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잊어버리고 싶지 않아서 부랴부랴 쓰는 글
입덧하는 중
아이는 동생을 원했지만 그래도 뭔가 불편해 보였다.
"아가가 더 작고 예쁘니까 아가를 더 사랑할 거야?"
동생이 생긴다는 불안감은 어쩔 수 없나 보다. 터울이 긴 편인데도 (5살 차이) 그렇다.
"네가 있으니까 아가도 있는 거야. 우리 이우를 첫 번째로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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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덧이 심하다. 첫째 때는 이른바 먹덧이어서 잘 몰랐는데 이번에는 참 고통스럽다. 맛있는 거 먹는 낙으로 사는데 입맛이 없으니 예민해졌다. 먹고 싶은 음식도 생각나지 않아 tv를 틀었다. 오늘을 뭘 먹어볼까 싶어 맛집 방송을 보는데 음식을 보자마자 구역질을 했다.
딱 술병 난 것 같다. 뭘 먹어도 토하고 울렁울렁. 술 진탕 마신 다음날 철럼 웩웩거리는 와중에, 술 안 먹는 분들은 입덧을 어떻게 표현할지 궁금하다. 딱 술병인데 ㅋㅋㅋㅋ
입맛이 없어 매운 것만 찾다 탈이 났다. 고질병이었던 위경련까지 온 것이다. 평소 매운 걸 못 먹는데 속이 느글거리니 신라면에 청양고추 2개를 넣어 먹었다. 삼시 세 끼를 매운 국물로 며칠 먹으니 위가 못 버텨냈다.
설상가상으로 감기까지 왔다. 남편에게서 시작된 콧물감기는 아이에게 옮기고 곧 나에게 왔다. 아이는 3일간 결석을 하고 집에서 나와 함께 있었다. 그래도 남편과 아이는 약을 먹어 금방 나았지만, 약도 못 먹는 나는 더 오래갔다. 바닥과 한 몸이 되어 하루 종일 누워 있었다. 살이 빠졌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입덧 다이어트인가....
그래도 아이 밥은 챙겨줘야지. 계란, 김, 멸치로 아이 밥을 대충 먹이는데, 감기 다 나은 아이는 까불기 시작했다. 몸상태가 안 좋으니 예민해졌다. 나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짜증도 냈다.
아이는 계속 웃고 장난치다 식탁 의자에서 내려왔다. 밥 먹을 때 돌아다니는 것을 안된다고 가르쳐왔던 터라 굉장히 거슬렸다.
"밥 먹을 때 돌아다니지 말랬는데 밥 그만 먹고 싶니?"
그런데 아이는 나에게 와서 한 3초 꽉 안아줬다.
"엄마, 사랑해."
그리고는 제자리로 가서 밥을 먹었다.
엥? 이게 무슨 상황이지? 밥 먹다 말고 사랑고백을 하는 아이 덕분에 화는 조금 풀렸지만 어리둥절했다. 그런데 더 황당했다.
아이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그것도 참아온 무언가를 터뜨리듯 눈물이 쏟아졌다. 이건 또 뭐지? 사랑한다고 말하고는 갑자기 울음보라니... 내가 짜증내서 놀랐나 보다.
"ㅇㅇ야, 엄마가 짜증내서 속상했어? 미안해. 엄마 몸이..."
"엄마는 밥을 먹지도 못하고.... 엉~ 엉~"
아.... 다섯 살짜리가, 그것도 공감능력이 딸보다는 좀 떨어진다는 아들내미가 엄마가 밥 못 먹는 걸 알고 슬퍼하다니..... 내가 키웠지만 잘 키웠다. 다 컸네. 입덧하길 잘했다. 아들한테 위로도 받고...
첫째 임신했을 때는 입덧을 하면 조금 곤란해지는 상황이었다. 계약직 입사하자마자 임신을 하게 돼서 알리는 것을 주저했다. 아직 결혼식도 안 한 상황이어서 더 그랬다. 아이를 뱃속에 품고 죽은 엄마 생각에 슬펐고, 매일 술 마시고 사고 치는 아빠가 걱정되었다. 여기서 입덧까지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요즘은 참 감사한 나날이다. 고민도 걱정도 없고, 가야 할 길도 찾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답도 정리된 것 같다. 입덧 말고는 힘든 게 아무것도 없다. 신간이 편하니 입덧도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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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살 아이가 측은지심을 안다는 게 너무 대견하다. 큰 놈은 하늘에서 내린다더니 정말이야. 행복해. 감사해. 오우 내새끼. 우리 큰아들. 동네방네 엄마들에게 자랑하고 다녀야 하는데 감기로 밖에를 못 나가니 글로라도 써놓는다. 오늘을 잊지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