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들의 이야기

복되게 장수하고 싶어서 쓰는 글

by 레강스백




신호등 기다리는데 옆에 계시던 할머니께서 말을 걸었다.

"좋을 때다. 세상 좋아졌어. 저렇게 유모차에 애 태워서 엄마도 편하고, 아기도 편하고, 옛날에는 애 둘러업고 보따리 메고 애는 울고. 배고프다고 징징대 봐야 젖도 안 나오고~~~~~"

신세한탄을 하려는 느낌이 보여 살짝 흘려들으려 할 때쯤 할머니는 말을 이어갔다.

"새끼는 확실히 예뻐. 눈에 넣어도 안 아프긴 해. 그래도 늙어뿌니 다 필요 없데. 서방이 최고 드만. 그거는 알고 자식새끼 키워야 해. 늙어뻐리니, 서방 죽어뻐리니 자식이 아무리 잘해도 소용없어."

신호등 건너고 길이 달라 인사하고 헤어졌다.

"엄마가 키도 크고 훤칠하니 예쁘게 잘 크겠네."

마지막에는 덕담까지.

할머니는 나 뚱뚱한 것은 안 보이고 키 크고 훤칠한 것만 보이셨나 보다. 부부가 있고 나서 아이가 있는 것. 참 감사하고 잊어버리기 싫어 글로 적어둔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 101세 할머니가 나왔다. 건강비결을 찍는 것 같았는데 할머니는 우리가 생각하는 건강상식대로 살고 있지 않았다. 돼지고기를 좋아해 매일 고기 하나에 밥을 드시고, 믹스커피에 설탕을 네 스푼이나 타서 드신다. 그럼에도 혼자 텃밭 600평을 다 가꾸신다. 마당 한 켠에는 꽃도 심어져 있다. 운동도 하신다.

나의 외할머니는 107세로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셨다. 엄마 돌아가시고 한번 찾아뵈었는데 엄마가 돌아가신 건 모르고 나를 엄마로 착각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외할머니를 요양병원에 보내버린 외삼촌을 욕하는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다들 어서 돌아가셔야 한다고 다.

그도 그런 게 큰외삼촌 돌아가시고, 외숙모 돌아가시고, 큰 이모 돌아가셨다. 외할머니의 자식들이 먼저 갔다. 엄마와 아빠는 환갑에 돌아가셨으니 나이만으로 따지면 좀 아쉽게 가셨다. 그 명을 이어받아 외할머니가 오래 산다는 소문도 들렸다. 자식 앞세워 보내고 오래오래 살고 계신 외할머니를 뒤에서 수군거렸다. 엄마가 아플 때 사람들은 외할머니가 돌아가셔야 우리 엄마가 산다는 말을 했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게 다 좋은 것은 아닌가 보다. 장수 비결이라며 텔레비전에 나오는 할머니가 있는가 하면 자식들이 어서 돌아가시기를 바라는 할머니도 있으니 말이다. 자식들 앞세우고 그 명줄을 이어받아 오래 산다는 거친 소리를 들으며, 요양병원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며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관상학에서 "장수는 복중의 복"이라고 한다. 그런데 외할머니의 장수는 정말 복인지 의문스러웠다. '건강하게 오래 살기'가 아닌 '복되게 오래 살기'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궁금해졌다.

101세 할머니는 항상 웃으신다. 화낼 일을 만들지 말라고 하신다. 즐겁게 젊은 마음으로 사신다. 할머니는 당신이 생각하기에 나이 50 정도밖에 안 된 것 같다고 하신다. 자식들이 걱정돼서 모시고 간다고 해도 마다하신다. 혼자가 편하다고 하신다. 나는 이 부분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혼자라는 것' 완전한 나를 만들어내면 그깟 육식쯤이야. 설탕쯤이야. 전자파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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