은 틀리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유창하지 않아도 자신 있게 말했다. 그 자신감에 자극받아 나도 덩달아 자신 있는 척을 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런 모임은 말하기 실력을 기르는 데 굉장히 효과적이었다. 아무 준비 없이 모여 낯선 사람과 일대일로 대화하는 구조. 어색함을 이겨내야 하는 이 설정 자체가 언어 능력뿐 아니라 대화력을 키우는 훈련이었다. 요즘처럼 대부분의 대화가 텍스트로 이루어지는 시대에는 오히려 이런 직접적인 교류가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
자연스럽게 한국 대학생들과 비교가 되었다. 다들 영어를 꽤 잘하면서도, 막상 말할 때면 조심스러워하는 한국 학생들. 나 역시 그랬다. 문법이 틀릴까 봐, 발음이 어색할까 봐, 특히 한국 사람들이 주변에 있을 때면 더더욱 조심스러웠다. 잘못 말하면 창피하다는 생각이 늘 따라붙었다.
그런데 중국 대학교에서 만난 '영어 말하기 클럽' 학생들은 달랐다. 그들의 영어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태도는 단단했다. 틀려도, 어색해도, 쭈뼛대지 않았다. 그렇게 돌아가며 여러 친구들과 대화하는 와중에 한 학생이 서로 돕자고 제안을 했다 - 후샹방주hùxiāng bāngzhù 互相帮助助
그녀는 자신이 중국어를 가르쳐줄 테니 내가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내 기숙사 방에서 ‘후샹방주’를 했다. 솔직히 어떤 수업보다도, 어떤 교재보다도 그 친구와의 상부상조 시간에서 배운 게 훨씬 많았다.
그들의 이런 적극적인 태도가 오늘날의 중국을 만든 힘이 아닐까 싶다. 학원이나 과외 대신 스스로 배움의 길을 만들고, 모자라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스스로, 또 함께 배우는 법을 터득한 세대. 매주 기숙사 방에서 공부하던 그 시절, 내복을 몇 겹씩 입고 와서는 '덥다'며 웃던 친구들을 보며 나는 ‘독립’이라는 단어를 배웠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건 사실 고등학교 생활의 연장선 같았다. 하지만 중국 대학생들은 달랐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낯선 도시에서 스스로의 길을 찾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조금 틀려도 괜찮다는 걸 아는 사람들. 지금의 중국은, 어쩌면 그런 젊은이들이 하루하루 쌓아올린 결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