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사적인 힐링 방법
손으로 글쓰기
사실 내 인생에서, 2023년만큼 글을 많이 써본 적이 없는 듯하다. 시간 정해놓고 마구 쓰는 모닝페이지부터 쓰기 시작하다가, 인스타그램, 티스토리, 네이버블로그, 미디엄(Medium), 그리고 지금 브런치까지 많은 글쓰기 온라인 플랫폼을 시도해 봤다.
이뿐 아니라, 저널도 이것저것 써봤다. 다만, 신기하게 나는 펜으로 노트에 직접 쓰면 더 술술 글이 써진다. 랩탑의 하얀 스크린에 글을 쓰려고 하면, 글이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보통은 노트에 글을 마구 쓰고, 랩탑으로 다듬어 글을 다시 쓰고 발행한다. 다른 작가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지가 궁금하다. 자신만의 루틴이나, 습관이 있는지. 요즘은 온라인에서 글들을 보기 때문에, 왠지 다들 랩탑에 바로바로 타입핑을 하는 것만 같은데, 나만 안되는 것 같기도 하고 나 좀 이상한 건가?
사실 노트에 글을 쓰면 팔도 아프고 손도 아프고 자세도 이상하고 (나는 주로 일인용 소파에 꾸겨 앉아서 하드커버 노트에 글을 쓴다), 암튼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트에 직접 손으로 쓰는 게 좋다. 아니, 이건 선호 사항이라기 보단 다른 방법이 없다.
온라인 플랫폼에 글을 발행해 본 건, 사실 올해 6월부터다. 이제 고작 6개월. 그전엔 나 혼자만 보는 일기만 썼다. 오랫동안 회사에 다니면서, 글이라고는 대부분이 보고서, 제안서, 이메일 정도였다. 내 이야기를 쓰고, 내 감정, 내 관심사에 대해 써본 적이 있나 싶다.
참 어색한 글쓰기였지만, 쓰면 쓸수록 점점 신기하게 힐링이 되기 시작했다. 우울하거나 걱정되는 일이 생기면 노트를 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진정도 되고 긍정적이 되기까지 했다. 그 글을 다시 읽어보면 참 별로지만, 좋은 글이던 아니던 상관없이, 내 기분이 치유되는 느낌이랄까? 누구에게 보여줄 수도 없고, 보여주고 싶지도 않지만, 친구랑 수다 떠는 것보다, 술 마시는 것보다 스트레스 확 풀리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프리랜서로 기획서를 쓰고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 긴장이 될 때도, 그냥 노트에 내 심정을 쓰고, 발표할 내용도 써봤다. 긴장 하나도 안 하고 프레젠테이션을 끝냈다. 이 정도면, 손으로 글쓰기가 확실히 진정효과가 있는 듯했다.
예전에는 아침에, 모닝페이지와 힐링이 필요할 때만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기록하고 싶은 게 점점 많아졌다. 마치 어색했던 친구와 스멀스멀 알게 되다가, 베스트 프렌드가 된 상항? 낱낱이 내 모든 감정을 다 알려주고 싶은 심정으로 쓰게 되었다. 베스트 프렌드가 도망갈까 봐 요즘은 좀 정리해서 알려주려고 하는 상황이다.
필사
올해 또 처음으로 해본 글쓰기는, 필사다.
필사에 대한 내 생각은 사실 꽤 부정적이었다. 시간 낭비라 생각했다. 어쩌다 알고리즘으로 뜬 유튜브를 보고 문득 필사를 해보고 싶어졌다. 하루 A5 노트 한 페이지 필사를 시작했고, 오늘이 30일째인데, 또 '신기하게' 그냥 보고 쓰는데도, 쓰면서 아이디어가 정말 많이 떠오른다. 그냥 눈으로 읽을 때랑은 전혀 다른 감각이 살아난다. 그동안 읽었던 좋아하는 책에 줄 친 부분들을 쓰다가, 어제부터는 잡지 에디터의 글을 필사하기 시작했다.
잡지 에디터들이 글을 하나 실으려면 얼마나 많은 고민과 수정과 또 수정을 거쳐 썼을 거라 생각하니 이보다 좋은 글은 없겠다 싶었다. 문화예술 분야의 ‘월간미술’ 11월호를 쓰고 있다. 어제 겨우 한 장을 필사했는데 어휘력과 표현력, 막 멋진 글을 쓰고 싶은 영감까지 얻었다.
노트에 글을 쓰는 게 쓸데없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한테는 매우 사적인 레저와 힐링이다.
그렇게 글 써서 뭐 할 건데?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 일단 재미있으니까, 계속 써보려고 한다. 내년 이맘때 뭘 쓰고 있을지 매우 궁금해짐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