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강스백 Nov 10. 2019

나먼저 지키면서 살 건데요.

날씬한 새 며느리 구하세요.

엄마, 아빠가 지어올린 과거가 되어버린 우리집


"며느리 미워하면 아들 팔자만 사나워져. 저 너무 미워하지 마셔요."

"내가 너한테 잘하는지 잘 못하는지는 모르겠다만 잘 부탁한다. 내 아들 밥 잘 챙겨줘서 고맙다."

시어머니는 내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철딱서니 없는 척 내뱉었지만 나는 시어머니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한다. 3년 전이었으면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아기를 낳자마자 시어머니는 나에게 함부로 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 화장실에 따라 들어와서 아기 씻긴 똥물을 내 발에다 붓고는 나가버리기도 했다. 마귀가 씌었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남편 하고도 많이 싸웠다. 아기 낳은 지 27일. 한여름에 긴팔을 입고 젖 뚝뚝 흐르는 몸으로 집을 나왔다.  

"어머님 저한테 도대체 왜 그러세요?"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러냐? 엄마 없는 너를 내가 딸처럼 생각해주면 고맙게 생각해야지. 나 같은 시미 있는 줄 아냐? 너 혹시 남자 있어서 집 나간 거냐? 그러지 마라. 너 나중에 죄받는다. 나 죽고 얼마나 후회하려고 그러냐?"

터무니없는 일로 싸우고 억지로 화해하는 걸 반복했다. 하루가 무기력했다. 폭식을 시작했다. 하루에 3번씩 배달음식을 시켜먹었다. 아기 낳고 10킬로 정도 빠졌던 살은 다시 만삭의 몸으로 불어났다.

아기의 첫돌이었다. 큰 형님 집에서 모였다.

"으이그. 우리 집 며느리들은 큰며느리나 작은 며느리나 둘 다 뚱뚱해가지고 아우~ 진짜. 뚱뚱보 둘이 있으니 집이 꽉 차네."

집에 와서 남편과 또 싸웠다. 남편은 본인한테 말하지 말고 직접 화내라고 했다. 스피커를 켜고 남편 앞에서 시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어머니, 손주 새끼 낳아 주고 살찐 사람한테 뚱보라니요? 왜 그러세요?"

"아... 그것 때문에 기분 나빴니? 내가 너를 너~무 사랑해서 그랬단다. 살집이 있으니 방이 꽉 차서 너무 흐뭇해서."

"그게 말이 됩니까?"


"너 그래서 지금 내 아들 잡았냐? 순진한 내 아들 꼬셔서 결혼해 놓고?"

남편은 가만히 듣고 있다가 전화기를 들었다.

"엄마, 아기 엄마한테 미안하다고 해. 엄마가 잘못했잖아."

"나 죽어. 엄마 심장 약한 거 알지? 엄마 어떡해. 쟤때문에 나 죽게 생겼어."

시어머니는 끝까지 내 탓을 했다. 나는 악다구니를 썼다. 괴물처럼 소리를 지르고 방방 뛰며 울부짖었다. 남편이 말렸지만 기어이 뿌리치고 집을 나왔다. 사람 없는 해변가에 차를 세웠다. 담배 한 갑을 사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머리가 띵해질 때까지 계속 담배를 피웠다. 몇 시간 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마지막 담배 한 개비 마저 피우고 시어머니에게 문자를 보냈다.

"날씬한 새 며느리 구하세요."

시어머니는 그날 저녁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갔다고 한다.



점쟁이에게 전화가 왔다. 소송을 준비하는 게 있으면 당장 멈추라고 했다. 소송을 걸면 목에 칼대고 죽는다고 했다. 엄마는 부들부들 떨며 통화내용을 녹음했다. 엄마가 암 진단을 받기 전이었다.

뒷집 여자와 소송이 걸려 있었다. 시골생활 5년. 전원생활을 꿈꾸며 엄마, 아빠가 지어 올린 집. 힘든 농사일 하면서 사는 시골사람들은 우리를 반기지 않았다. 허구한 날 싸움이 났다. 시골 텃세를 엄마는 견뎌내지 못했다. 예쁜 전원주택에서 꽃이나 가꾸고 사는 엄마가 많이 미웠을 것이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닭들이 모두 죽어 있었다. 개는 꼬리 흔들며 우리를 맞이했는데 물통의 물이 노랬다. 농약이었다. 닭들은 그 물을 먹고 죽고, 영리한 개는 먹지 않고 살았다. 옆집 할아버지는 지나다니면서 우리 집 담장에 가래침을 뱉고 다녔다. 뒷집 여자는 허구한 날 우리를 경찰에 신고했다. 우리 집 감나무 감이 도로에 떨어져서 골목이 지저분해진다고 신고를 하기도 했다. 경찰이 그만 좀 신고하라고 뒷집 여자에게 화를 내기도 했다.

시골텟세는 정말 무서웠다. 타지에서 와서 집 짓고 사는 우리를 가만두지 않았다. 어떤 날은 비닐하우스 천장에 구멍이 뚫려 있었고, 어떤 날은 죽은 새끼개가 마당에 놓여있었다. 옆집 할아버지와 아빠와 싸움이 붙어서 쌍방으로 벌금을 물었다. 그런데 그 싸움을 구경하던 뒷집 여자가 엄마가 본인을 때렸다며 입원을 했다. 엄마는 해남이며 목포로 가서 진술을 했다. 거짓말탐지기도 동원되었다. 몇 달 지지부진한 조사 끝에 엄마는 '혐의 없음'으로 판결받았다. 이제 우리가 무고죄로 소송을 준비했다. 상담받는 변호사가 이건 이기는 싸움이라고 했다. 끊임없이 싸움거리를 만드는 사람들.

그동안에 엄마는 점점 여위었다. 갑자기 살이 빠졌다. 항상 목이 아프다고 했다. 그저 스트레스인 줄 알았다. 사람들은 냉정했다. 엄마가 죽어가는데도 여전히 엄마를 미워하고 저주했다.

뒷집 여자의 무고한 신고가 무혐의로 판결 나 우편물이 날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밤, 개가 심하게 짖었다. 창밖으로 보니 누군가 우리 집 우체통을 뒤지고 있었다. 앞에 시동 걸어진 트럭은 옆집 할아버지네 트럭이었다. 문을 열고 나가니 그들은 재빨리 트럭을 타고 가버렸다. cctv가 설치되어 있고, 누구 차인 줄 뻔히 아는데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본인이 거짓진술을 해서 피해자로 진단서까지 끊고, 그게 들통이 났는데 사과를 하는 것이 아니라 무당을 시켜 엄마를 겁주고 있었다. 상담받는 변호사, 경찰까지도 이 소송은 이기는 소송이라고 했는데도 엄마는 힘들어했다.

여동생은 내 다이어리를 낚아챘다.

"엄마가 아픈데 다이어리가 누구껀지가 중요해?"

뒷집 여자에 관한 노래를 지었다.

'ㅇㅇㅇ사랑해. 용서해. 이쁜 ㅇㅇㅇ.'

"엄마, 앞으로 매일 뒷집 여자 사랑한다고 해. 긍정적으로 사는 거야. 그래야 암이 죽는대."


원수를 용서해야, 사랑해야 산다고 했다. 용서를 해본 사람은 누구에게 용서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것이 누군가 가르쳐서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분노 가득한 행복이 진정한 행복인가. 증오로 뒤덮인 용서가 진정한 용서인가. 엄마는 죽기 전에 그 여자를 용서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을까? 엄마 자신을 지키지 못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을까?

"야이 또라이 무당년아. 너나 디져라."

욕 한 바가지 못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을까.




'날씬한 새 며느리 구하세요.'

나는 뭐가 두려워서 부당한 대우를 참고 있을까? 나를 지켜줄 부모가 없기 때문에? 혼자되는 것? 뚱뚱한 건 내 잘못이니까? 산후우울증? 앞으로 어떻게 살?

결론은 하나였다.

'나에게 함부로 해도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자식 손으로 때리면 남들은 발로찬다'는 말이있다. 나 스스로를 내가 지키지 않는데 다른 사람이 알아서 지켜주지는 않는다. 시어머니를 이해하지만 그게 나에게 함부로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나를 지키지 못한 채 상대방을 무작정 이해하는 것은 폭식과 우울증으로 내 몸과 정신만 망가지는 일이었다. 죽음 앞에서 가장 슬픈 일은 나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산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할머니들의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