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아는 사람

by 정물루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늘 선종하셨다. 비록 성당에 자주 가지는 않지만, 그분만큼은 늘 존경해 왔다. 그는 언제나 약한 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주었다. 가난한 자, 억압받는 자, 전 세계의 선주민 공동체와 성소수자들. 그는 소외된 이들과 함께 숨 쉬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다. 죽기 전까지도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는 학살을 향해 멈추지 말라고 평화의 목소리를 냈다. 기후와 생태 문제 앞에서도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사랑과 비전으로, 때로는 과감할 정도로 진보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모든 말과 행동 속에는 언제나 다정함이 있었다.


오늘 그 소식을 접하고, 소셜미디어와 뉴스에서 관련 기사와 영상들을 보다가 몇 번이나 눈물을 참았다. 2014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세월호 유가족들을 안아주시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장애인을 향한 눈빛, 내전 이후, 남수단 지도자들을 만나서는 발에 입을 맞추며 평화를 호소하던 장면도 떠오른다. 어제 부활절 미사에서도 그는 가자지구에서 죽어가는 아이들의 고통을 말하며 제발, 학살을 멈춰야 한다고, 그 고통이 자신에게도 전해진다고 말씀하셨다. 그는 자주 팔레스타인 아이들에 대한 슬픔과 연대를 이야기했다. 나는 자꾸 묻게 된다. 왜 이렇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걸까. 이유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너무 원망스럽다. 너무 명백한 폭력 앞에서, 왜 세상은 이렇게 조용한가. 나라를 잃고, 아이들을 잃고, 역사와 미래까지 송두리째 잃고 있는 이들에게 우리는 너무 무심한 것이 아닌가.


지인들은 뉴스를 너무 많이 보지 말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눈을 감는다고 진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모르는 사람은 가르칠 수 있지만, 모르는 척하는 사람은 가르칠 수 없다고 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에드바르 뭉크가 어머니와 누이가 죽는 걸 지켜본 뒤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그림을 그리며 남은 생을 살았다고 한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한 인간의 세계를 완전히 바꾸어놓는다. 지금 가자지구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곳에서 살아남은 사람들뿐 아니라, 그들을 아는 모든 사람에게도 깊은 고통을 남길 것이다. 슬픈 영혼들이 떠돌고 있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까. 그래서 교황님은 그렇게 간절히 말렸던 것이 아닐까. 제발 그만하자고, 제발 고만하라고. 교황님이 다시 부활하셔서, 약한 자들을 강하게, 고통을 주는 자들에게 고통이 되돌아가길 바란다.


한강이 그랬다. 왜 이렇게 세상은 고통스러우면서도 아름다운 걸까.




아래 작품은 엘 그레코(El Greco)의 <통곡하는 성 베드로>.

예수를 세 번 부인한 뒤, 깊은 후회 속에 눈물 흘리는 그의 얼굴에서, 교황님의 눈빛이 떠올랐다. 슬픔을 아는 사람의 눈.

엘 그레코 (El Greco)의 <통곡하는 성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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