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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봉낙타 Jan 29. 2024

두바이 시골맛

박완서의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읽는 중 

어릴 땐 주말마다 산으로 계곡으로 바다로 가는 부모님이 이해가 안 갔다. 백화점도 있고 놀이 공원도 있는데, 우리 가족은 거의 매일 주말에 야외로 나갔다. 동네 이웃 가족들, 아빠 회사 동료 가족들, 친척들과 함께, 혹은 우리 가족 넷이서 열심히 돌아다녔다. 


요즘 우리 부부는 월요일이 되면 이번 주말에, 그리고 아이들 텀브레이크(term break) 때 어딜 갈까 계획을 짜기 시작한다. 두바이는 홍보용으로 많이 보이는 버즈칼리파, 버즈알아랍, 두바이몰 같은 다운타운은 아주 작은 일부분이고 사실 그 주변 대부분은 전부 사막이다. 다운타운에서 2-30분만 운전하면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에 도달한다. 특히 요즘같이 밤낮으로 15도와 25도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두바이 겨울'에는 야외로 나가기 최상의 날씨다. 


도시가 온통 깜박이고 돌고 춤추는 요상하고 휘황한 불빛으로 돼 있어서 정신이 돌 것 같았다. (중략) 아무리 호화 호텔도 외부에 얽히고설킨 불꺼진 네온의 잔해 때문에 폐허처럼 보였다. 도시 둘레는 풀 한 포기 안 나는 사막이고 라스베거스는 그 한가운데 서 있는 추악한 폐허에 불과했다.
- 박완서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사실 11년 동안 살아온 나의 제2 고향인 두바이에서 내가 좋아하는 곳은 화려하고 블링블링한 다운타운이 아니다. 물론 없는 거 없는 두바이 생활의 편리함도 있지만 넓고 넓은 사막 깊숙이 들어가면 바람소리, 나무 흔들리는 소리, 새소리 밖에 들리 않는 기묘한 공간으로 순간 텔레포트 할 수 있다. 종종 사막에서는 낙타 떼도 만난다. 그리고 그 낙타 떼를 몰고 다니는 베드윈도 만난다. 낙타 농장도 마주치고, 구글에 쳐봐도 정보가 거의 없는, 어린 왕자가 사는 별에 있을 법한 신기한 식물들도 나타난다. 


이렇게 깊숙이 들어가면 전화나 데이터 시그널이 없는 경우도 많다. 조금 위험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지만 우리 어릴 땐 원래 핸드폰 없이 잘 살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리고 그 사막 한가운데에서 낙타 농장을 하며 여전히 살아가는 베드윈들도 있으니 다 사람 사는 공간이 아닌가. 



박완서의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에서 시골이란 그녀에게는 고향과 같은 뜻을 지니고 있다 했다. 그녀는 1931년생이고 1993년에 이 수필을 썼으니, 그 당시에는 한국 전체가 시골이었을 것 같다. 1971년에 창립된 아랍에미레이트도 그전에는 페르시아만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들, 농사를 하고 염소를 키우던 농부들이나 사막에서 낙타를 키우던 베드윈들이었다. 


나에게 시골 맛이란 완전한 평화와 안식을 의미했다. 

나는 시골에서 산 적도 없지만 '두바이 시골'에 가면 박완서작가가 말하는 '시골맛'을 느끼는 것 같다. 사막의 가운데에 서있으면 그 고요함과 마치 신이 꾸민듯한 듄(dune, 사막 언덕)이 저절로 명상 효과를 발휘한다. 공감각으로 느껴지는 평화와 안식이랄까. 


박완서의 수필집을 읽으면서 두바이 사막 생각만 나니, 두바이는 내 고향이 다 되었나 보다. 아직 떠나지도 않았는데 나중에 떠나면 그리워질까 봐 슬퍼지려고까지 한다. 있을 때 더 사랑해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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