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아팠다. 왼쪽 볼이 붓고 열이 났다. 병원에서는 볼거리가 의심된다고 어린이집 등원을 못하게 했다. 계속 열이 나고 턱이 붓고 기침에 콧물에... 나을만 하면 또 아프고 또 아팠다. 아기가 컨디션이 좋은데도 볼거리는 전염성이 강해서 완치 진단 나올 때까지 등원하면 안된다고 했다. 장장 2주간 컨디션 좋은 아픈아기와 함께 있으니 딱 미칠 것 같았다.
볼이 가라앉고 어린이집 등원을 했다. 이번엔 이가 문제였다. 이가 녹아있었다. 한달 전 치과 검진때는 정상이었는데.... 아기가 물약을 안먹으려 해서 볼 안쪽으로 물약을 쏴서 먹였는데 그게 문제였을까? 약먹이느라 씨름하고 진이 빠져서 양치하는 걸 소홀히 했다. 물약도 진득진득 달달해서 이에는 안좋은 것 같다. 그런다고 한달 새 이가 녹나? 치과 견적 40만원에 한숨이 푹 나왔다. 아린이 치과에서 열심히 치료받고 장난감 자동차 하나씩 받아왔다.
잔인한 4월이 끝나고 5월 첫날. 아기는 39.7도에 두드러기까지 올라왔다. 해열제로 안잡혀 밤새 체온을 쟀다. 왼쪽 볼이 또 부어있었다. 숟가락을 뒤집어 놓은 것처럼 심하게 부었다. 아기가 한달넘게 아프니 솔직히 짜증이 났다. 어떻게 볼거리에 또 걸릴 수가 있지? 어린이집 좀 늦게 보낼 걸. 이건 뭐 어린이집 다니기 전보다 더 힘들잖아.
병원에서 피를 뽑았다. 볼거리가 쉽게 재발하는 병은 아닌데 또 부었으니 확실히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결과발표까지 3일. 그때까지 또 등원을 하면 안된다고 했다. 두드러기 난 아기 피부를 보니 내 몸도 간지러웠다. 특히 이번엔 얼굴쪽이 가려워 벅벅 긁고 다녔다. 봄철 알레르기 피부. 이놈시키 피부는 나를 닮았나 보다. 아기 약 처방받으면서 내 피부약도 처방받았다. 스테로이드를 바르니 가려움증은 바로 가라앉았다.
아프면서 큰다더니 아기는 그새 훌쩍 컸나보다. 작년에 물려받은 샌들을 신겼는데 엄지발가락이 빼꼼히 나왔다. 그땐 샌들이 컸는데.
말문이 안터져서 고민했는데 요즘 "시여시여(싫어)"를 시작으로 말을 한다. 그 귀여운 모습에 미운짓도 웃으며 넘어갔다. 내가 괴롭히면 고개를 저으며 "시여시여" 하는게 너무 예뻐서 계속 괴롭혔다.
'많이 컸구나.'
잠시 감상에 빠졌다가 전투모드로 돌아왔다.
남편은 주말에 모심으러 갔다가 허리를 삐끗해서 왔다. 며칠을 움직이지 못했다. 나는 그저 머리를 벅벅 긁었다. 가려움증의 원인에는 스트레스도 있다. 확신한다.
아기 컨디션도 좋아지고 남편허리도 거의 나았다. 우리집 근처에서 남편직원 둘이서 술마신다는 전화를 받았다. 귀찮다고 안나간다는 걸 인심썼다.
"자기도 고생했어. 오래 아프니 식구대로 힘들지. 놀다오셔~"
쿨하게 보내줬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남편은 드러누웠다. 39.3도.
나는 터져버렸다. 얼굴표정이 굳어버렸다. 계속 짜증났다. 아픈 사람한테 그러면 안되지만 정말 화가 났다.
"너때문에 아픈거 아니잖아. 왜 기분이 안좋아?"
"몰라. 조용히 해."
기껏 회식시켜줬는데 아프면 어쩌라는 거야. 누가 잘못해서 아픈 건 아니지만 번갈아가면서 아프니 정말 뱃속 깊은 곳에서 짜증이 올라왔다. 크게 아픈건 아니니, 단순감기니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지만 한달 이상을 밤잠을 못자고 외출도 못하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아기가 보챌때마다 나는 알수없는 괴성을 질렀다.
피검사 결과 전화를 받았다. 볼거리 아니라고 했다. 아기들은 턱 발달이 미숙해서 침샘염일 수 있다고 했다. 감사합니다를 수없이 외치며 등원준비를 했다. 아들은 냉장고에서 미숫가루 통을 꺼내서 열 정도로 자랐다. 미숫가루로 모래놀이를 했지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했다. 얼집 보내고 혼자 치우지 뭐.
엄마몫도 챙겨주는 섬세함나도 오랜만에 씻고 머리를 말리고 외출준비를 했다. 머리에서 무언가 '번쩍'했다. 가까이서 거울을 봤는데....아... 잠깐만 눈물좀 닦고......
희....희.....흰머리가 2~3cm정도 빼꼼히 올라왔다. 흰머리가 나려고 머리가 그렇게 가려웠나 보다.
약지에 7호반지를 끼던 나의 섬섬옥수. 참 고왔던 내손. 설거지에 손이 팅팅 부어서 반지를 못끼게 되었을 때와 비슷한 충격이었다.
나중에 꼭 보여줄거다. 너때문에 흰머리가 났다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암튼 아들에게 이글 꼭 보여줄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