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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과 믿음

중국 샤머니즘, 조선의 무신도

by 정물루

대학 1학년 때에는 기숙사에서 지냈다. 그때는 기숙사가 인기가 많아서 좋은 성적을 유지해야만 거주가 가능했다. 나는 그 케이스는 아니었고, 부모님이 해외에 있는 경우는 예외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기숙사에는 공부에 진심인 학생들이 많았다.


우리 기숙사 건물은 새 건물이었다. 내가 들어갔을 때 지은 지 겨우 1년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신축이라 그런지, 왠지 호러 스토리와는 거리가 멀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살아보니, 처음 들어보는 무서운 이야기들이 참 많았다. 기숙사에는 늘 한이 맺힌 사건이 있고, 떠나지 못한 영혼이 있다는 말들.


“밤 12시 이후엔 창문을 보지 마라.”

“어젯밤 화장실에서 귀신을 봤다더라.”

“밤 12시 넘어서 걸려오는 전화는 절대 받지 마.”

기숙사에는 왜 그렇게 귀신을 봤다는 사람이 많았는지 모르겠다.


나는 평생 가위에 눌린 적도, 귀신을 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무섭다기보단 궁금했다. 정말 귀신이 존재하는지, 있다면 어떻게 생겼는지. 생각해보면 어릴 때 분신사바를 하던 시절부터 학교에는 늘 귀신 이야기가 있었다.


그때 기숙사 친구들이 귀신 보는 법을 알려줬다. 중문과 전공에 영문 복수전공까지 하던 나는 사전이 여러 개 있었다. 친구들이 말하길, 그 사전들을 가슴에 올려놓고 자면 답답해서 귀신이 보인다고 했다. 귀신이 자주 출몰한다는 기숙사에서 호기롭게 시도해봤지만, 다음날 아침 눈을 뜨니 사전은 사방에 흩어져 있었고 룸메이트 언니는 한심하다는 얼굴로 나를 한번 째려보고 수업으로 나갔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중국 시안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시절. 그곳에서도 귀신 이야기는 셀 수 없이 많았다. 시안은 도시 전체가 무덤이라 불릴 만큼 역사가 깊은 곳이라 사람들은 병마용 안에 진짜 사람과 동물이 묻혔다는 가능성을 믿었다. 그래서 영혼이 떠도는 건 당연하다는 듯 이야기했다.


내가 머물던 기숙사는 외국인 전용이라 시설은 괜찮았다. 건물도 신식이었고, 중문과 수업 참관차 현지 대학에 가서야 문 없는 푸세식 화장실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학생들을 보고 놀랐다.


하여튼, 기숙사에는 왜 그렇게 귀신 이야기가 많은지 모르겠다. 그러던 어느 날, 낮잠을 자는데 꿈을 꿨다. 꿈속 배경은 내가 잠든 내 기숙사 방 그대로였다. 나는 침대에 누워 자고 있었고, 덩치 큰 남자가 문을 열고 조용히 들어왔다. 그 남자는 자고 있는 나를 한참 바라보더니 내 위로 올라와 목을 졸랐다. 놀라서 분명 잠에서 깼다. 침대 옆 전화기가 울리는 소리가 들렸고, 전화를 받으려 손을 뻗었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버둥대다 결국 눈을 떴는데, 내가 진짜로 울고 있었다. 꿈인지 현실인지, 악몽인지 귀신인지 알 수 없었다.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니 “그건 수맥 때문일 수도 있다”며 침대 위치와 방향을 바꿔보라고 했다. '수맥'이라는 건 드라마에서나 들어본 말이었는데, 그날 이후 정말로 침대 방향을 바꿨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뒤로는 한 번도 그런 일을 겪지 않았다.


중국 사람들은 외계인의 존재를 믿는다고 한다. 그처럼 귀신도 믿는 걸까? 이 나라는 소수민족이 많아 믿음의 형태도 다양하다. 풍수(Feng Shui)도 그중 하나다. 집의 방향, 대문의 위치, 침대 머리 방향까지도 삶과 운명을 좌우한다고 믿는다.


사실 우리나라에도 있다. 민화, 그러니까 조선 후기 민간에서 유행했던 채색화 중에 ‘무신도(Shamanistic Spirits)’라는 게 있다. 잡귀를 물리치기 위해 집 안에 걸었던 그림. 우리 조상들도 귀신의 존재를 믿었던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고 있었다. 무신도는 그 믿음의 증거인 듯. 화려한 색으로 신을 그려 집 안에 걸고, 그 안에 깃든 영혼에게 복을 빌었다. 어쩌면 그것은 두려움을 예술로 승화시킨, 가장 오래된 한국식 심리치유였는지도 모른다.


귀신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악몽이었을까. 그때, 그러니까 25년쯤 전 그 여름 기숙사 방에서 본 그 덩치 큰 남자의 정체가 지금도 가끔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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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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