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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강스백 Sep 26. 2022

14kg 감량 마지막 며칠을 굶었다



드디어 남편과의 살 빼기 내기 d-day가 다가왔다. 곰이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었다는 100일이라는 시간 동안 나도 한번 바꿔보자. 인생의 중간지점, 마흔이 되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도전, 10kg을 빼기로 했다.     



시작은 순조로웠다. 89kg 몸무게는 조금만 노력해도 5kg 정도는 금방 빠지기 때문에 운동 시작하면 문제없을 줄 알았다. 실제로 남편과 50만원 내기 시작하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니 일주일에 1키로, 한 달에 3키로씩은 빠졌다.      





그런데 d-day를 한 달 남겨놓고 정체기라는 것이 오기 시작했다. 살이라는 것을 이렇게 많이 쪄 본 적이 없었고, 또 빼 본 적도 없으니 정체기가 올 줄 누가 알았나. 그런 거는 이미 몸 좋은 사람들이 좀 더 예쁜 몸 만들려고 노력할 때나 오는 건 줄 알았다. 날짜는 다가오는데 1.5키로가 빠지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추석이 꼈다. 우리 집은 성주상에 삼신상까지 차린다.      


‘살 얼른 빼고 50만원 먼저 받아 내서 추석에 맛있는 거 마구마구 먹어야지.’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체중은 줄지 않았다. 전을 지지면서 먹던 맥주가 생각났다. 마음이 급해졌다. 굶기 태세에 들어갔다. 굶는 게 좋지 않다는 걸 알지만 이번 내기에서만큼은 꼭 목표 달성을 하고 싶었다.      


‘며칠만 굶고 맛있게 먹자. 이제 다이어트 내기 같은 거 하지 말고 건강하게 빼자. 며칠만 참자. 참자. 힘내자.’     

그래서 결과가 어찌 되었냐고요? ㅎㅎ 마지막에 결과를 말해주면 독자들 다 나가 버릴 것 같으니 얼른 알려주고 다시 수다를 떨어야겠다.      





100일동안 10kg 빼기 성공하여 50만원을 받아냈습니다!!!!!!!  


  

내기 당일에 체중이 줄어있지 않으면 체중계 부숴버리려고 했다. 천재지변에 의한 측정 불가로 무효를 주장해 보려 했다. ㅎ     



남편과의 내기는 10kg 감량이었지만 지금까지 총 14kg을 뺐다. 운동을 하며 적당한 기간에 건강하게 뺀 것에 의미가 있다. 그래서 마지막에 몇백g 정도 남은 것은 잘 타협하면 이해 받을 수 있는 정도이다. 남편을 살짝 치사한 남자 만들면 목표체중에 도달하지 못했어도 50만원 정도는 받아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10kg 내기라지만 그래도 올해 14키로 뺐으면 내기의 의도에 부합한 거 아니야? 당신도 정체기라는 거 몰랐잖아?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마누라가 날씬해지면 제일 이득 보는 건 당신이잖아? 그런데 지금 정확하게 10키로 안 빠졌다고 돈 안준다고라? 아니 내가 지금 돈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니라... 이 노력 자체를 인정해 주란 말이얏!”     



이딴식으로 ‘돈 안 내놓으면 당신은 꼽꼽쟁이 치사 빵구’라는 것을 강조하면 얼마를 조금 뺀 돈이라도 받을 수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냥 마지막까지 목표체중을 달성하기로 했다. 안되면 그때가서 타협을 좀 해보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해보자. 마지막 며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은 굶는 것이었다. 혼자 몸이면 굶든 약을 먹든 뭐든 해보겠지만, 아기 키우면서 체력이 안되면 그 스트레스가 아기에게 간다는 걸 알기에 절대 굶는 다이어트는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이런 내가 굶기를 선택하다니.     






나는 별 걸 다 잘 하는 사람이었다. (‘잘’은 뺄까?ㅎㅎ) 우선 글을 쓴다. 온갖 글을 다 쓴다. 라디오 사연부터 공모전, 책 쓰기, 원고 투고, 체험단, 기자단, 수익형 블로그 등 글이란 글은 다 쓴다. 하지만 이렇다 할 결과는 없다. 몇 년 전부터 노력해왔던 책 쓰기는 조금만 더 쓰면 초고가 완성되는데도 하지 않고 있다. 어쩌면 완성을 해 내고 누군가에게 읽히는 것이 두려운 것일 수도 있다.      



고 3때 수능에서 언어영역은 1등급이었다. 재수할 때 언어영역 점수 하나로 서울대 반에 들어갔으니 그때의 어린 마음에 으쓱했던 것 같다. 서울대 반 학생들의 자만함을 알고 있는 선생님은 “너네는 서울대 반이지 서울대 생이 아니야. 여기 있는 모두가 서울대 갈 것 같니?” 뭐 이런식으로 찬물을 끼얹는 말을 자주 하셨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오만함은 뭐 그때만 할 수 있는 거니까.     



공무원 시험도 그랬다. 국어는 90~100점이 나왔다. 공무원 국어는 영어보다 점수 올리기 어렵다고들 하는데 첫 시험부터 100점이 나와주니 내가 정말 잘난 줄 알았다. 그리고 나 스스로 발목 잡아 몇 년을 공무원 시험에 매달렸다.     



수영을 배울 때는 기초반에서 에이스라고 할 정도로 자세가 좋았다. 하지만 중급반 들어가자마자 팔꺾기를 한참 동안 마스터하지 못하였다. 나는 바로 수영을 그만두었다. 통기타를 할 때도 무대에 서서 남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딱 예쁜 모습만 경험하고는 멈췄다. 가수를 할 생각은 아니었다. 절박하지도 않았다.      



여태껏 살아왔던 삶을 바꿀 때는 시작이 중요하다. 물론 시작해보려는 의지도 중요하다. 하지만 꾸준히 해내고 잘 끝맺는 것은 더 어렵고 중요하다. 나는 마무리를 하지 못했다. 남들이 알아봐 주는 그 지점에서 한걸음을 더 나아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조금 하다가 힘든 구간이 나오면 그만 두었다. 다이어트도 그럴 위기였다. 주변에서 살 빠진 거 알아보고 예쁘다고 칭찬하고 응원해주었다. 아직 목표 체중이 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10키로 넘게 빼고, 태가 달라진 걸 남들이 봐주니 으쓱했다.


    

지점을 넘어서야 한다. 나는 국어를 잘했지만 대학 못간 사람, 공무원 시험 떨어진 사람이다. ‘그 어렵다는 국어를 쉽게 100점 받은 사람’은 그저 화려한 수식어일 뿐이다. 현실은 국어만 잘한 공무원 장수생이었다. 살을 많이 뺐지만 목표 체중에 도달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타이틀은 자존심이 많이 상할 것 같았다. 또 남들 눈에 뜨일 정도까지만 하고 멈추는 사람이 되기는 싫었다.      



d-day 전날에는 어질어질 해서 운동할 때 쓰러질 것 같았다. 며칠 굶은데다 과격하게 뛰어대니 몸이 제 맘대로 움직였다. 좀비처럼 갤갤갤 했다.      





드디어 d-day 아침, 체중계에 올라가기 전 모든 옷을 벗었다. 안경도 벗었다. 체중 올라갈까봐 임플란트도 안하고 살았다 내가ㅎㅎㅎ 목표 체중에서 500g이 더 빠져서 당당하게 남편과 인사했다. 1g도 타협하지 않고 시원하게 승리했다. 남편은 그래프를 보더니 정체기에 계속 안 빠지다 마지막 며칠 급격하게 체중이 줄어든 걸 보고 의문을 제기했지만 워워~ 우리 그러지 맙시다. 줄건 줘야지.      



물론 이게 끝은 아니다. 그리고 요 며칠 굶은 건 아마 먹으면 다시 올라갈 것이다. 갈 길은 한참 남았다. 이제는 진짜 정체기라 한달에 1키로도 빼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래도 어느 한 지점을 찍고 다시 시작하는 다이어트는 그저 든든하다. ‘나 자신’을 믿고 이겨내는 법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원래 50만원으로 내기 하고 이기면 또 100만원짜리 내기를 하기로 했는데 남편이 어째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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