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집 친구가 집에 놀러 왔다. 아직 입덧하는 이야기며 아이들 이야기, 코로나 걱정 등 함께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다. 동네 친구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그렇듯 육아, 살림 이야기가 전부지만 일상의 수다 속에서 우리는 서로 묘한 위로를 받는다. 친구는 아이 셋, 막내는 많이 고민하고 낳았다고 한다. 아이가 셋인 데다 아이들 터울이 적어서 많이 힘들 텐데, 친구는 그 정신없고 힘듦 속에서도 눈빛만은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 보였다. 친구가 몇 년 전 동영상을 보여줬다. 아이들 영상이었는데, 이제 막 기어 다니기 시작한 둘째가 자기 형에게 기어가서 까르르 웃고 있었다. 큰애는 그게 귀여워서 동생을 안고 뽀뽀하고 아주 천사가 따로 없었다. 첫째도 겨우 세 살, 아기였을텐데 아기가 아기를 안고 있었다. 남의 자식이지만 너무 예뻤다. "나는 첫째 콤플렉스가 있어서 그런지 첫째를 좀 키워놓고 둘째 낳고 싶었어. 첫째가 양보해야 하고 사랑을 뺏긴 느낌 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데 자기 애들 보니까 내가 괜한 걱정을 했나 봐. 이렇게 서로 좋아하는데." "언니가 이우한테 사랑을 준 만큼 동생 많이 이뻐할 거야. 이우는 특히 동생을 원하고 기다렸잖아. 터울 더 있어도 동생 괴롭히는 애도 많은데." 친구의 말로도 마음이 편안해졌지만 진심으로 기뻐하는 게 눈에서 보였다. 가슴이 찡해졌다. 꽁꽁 숨겨뒀던 상처가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말 한마디로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과 일상을 함께 한다는 건 분명 행운이고 행복이다. 하지만 대화에서 말이 전부는 아닌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서 약간 이상한 축하도 받았다. "진심으로 축하해. 기쁘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많이 힘들 거야. 둘째 낳으면 더 힘들지. 바닥을 치기도 할 거야." 너도 나처럼 고생해봐~ 너도 이제 시작이야~ 말도 듣기에도 불편했지만 눈빛에서 이런 느낌이 보였다. 뭔가 나의 불행을 기다리는 듯한 느낌? ㅎㅎ 진심 어린 축하를 왜곡한다고, 맘을 몰라준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쪽 마음. 나는 내가 본 그 사람의 눈빛의 언어가 훨씬 더 와 닿는다. "메라비언의 법칙"이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다. 한 사람이 상대방으로부터 받는 이미지는 시각이 55%, 청각이 38%, 언어가 7%에 이른다는 법칙이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대화할 때 상대방의 말보다는 몸짓이나 말소리, 표정 등 행동의 영향을 더 받는다는 내용으로 이해된다. 말로는 나를 좋아한다고 했지만 경멸의 눈빛을 보았다. 그 사람은 나를 위로해주려고 애를 쓰면서도 눈으로는 내 불행을 기뻐하고 있었다. 무엇이 진심인지는 모른다. 다만, 눈빛의 언어는 숨길 수 없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